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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문학 23호(정유미 시5편)



추천 :	217	이름 :	정유미	작성일 :	2015-09-08 23:48:35	조회수 :	1,661

흐린 저녁에는 1

흐린 저녁에는
슬픈 노래 취해 울어야겠다
슬픔의 멍울 틔워
꽃잎 적셔 주어야겠다
어느새 차올라 볼을 타고
가슴 언저리 떨어진 눈물
활활 번지게 내버려 둬야겠다
이러긴가요 묻고픈 당신께
부채질 슬슬 해주면서
이게 아닌데 싶은 세월에
풀무질 해주면서
쉬다 가다 꽃이나 툭 틔우게
손수건 꺼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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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저녁에는 2

언젠가
발톱을 깎지 못할 저녁이 오면
그대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익숙하게 통밥을 굴려
맥주집 구석 자리 박힌 그를 찾아
파르르 강짜를 부리면

그만그만
빗속을 밀쳐 나오던
씩씩 열 오른 저녁이
새삼 그리울까

언젠가
손닿지 않을 저녁이 오면
거기 당신
기다렸다는 듯 또각또각
발톱을 깎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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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뽑다

몸 밖으로 도려낼 미소 뽑으러 치과에 간다
“솜은 한 시간 후 빼고 피는 삼키세요.”

그대 파 놓은 웅덩이에 핏물이 고여

삼키며
등진 시간 서툴었던 이별을
감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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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귀를 뚫었다
한 방에 뻥 날렸다
귀걸이만 잘해도
팔자가 편다는데
인생이 보자긴가
뚫어야 꽃이지
욱신거려도
까짓거
진물 더께 들고 난 자리
땅이 열리면
아니 피겠는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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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리 가을

안개 허리띠 두른 산만당엔
산신령이 살고
그 아래 배롱나무 언덕엔
조상님이 살아
석류 붉어가는 산골 마을
소국은 익어

영옥이 가시나
매구 이야기
놀란 달이 이불 속 파고들던
내곡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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