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들어 세우면
언제나 세워지는 줄 알았다
넉넉한 완행버스처럼
그렇게
살면서 고독했던 시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어둠에 가라앉은
흔적들 슬슬 기어 나오면
손을 들어도
서는 곳이 이미 정해진
각박한 버스는
매몰차게 지나치기 일쑤인데
가슴으로 품을 수 없는
메케한 매연만이
그때나 지금이나
눈 매운 현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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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시간이 멈추었다
누군가의 시계가 고장 나 버린 거다
내게로 오던
그에게로 흐르던 핏길은
못 지킨 약속의 벽에 막히고
희망마저 지레 버린 탓에
중병을 진단 받았다
누르면 저쪽이 튀어 나오는
탱탱하게 부푼 풍선처럼
언제 터질지 흐를지 알 수 없는
기도만이 유일한 처방인
붉은 위험
동맥경화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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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서툰 열병에
하루가 기우뚱거린다
아직 집을 찾지 못한 이들의
어깨가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져
스며들어
일상으로 덧칠 되고 만다.
차가운 아스팔트 터덜터덜
종점으로 간다.
저녁 값으로 마신 소주는
두통을 부추기고
붕어빵을 당겨 안아도
쉬 데워지지 않는다.
몇 남지 않은 동전들
너른 주머니에서
몸을 부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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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4
겹겹 붉은 입술에
오월이 녹아 가고
아픈 자리, 자리마다
붉게 터지는 봉오리
못다한 이야기 향기로 피워내면
덩굴 마디마디 오월은 익는다.
사랑도 그리움도
가슴 비게 하는 서러움까지도
유월이 채 오기 전에
하혈처럼 쏟아져 길을 메우고
또 다른 향기로 썩어 가면
삶이 버거운 자들에게는
꽃도 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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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레미
백발 어머니가
씨날줄 듬성한 망 위에
싸라기 한줌 가만히 얹어 놓으면
흔들지 않아도 스르르
몸에 좋다는 쌀겨가 먼저 빠져 나가고
뼈가 되고 살이 된다는
쌀눈 빠져 나가고
공평하게 반으로 토막 난 것들
어지러운 속삭임
두런두런 살아 남았다고
듬성한 벽 이편 저편 갈라놓고
현실이라고 이게 현실이라고
…….
어레미 세상
사랑도 그리움도 딱
딱 반으로 나눌 걸
아래 위 훤히 보여서
더욱 아픈 벽
윤경선
2015-09-08 13:12:05
마늘 종자 쪼개다가 점심시간 잠시 송시인 시에 머물다 갑니다.
어느세 가을이 왔네요 풍성한 가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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