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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호 특집 원고(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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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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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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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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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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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17:04:51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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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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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는 문학관이다
- 합천 기타
강 희 근
1.
누군가 국토는 거대한 박물관이라 했다. 국토 구석 구석에 유물과 전통 시설물들이 즐비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국토는 거대한 문학관이다’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까운 경남만 하더라도 그 실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진주에는 진주성을 들여다 보면 문학작품이 아리 아리 박혀 있다. 논개의 경우 소재가 된 작품이 수백 수천이 도사리고 독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주야로 기다리고 있다. 촉석루 누각 하나에 실려 있는 한시나 현대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만큼 시대를 이어 창작되어져 왔다.
삼천포로 가면 박재삼의 시가 눈시울 붉히며 독자를 기다리고 사천시 한 바닷가의 성덕리에는 조향의 까다로운 시편들이 도사리고 있다. 하동을 가면 이병주의 소설들이 리얼한 기록부처럼 산야에 엎드리고 평사리에는 최참판댁 덩실히 <토지>의 대하소설이 이름을 높이 걸어놓고 있다. 산청으로 가면 지리산이 소재가 된 작품이 시래깃단처럼 엮여져 걸려 있고, 함양을 가면 점필재 김종직과 김일손, 정여창의 시편들이 아름답고 허영자나 김석규의 현대시가 저북 저북 잡힌다.
거창으로 가면 거창사건을 테마로 하는 <겨울 골짜기>가 아직 찬바람을 안고 엎드려 있고 신달자나 신중신의 인생시편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합천으로 오면 이제 분위기가 싹 달라진다.
2.
필자는 합천으로 드는 길목에 설 때마다 짧은 명상에 든다. 이 인생을 어찌할 것인가. 머리를 깎을 것인가,말 것인가, 가야산으로 들어 고승에게 절하고 면접을 할까, 말까, 하는 복잡한 심상이 얽혀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필자가 당면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청춘들이 청춘을 버리고 해인사 가는 길로 드는 일에 대해 깊은 사색을 보태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색에 들어가면 합천은 참 대단한 드라마의 고장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 그래서 드라마 테마파크가 웅장히 들어선 것일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청춘은 방황일 때 청춘이다. 몸부림일 때 비로소 인생이다.눈물이고 억장이고 가슴 미어지는 벽 앞에 선 것이고 난리고 정리이고 별리이고 단절이라는 부조리이고, 그것을 감내하며 해인사로 가는 행렬 위에 선 남녀 청춘들을 생각하면 합천에서는 마음 놓고 불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이런 곳이 배경이 되는 소설은 어떤 것일까, 이런 곳이 배경이 되는 시는 어떤 것일까?
해인사
조 병 화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불교는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곳에
인간이 있다
이 시는 조병화 시인이 해인사에 와서 쓴 시로 보인다. 절이 크든 작든 불교는 하나이고,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므로 해인사로 오면 생각까지 버릴 수 있게 해준다는 속뜻이 있어 보인다. 불교는 하나라는 것이 불가의 ‘불이(不二)’일 것이라 짐작되는데 어쨌든 인간성을 딛고 뭔가를 이루는 것이 불교임을 가르쳐 주는 시다.
필자에게도 최근 합천에 와서 쓴 시가 있다.
영암사지에서
죽은 절에서는 목탁소리도 죽어 있다
죽어서 사리를 남긴다고 사리를 모시는 절이
있지만
이 절의 사리는 무엇인가
등인가, 탑인가, 아니라면
주춧돌인가
모산재, 애초에 이름이 사리 같다 사리 같은
산을 등어리에 두고 있으면
절은 지나가는 눈처럼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일까
둘러보면 남아 있는 것들은 다 나무다
경 밖에서 염불도 없이
죽은 절을 한결로 바라보고 있다
입도 없고 문자도 없이 오래 오래 서서
목탁이라면
차라리 나무들이 살아있는 절인지 모른다
나무 관세음,
죽은 절에서는 말이 다르고도 뜻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일까
이 시는 합천군 가회면에 있는 영암사지에 가서 절은 오래전에 없어지고 석등이나 탑이나 사지의 돌들이 띄엄 띄엄 있을 뿐인 장소에서의 심회를 읊은 것이다. 합천 해인사라는 거대한 가람을 의식하면서 썼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뜻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저 신라시대의 절이 불타버리고 흔적으로 남아 있고 다만 이를 둘러싸고 바라보는 나무들만이 살아서 목탁 대신 불립문자로 서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합천에 들어와 가사를 걸치든지 걸치지 않든지 군민이 되면 모두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불가의 향기를 맡아가며 사는 것은 분명하다. 색즉시공이라든지 공즉시색이라든지 한 마디씩 하거나 해인사 새벽 4시에 치는 범종에 길들여져 산다.합천은 이런 곳이다. 문학 작품도 대저 이런 세계와 주춧돌을 놓고 쌓아올릴 밖에 없는 것이다.
3.
필자는 합천은 인생의 두 갈래길을 두 개의 종교적 위상에서 제시하는 곳이라는 데에 놀라움을 느낀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불가적 구도의 길로 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가면 토동에서 태어난 남명 조식의 경의(敬義) 사상의 길이다. 앞은 지역 안으로 받아들이는 길이고 뒤의 것은 안팎의 균형을 이루면서 밖으로 실천해내는 길이다. 앞은 불가적이고 뒤는 유가적이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을 두고 김충렬은 “그는 나약한 선비가 아니라 용기 있는 서생이었다. 이 용기는 어디서 왔는가. 그의 자득한 학문에서 왔고 위기지학의 절실 공부에서 얻어졌으며 항상 자신을 깨어 있게 스스로 경계한 수행력으로 다져진 것이었다........그는 그가 차고 다니던 검에 다음과 같은 명(銘)을 새겼다.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가 그것이다. 안으로 마음을 다스려 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 ‘경의’인 것이다.
남명은 저술을 중시하지 않았고 시를 짓는 일도 학자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생에 헤아려지는 시는 모두 198편 정도이다. 그중 지리산을 소재로 한 시는 4편에 불과하다. 그중 명편에 속하는 <덕산 계정의 기둥에 부쳐>를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請看千石鍾 보게나 천석들이 종을
非大扣無聲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爭似頭流山 아 어쩌면 두류산 처럼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지리산을 천석들이 종에다 비유한 것이 그 배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종을 생각한 것이리라. 그 종을 자신에다 또 연결하고 있다. 내가 바로 그 종처럼 끄떡없이 진중한 모습 보이는 그 지리산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선비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세속적 가치 어디에도 마음 두지 않고 바른 것을 위해 진리를 위해 목숨 던지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음을 내비친다. 남명은 이러한 사상적 배경아래 그의 제자들을 길렀는데 그의 사후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전국 의병장 중에 30여명이 이들 제자군들이었다. 그리하여 어떤이는 조선조 50백년에 한 사람 교육자를 들라 하면 자연 남명을 손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언젠가 지리산 아래 덕천서원에 가서 남명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읊은 일이 있다.
경의당 마루에 누웠다가 온 날 밤에
선생을 생각한다
선생이 벽에 걸어두었다는 칼, 칼 길이를
생각하고
선생이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는 방울, 성성자를
생각한다
아, 생각한다
선생의 칼을 보았던 제자들 중에
선생이 한 것처럼 칼을 걸어둔 제자는 없고
선생이 한 것처럼 성성자를 차고 다닌 제자가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러나
제자들은 나중에 그 칼이 가리키는 정신으로 들어가
벽에다 못치고 일렬로 목숨을 걸었다 소리 없는 성성자
나라에다 걸었다
경의당 마루에 누웠다가 온 날 밤에
잠이 그 벽에 막혀 오지 않는다
찬물 한 사발 뻘쭉 뻘쭉 들이켜고도 잠이 오지 않는다
-<경의당 마루에 누웠다가> 전문
남명 선생의 그 실천적 의지를 순간 순간 다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순간적으로 한없이 나약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의인이 난 합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다가 검을 걸고 세상에다가 성성자를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합천은 이런 사상적 실천의 마루요 언덕이다. 성질은 다르지만 이주홍의 아동문학과 소설들, 최인욱의 역사소설들, 홍성원의 <남과 북>, <D데이의 병촌>, 손풍산의 시편들, 허민의 소설과 시편들, 박산운, 손동인,이수정, 박태일의 시편들이 본질이거나 시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4.
우리는 때로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쓰는 것인가를 생각할 때 조용히 합천을 생각하면, 합천의 본질적 근원을 생각하면, 구도적 지향과 그 실천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합천은 시인 작가들에게 그쪽으로 가는 대열을 상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곳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설레이게 하는 곳이다. 합천은 한 단위의 문학관이다. 그것도 보편적 인생의 흐름을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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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님의 글 국토는 문학관이다
길이면 길 산 모두 문학으로 어우러져 있네요
정말 국토는 문학관 맞네요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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