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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원고(완결판)



추천 :	456	이름 :	김영애	작성일 :	2013-08-09 10:42:41	조회수 :	1,665

1. 송홧가루

지금 산에는 민방위 훈련중이다
사월에 부는 황색바람이다

여학교 때
하얗게 다려입은 교복칼라에 묻을세라
기피했었고

지금은
사람도 집도 마구 헤집고 다니는 막무가내

사월, 온 천지는
황색점령군의 세상이다

2. 가을 *다라국

밤나무에 밤이 팡팡 터지고
도토리 연이어 땅에 내리고
두손에 도토리 쥐고 있던 다람쥐, 인기척에 달아나고
나뭇가지 하릴없이 흔들거리는
가을 어느 날
소나무 낙엽에 앉아 시를 읽는다
네가 곧 나다
다라국의 가을은 익어가고

*다라국 :4~6세기 경남 합천군에 존재했던 가야 왕국으로 추정

3. 내년에는 수장고에 도토리 한 톨 볼 수 있을까

박물관 언덕, 여기저기 흙이 드러나 있다.
눈이 녹아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이 한겨울에 누가 꽃씨를?
잔디위에 썰매 타던 아이들이 그랬나

누가 그랬을까?

답은 늘 주변에 있다
가까이 보니 날카로운 것으로 파낸 흔적이 있다
우리는 각자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눈이 일부만 녹아 착시현상일 거다
그 밑에는 고양이 똥이 있을 것이다
개미가 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쏜살같이 도망가는 저 놈 좀 보게나!

가을에 묻어 둔 도토리 꺼내려 왔다가
비몽사몽 중에 여기저기 뒤적거렸나
그렇게 많은 시굴을 하고도 못찾았으면 어떡하지

지하에 수장고도 있는데,

4. 겨울나무로부터 배운다

버리고 버리고
마지막 한 잎마저 버린
겨울나무는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우려만 했던가,

흰 눈 푹푹 내리는 오늘 같은 날

한때, 화려했던 꽃과 무성하던 이파리 다 보내고
저 홀로 담담히 겨울을 맞는
벗음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것을 입는
나목으로부터 배운다.

채우기만 하고 버리지 못했다면
저 많은 눈에 허린들 휘지 않았을까
가지가 꺾이다 못해 뿌리째 뽑히기도 했을테지
나도 올 겨울 발가벗은 나무가 되고 싶다

5. 열려라 참깨

하얀 종鍾꽃이 피면
어머니는 참깨 밭에 매일 출근했다
설인가 추석인가 어느 날
방앗간에서 흰 절편을 찾아오던 길
떡 안주면 집에 안가겠다고 떼를 쓰던 기억
지금, 그 참기름 향이 진동한다.

참깨를 털고 난 깻단으로 소죽을 끓이고 차례에 쓸 생선을 굽는데
참기름보다 더 맛있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끝내 생선 한 토막을 먹어 버린 일
*못대가 좀 빈 것 같다고 하던 엄마는
고양이가 물어 갔는갑다며 더 이상 찾지 않았고

윤기 가득했던 그 볼에 빗살무늬 주름 가득하지만
어제 고친 틀니로 떡살무늬 절편 드시려나
언제나 못갈 이유가 더 많았던 고향 길
올 추석엔 깻단으로 생선을 구워 엄마 입에 넣어드리며
수 십 년도 더 된 고백을 해야지
그때 없어졌던 생선 내가 먹었노라고

*못대 : 석쇠의 경상도 방언



김영애	2013-08-09 10:43:35

휴가중이라 인터넷사정 원할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게시하였으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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