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실려와
들숨 날숨을 막아버리는 향기와
눈을 감아도 어른거리는 허연 속살로
격자무늬 창 너머에서 기다리는 밤
꽃인 줄 알았는데 가슴 찌른 가시였다
꽃은 지고
목련은 이미 졌다
철지난 찬바람에 파랗게 얼어버린
진달래도 지고
더러는, 애꿎게 짓물러버린 시간
봄까시 거죽 뚫는 소리 밤을 밝히고
찬란한 선혈로 여는 아침
저만치 밀어버리고 싶은
아린 계절이 가고
열정에 춤출 다음 세상에서
작은 손 내밀어줄
한포기 붉은 튤립을 심어야겠다.
게으른 이의 봄
어디로 갈거나
기억 속에 익숙한 그 내음
코끝을 간지러는 짓은 유혹
봄을 피워서는 살랑거리는데
그래 제비꽃 너 아니었음
봄인 줄도 몰랐을
두터운 겨울 속에서
저 으 기 저것 눈에 익다, 눈에 익다 했는데
정말 아지랑이였어
봄이 왔던 거야, 것도 저만치 지나가버린
바늘 같던 파란 촉들 쓱쓱 쓱쓱
다음계절을 그려 가는데
가쁜 숨길 봄 나그네
마음은 바빠서…….
어레미
백발의 어머니가
씨날줄 듬성한 망 위에 싸라기 한줌
가만히 얻어놓으면
흔들림 없이도 스르르
몸에 참 좋다는 쌀겨먼저
뼈가 되고 살이 된다는
쌀눈도 빠져 나가고
공평하게 반으로 토막 난 것들만
저들끼리 어지러운 속삭임
두런두런 살아남았다고
듬성한 벽 이편저편 갈라놓고
현실이라고 이게 현실이라고
…….
어레미 같은 세상
사랑도 그리움도 딱,
딱 반으로 나눌걸
아래 위 훤히 보여서 더욱 아픈 벽
코스모스
간수하지 못한 그리움들
길가에 간들거린다.
핑크빛 그리움
하얀 원망을 머리에 이고
노을에 익은 붉은 얼굴
예닐곱 남은 잎으로 가리고
선득선득 움츠려지는 시간이면
흔들고 가는 시란 바람
저 만치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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