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그리움 소리 없이
쌓여만 가는 날
추억 발자국 불러 모아
눈 코 입 그려 넣고
가만가만 살펴보니
보고픈 그대가 웃는다
처음 설렘마저도
오래 간직할 수 없어
그저 아무 말 없이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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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공주
덜 깬 잠
새벽 이슬로 세안하고
하얀 집 들어서면
노란 저고리 푼 채
수줍은 듯 고개 돌려
눈인사로 반긴다
시린 손끝으로 야무하고
단 한 번 깊은 입맞춤
사랑 열매 달아 놓네
주체할 수 없는 설렘
식을 줄 모르는 열정
땀으로 범벅되어도
하루 해가 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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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명령
은근 슬쩍
남의 자리 앉아 미안한 듯
눈인사 피하네
위풍당당
넝쿨 뻗어 가는데
걸쭉한 거름 맛
나눠 먹자고
은밀히 아부하여
땅 속 깊이 손 뻗어 놓고
야금야금 뺏아 먹는 잡초
앉을 자리 앉아야지
어쩔 수 없이 너를 몰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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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리움을
계절에 충성하듯
나무들 푸른 옷 갈아입고
너 또한 나라 위해
푸른 옷 갈아 입었구나.
자유 분방했던 너의 시간은
집으로 배달되었고
뒹굴던 청바지와 티셔츠
눈물 밟고 갔던 운동화
충성을 외치는 사진 한 장
손꼽아 기다리는 백일휴가
새벽 하늘
정화수 한 사발에
그리움 담고
중천의 환한 달님에
소망 담아
목마른 가슴으로
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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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
남은 자의 애통함
죽은 자의 원통함
하늘 마저 울어
꽃상여 흠뻑 적시니
슬픔 포개어 진다.
굽이굽이 한 많은 세월
모두 싣고 떠나려 한다.
연분홍 빛 시절
누군가 뿌리고 간
꽃잎 다섯 송이
비탈진 길에
아름답게 피워 놓고
넘을 수 없는 길
비에 적시우며
서러운 삶 떠나가는 월산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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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꽃
결 고운 연둣빛 치마
노란 저고리 팔랑이다
태양의 사랑 듬뿍 받아
빨갛게 익은 마음
들판을 휘돌아
지친 태양
논두렁에 앉아
긴 한숨 토해낼 때
잘 익은 마음 한 조각
쪼개어 주고 싶소
강가에 가지 않아도
시우너한 숲속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소리 되어
그대 귓전에 머물고 싶소
먼 훗날
황혼의 길목에서
수박씨 하나 둘 툭 툭
내 뱉어 낼 적엔
그대 곁에 머물어
행복하였노라 말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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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유유히 흐느는 세월
작은 들꽃의 미소
살며시 꺼내어 본다
쫓기고 쫓기던 날들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
강물에 띄우고
물결이 여울지는 그곳
작은 그리움으로 일렁이다
미완성의 추억으로 남아
아직도 가슴 흔들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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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따가운 햇살 아래
군사를 불러 새워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보름 전 세운 작전
부족한 군가로 인해
먼 후방에서
파견 나온 지원병
국수 한 대접 말아주고
오늘의 작전
천칠백 평 들판에 늘어선
양파 무리를 소창하는 일
군사는 언제든지 호루라기만 불면
전쟁터로 갈 만반의 자세로
배급을 받는다
뙤약볕이 정수리에 앉아
땀으로 범벅이 된 오후
막걸리 한 사바라로 목을 적시고
군가를 부르며
앞으로 앞으로 진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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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속살 하얀
달덩이 같이 둥근 외모
사대부 맏며느릿감
실크 부드러운 옷감 걸친
우아한 자태
남정네 마음 흔들어
조심스럽게 한 올 한 올
벗겨 내면
겹겹이 걸친
조선의 여인
톡 톡 쏘지만
벗겨도 벗겨도
한결 같은 마음
조신한 여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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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잔서려 이불 삼아
누워 있는 풀 섶 위로
매화 향기
솔솔 묻어난느 아침
서가래 매달려
먼지만 마시던 호미 삽
앞 다투어
논밭으로 봄 캐는 소리
칼바람 무서워
곳간 창고 숨어
문틈 새로 유혹하는
봄비따라
길나선 씨앗들
설레는 맘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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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의 꿈
두근거림 가다듬어
면접을 본다
일열로 선채
매서운 발걸음 멈춰
쑤--욱 뽑혀
짭자란 연수원 지나
빨간 유니폼 입고
삼섬 하우젠 반듯한 딤채
엣날식 장독대라도
들어가고 픈 맘 간절했는데
하루살이 겉절이도 못되고
허허 벌판 외로이 떨다
혹독한 눈보라까지
하지만 뭐섭지 않네
한 알 품은 꿈
내 가슴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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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거센 파도 밀려와
부셔버릴 기세다
등 굽은 나무 어디 가서
잔잔한 수평선 바라볼까
손 끝 오래된 비린내
파를 떨고 있을 뿐이다
고운 물감 몰려와
외계 행성에 있는
어린 왕자 불러오고
잡스 할아버지도
낡은 벽에 앉아
바다를 보고 미소 짓는다
하늘 구름 갈매기
동리항 좁은 골목에서
걸터앉아 한가롭게 웃는다
파이프를 입에 문 거인 선장
이순신 장군도 동피랑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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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저의 미흡한 작품임에도 입문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산하던 가을겉이를 끝내고 들판엔 마늘과 양파들이 내년 봄에 다시 꽃피울 꿈을 꾸며 몸을 숙이고 있습니다. 초겨울 들길에서 등단 소식을 접하고 설렘과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들길을 오가며 시 한 소절을 줍고 김을 매다 밭고랑에 앉아 호미자루로 시 한 소절을 썼습니다. 노란 수박 꽃잎에도 써 놓았던 여름날의 발자국처럼 앞으로도 자연과 더불어 가슴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선후배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소박한 인생의 꿈을 시를 통해 표현해 나가겠습니다. 맏종부의 길에서 잠시 접어 두었던 문학의 꿈이 10년 전부터 꿈틀거렸습니다. 합천문학을 노크하고, 손국복 전회장임의 가르침과 회원 여러분의 격려에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아울러 농사일에 여념이 없음에도 나의 길을 묵묵히 지켜봐 주신 남편과 가족에게도 무한히 감사하는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의 글 추천해 주신 심사위원과 문학 선배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더욱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윤경선의 시는 일단 시의 형식인 운율과 리듬을 적절히 타고 있다. 시편들에서 서정시로서의 꾸밈없는 순수성이 얽혀져 시인의 결 고운 심성과 정서도 다붓 느껴졌다. 시적 대상을 풋풋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끌어안아가는 솜씨 또한 시인으로서의 기본 덕목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 측면에서 진술이 다소 평이하고 단순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어휘력에서 다소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읽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좋은 시는 그 시인의 생의 편린들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데서 나온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첨예한 감성의 언어들로 자연스럽게 구사될 때 좋은 시는 탄생하는 것이다. “이른 봄”을 비롯한 윤경선의 시들은 모두 전통적인 서정시의 어법에다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정서가 결합되어 장차 시인으로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점은 시적 감수성의 설익음이 얼핏 보였음에도 충분히 상쇄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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