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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호 작품 이동실 시1, 수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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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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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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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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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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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22:10:08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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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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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緣分)
이동실
차(茶) 한 잔 달라는 걸
정(情)까지 태웠을까? 모락모락
아늑히 익어버린 시간들
휘휘청청 날 없는 칼로 베어낸 물길
발 없이 내달리던
그 긴 밤
살내음 떨칠 수 없어 후 후
뜨거운 한 모금
이어지는 담금질.
어느 ‘또래 상담자’
이동실
얼마 전의 일이다.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모범생인 여고생 K가 상담신청을 해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선생님 인생이란 이런 거예요?”
“인생이라니?”
인생을 논하기엔 좀 이른 것 같지 않은가. 나는 K의 말투에서 절망감 같은 것을 보았다. 그 어떤 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었을까? 안색은 피곤하고 눈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따뜻한 차 한 잔과 바삭거리는 과자를 권했다. 차와 과자를 먹으면서 안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조금 후 풀어놓은 사연은 이러했다.
같은 반에 외톨이로 지내는 친구 S가 있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학교나 기숙사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S는 사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그의 어머니는 딸의 말만 듣고 선생님께 항의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친구들은 멀어져갔고 외톨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내게 내담자로 온 K는, 반장이기도 하지만 ‘또래 상담자’ 교육을 받았기에 S와 대화를 주고받으려 노력하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차츰 S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날이었다. K에게 다른 친구와 놀지 말라며 시기를 하고 토라지기까지 했다. 급기야 S의 어머니가 다녀갔고 담임선생은 반장에게 급식은 물론 체육시간에도 단짝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영문을 모르는 반 친구들은 반장이 변했다며 섭섭해 했다. K는 반 친구들에게 S와 잘 지내 줄 것을 권유해 보았지만 다들 머리를 흔들었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K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며 말했다.
“그 친구는 아직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자신의 행동이 친구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어머니도 S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계신게지.”
나는 상담자가 힘이 들면 좋은 상담이 될 수 없다며 담임선생님께도 의논드리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 주었다. 또 S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K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보였다.
며칠 후 약속 날짜가 아닌데도 전화를 해 왔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S가 반 친구들의 행동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것을 친구들이 보게 되었고 황당함에 따지고 든 것이었다. 그 일을 전해들은 S의 어머니는 집단 폭력이라며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학교에 비상이 걸렸고 상담선생이 나서서 친구들이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선생님 다시는 반장 안하고 싶어요. 제가 반장 노릇을 제대로 못해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까지 감싸준 반장도 섭섭하다고 수첩에 적혀 있었다니 상처가 클 것 같았다. 아름다운 여고시절 추억을 쌓으며 즐거워야 할 때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는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K를 꼭 안아 주었다.
“정말 힘들었겠다. 내가 만일 너라면 그렇게까지 못했을 거야. ‘애써준 나에게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따지고 들었을 텐데 끝까지 참아낸 네가 대견스럽구나. 나도 상담을 하지만, 할 때마다 힘이 들고 어려운 것 같더라. 그럴 땐 멘토 선생님께 도움을 받기도 한단다. 그런 상담자의 위치에서 보면 너는 지금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단다. 그러니 힘내자!”
그러자 K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소녀 특유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또래 상담교육’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또래’들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교육을 더 받아 보고 싶어요.”
K를 배웅하고 상념에 젖어 있으려니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시절 친구들의 이름은 숙희, 희야, 자야 등의 이름이 많았다. 그런데 ‘동실’이라는 내 이름은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장난스럽게 불렀다. 게다가 키도 작고 얼굴도 동글동글 했으니 놀림을 받기 십상이었다. 나는 학교만 갔다 오면 이름을 바꿔달라며 떼를 쓰곤 했다. 하루는 선생님도 내가 미워 놀리는 것이니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엉엉 울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화난 음성으로 꾸짖으셨다.
“하늘같은 선생님을 니 맘대로 생각하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일부터 밭에 가서 일이나 하도록 해라.”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니 손이 닿지 않는 벽에 내 책가방을 걸어두고 나가버리셨다. 어린마음에 아버지가 그리도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옆에서 말리지도 다독여 주지도 않던 어머니도 싫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고 무섭기만 했던 부모님이 정말 미웠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또 내가 어미가 되고서야 부모님의 엄한 교육이 내게 얼마나 큰 힘으로 살아지고 있는지 항상 감사할 뿐이다.
K와 헤어진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맑음이었다. 반 친구들과 자장면 파티를 했다고 한다. S가 갑자기 전학을 가면서 담임선생님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는 부탁했다는 것이다. 일이 해결되어 안도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갑자기 나는 전학 간 S가 염려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는 상대가 만드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번 경우는 S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었던가. 피해자였던 학생이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를 보았던 터라 걱정이 된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진실함이 담긴 일관성 있는 교육관을 가진 교사의 역할이 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여왕의 교실"을 나는 참 많은 공감을 느끼며 감명 깊게 보았다. "여왕의 교실"처럼 하루빨리 어른들이 개입되지 않고 ‘또래 상담자’들이 많아 서로를 위할 줄 아는 좋은 시간들이 현실에 정착되기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사회’ 속에서 바라는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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