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작품 게시판

홈

22호 원고 (정유미, 시 5편)



추천 :	283	이름 :	정유미	작성일 :	2014-08-22 16:27:44	조회수 :	1,844

옛집에 들다

정유미

멀리서 보면 고개 돌리고
마주치면 데면데면했다
종일 걸어도 속이 풀리지 않는 날
삽짝을 들어선다

깊은 밤에만 떨어지던 홍시와
새벽이면 일어나 구시렁거리던
늙어빠진 장독이 허리를 펴고
공벌레 한 마리 굴러와
눈을 껌벅인다

정 든다는 건
바래고 빗물 젖어
홍시로 삭는 일이지
이윽고 쏟아져
살점 진득하니 바닥으로
뭉개지는 것이지

툇마루 앉아
정자나무 어른거리는
앞산 바라보다
삽짝을 나선다.

-------------------------------------------------

알라딘 문고

정유미

요술램프 지하 헌책방 귀퉁이
헐렁한 시집 코너 둘러보다
문지나 창비에서 나온 건 없나요
낯빛 뽀오얀 직원에게 묻는다
문제집은 저쪽에 있고
참고서는 건너편에 있다며
따라오라는데

다디 단 시집 하나 못 건지고
터덜터덜 돌아오다
소설은 신간도 금방인데
시집이 없다는 건
질리지 않는 치아바타
씹을수록 고소한 빵
한 번 꽂히면 잊지못한다는
평생을 베먹을 파니니
팔지 않을 시를 써야지
팔려가지 않을 시를 쓸거야
수리수리
알라딘.

------------------------------------------------

액세서리 목탁

정유미

백미러 아래 달랑거리던
액세서리 목탁
처음 달 때만 해도
지극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립스틱 고칠 때
창문 열 때
이봐 이봐
목이 쉬도록 외쳤는데
듣지 못했다

후진하다 눈에 띈
액세서리 목탁
놀라 돌아 본 부처님 얼굴.

---------------------------------------------------------

봄, 벌어지다

정유미

검정 비닐봉지를 탈출한 산낙지
배수관 타고 기어오르는 한낮 베란다
어디 물내라도 맡은 듯 필사적이다

고무장갑 끼고
대가리 쑥 뽑아 올리는데
텅!
내장이 발라지고
먹물통이 금새라도 벙글 듯
불록한 자목련 송이

막 벌어질듯
벌어질듯.

-----------------------------------------------------

묵은지

정유미

풀내 나는 김치는
손이 안가요
갖은 양념 색색 고명
눈길 당겨도
슴슴한 간에
맞춤 양념
해를 넘어 묵을수록
진맛 더하는
겉만 번들한 푸성귀
꿈도 못꾸죠
달큰하고 고소한
배춧잎 고루 배인
하늘 맛 땅 맛.



윤경선	2014-08-24 23:01:22

국장님 한편한편 주옥 같은 시에 머물어 행복한 밤입니다 옛집에서 삽짝문 열고 알라디 문고 갔다가 시집 한권사고 악세사리 목탁으로 부처님 마음이 되어 낙지도 자목련으로 보이고 묵은지 처럼은 깊은 맛이 나는 국장님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저는 내일 모레 안으로 올리 겠습니다.

회원작품 게시판

홈

Category	1184. 8999

번호	카테고리	제목	작성자	날짜	추천	조회
128	시	23호 문학지 [1]	임춘지	2015-08-21	214	1479
127	시	22호 특집 윤경선	윤경선	2014-08-25	247	1693
126	시	22호 원고입니다	이경식	2014-08-26	273	1584
125	시	22호 원고 및 사진	송영화	2014-08-31	260	1595
	시	22호 원고 (정유미, 시 5편) [1]	정유미	2014-08-22	283	1844
123	시	21호 출판 원고 김숙희	김숙희	2013-08-14	476	1834
122	수필	21호 작품 정순한 수필1	이동실	2013-08-20	398	2247
121	시	21호 작품 이동실 시1, 수필1 [1]	이동실	2013-08-05	463	1578
120	시	21호 작품 김용근	김숙희	2013-08-01	472	1766
119	시	21호 원고입니다	윤경선	2013-08-08	489	1660
118	시	21호 원고(완결판) [1]	김영애	2013-08-09	456	1666
117	시	20호 작품(김영애, 최종분) [3]	김영애	2012-08-26	473	1859


[1]..[86][87][88] 89 [9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