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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문학 20호 원고제출(5편)



추천 :	492	이름 :	정유미	작성일 :	2012-08-20 16:54:31	조회수 :	2,030

드문드문, 당신

대여기간 일주일, 시집을 빌린다
몽글몽글 침이 고여오는 것이
씹을수록 달라붙어

연애시절 그는
시집 속 빗물 같아서
한 구절 한 단락이 뻐근하게 저려와
아프게 묻곤 뜨겁게 끄덕였지

그의 우산이 되려
헤어지지 않을, 주문을 했어

손 안에 든
머리맡에 놓인
훔치거나 엿보지 않아도
드문드문 읽히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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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이야기

이사를 하고 들여놓은 화분에서
거미 한 마리
새 집 냄새를 맡고 내려오다
딱 걸렸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공처럼 몸을 말아
갈라진 타일 틈 사이 납작
숨어들었다

깊은 밤
생각 없이 화장실 문을 밀다
변기 위에 걸터앉은 녀석에게
목이라도 졸린다면

하필 그 때
놈이 줄을 타고 내려온 걸까
살짝 이르거나 늦었더라면
고개 돌리지 않았더라면

거기 있거라
일거수 일투족 바짝
안테나를 세우고 손발톱 치켜들고

농밀하고 끈끈한 비단을 짜야지
내 두려움 알아버린 그대가 지어가는
그대 슬픔 알아버린 달빛이 지어가는

비단을 훑어가듯 시간을 만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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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집

콧김이 센 점박이 황소는 낯을 심하게 가렸다
바람이 불면 머리칼 흰 할마시가 우는
남정네 하나 없는 마당이었다

열에 뜬 한밤중, 꺾여 온 댓잎들이
늘어진 어린 몸뚱이를 가만가만 쓸어 주었다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른 손을 비비고
대숲은 끓는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고 있었다

작두를 타서인가 외숙모는 눈이 파랬다

거미가 들창을 두드리고
부엉이 눈 같은 달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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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는

언니야- 부르면
와- 하고
돌아본 적 아득하다

언덕이 되려 하였으나
간이역 의자도
강이 되려 하였으나
달큰한 물 한 잔 되지 못하였다

쏙쏙쏙 쑥을 캐며
언니야-
내가 부르곤 내가 뜨끈한
사월에는

누가 나를 불러주었으면
바구니 찰랑찰랑
쑥을 담아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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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찾아서

내게는 등이 없어
토닥임의 기억이 없어
업어줄 둥근 등을 찾아
헤메인 날들

등대였을까 그것은
아버지 부르면
등을 내 줄 것 같은

그래서였지
바닷가 저잣거리
소식 들리면 달려가
세웠어

골병 든 다리 허리
목선을 타고서라도



송영화	2012-08-20 18:34:07

눈이 아파 오네요 어제 부터 기다렸더니.. 좋은 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살다 살다 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배고프면 밥먹으려 가면 되는 데 살다 살다 가 누군가 그리우면 어쩌지...



손국복	2012-08-21 09:13:25

* 시인의 가슴은 늘 시리고 아프다. 겉으로 태연한 척 맹열히 살아내는 것 같지만 그 속에 깊게 베어있는 슬픔을, 아픈 과거를 함부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시인이여! 속이 곪아 문드러지도록 많이 아프세요. 그 상처가 굳은 살이되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만요---



정유미	2012-08-21 10:12:27

그리움이 넘쳐야 시가 무럭무럭 자라 나오지요. 명약은 시!입니다요. 송시인님이시여~



윤경선	2012-08-21 13:07:08

점심시간에 유미씨 시에 머물다 갑니다 늘 문협을 위해 늘 수고하는 국장님 시즐감하였답니다 .



문학회	2013-06-19 10:16:29

댓글을 정리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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