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벚꽃
임춘지
가지마다 애절하게 매달린
하얗게 핀 그리움
시샘하는 꽃샘 추위
눈 바람으로
꽃비로
탄성 자아내며
말없이
허공으로
흩어져 날리우고.
2. 봄비
임춘지
나즈막이 가라앉은 새벽 구름
제 무게에 못이겨
비를 뿌린다
굶주린 배에
곳간을 열 듯
하늘은 몸을 가르고
자박자박
메마른 땅을
눈물인 듯 적신다
비를 머금은 생명체
춤추는 짜릿한 전율
기억 속 깊이 묵혀 두었던
잔잔한 흙내음
이대로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
3. 어머니
임춘지
온갖 일을 해내고도
아픈 데가 없다는 어머니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면서
미리 먹었다 한다
가족이 무던히 속을 썩여도
자식이 애를 먹여도
팔자려니 여기고 기다리신다
촘촘한 머리칼이 수세미 같이
히멀겋게 헐빈 해지고
늙은 코끼리 목주름처럼
모진 시련 온몸에 주름 져
그 주름 만큼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는 하늘에 계신
엄마를 안고 소리없이 흐느끼신다.
4. 소중한 인연
임춘지
밝은 불빛으로
내 속의 별을 볼 수 없어
불을 꺼고
어둠을 꺼내어
긴
숨을 들이 킨다
별을 본다
어둠에 가려진 빛
감춰진 사람
그 무엇들
지난한 시간을 함께하고도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잔잔한 구름으로
소슬한 바람으로
내 곁에 있다.
5. 은마아파트
임춘지
지루한 장마 틈새로
차가운 달빛이 사색한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
4만6천여 가구가 사는곳
어둠을 뚫고
하나 둘 셋
원고지에 불이 켜진다
도란도란 시가 쓰이고 노래를 한다
응애 아가야 기저귀가 춤추고
맛있는 식사로 수필이 창가로 나온다
양재천 시냇가엔 방게는 옆걸음으로
무리지은 오리가 물장구 친다
뭔가를 해야 하고
꿈틀거리는 이 곳
긴장의 끈으로 팽팽한 대치동
살아서 움직이는 이곳에서
티끌 먼지를 불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산처럼 큰 불협화음도 같이 가야하는
또 다른 인생을
인내하며 사색하고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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