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마라
스러지는 꽃 이파리거나
노을 지는 산기슭 쑥국새 울음이거나
화장장 불꽃 위에 흩어지는
사랑이거나
변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눈물짓지 마라
한 여름 달궈 놓던 매미 울음
농익은 고독 삭혀 짓무른 황국
바람에 떠밀려 흩어지는 낙엽도
제 갈길 가는 것이니
고추잠자리 마지막 고별 비행하는
늦가을
마지막 병상에서
고통의 사막 여행길
온 것만큼 다행인
단막극 생명여행 무대 앞에서
회한의 짙은 슬픔
함부로 보이지 말라
해 지고 달 뜨는
섭리의 사구에서.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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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손국복
바라다보면 품이 그립고
품에 들면
파고 들고픈
끝없는 참선
비 오는 날이면
빗장을 걸고
온 몸으로 눈물 채워
마침내 우우
잿빛 그리움 왈칵
골골이 쏟아내는
슬픈 법어
지나다 보면 거기 그대로
다가서면
태연한 몸짓으로
한 걸음 물러서는
기품의 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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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 소리길
손국복
언제쯤 붙었을까 저 나무
얼마나 견뎠을까 저 바위
숱한 풀꽃이 지고
수많은 사람 스쳐 지나는
홍류동 소리길
태초에 내린 물
아직도 맥을 잇는
농산정 너럭바위
선비의 음풍농월
한량의 노랫가락
만물상 칠불봉 상왕봉 타고 넘는
가야산 굽이굽이
법보종찰 해인사 에워싼
저 나무 저 바위
언제까지 앉았을까
얼마만큼 지켜낼까
해와 달 지고
비바람 드센데.
깨진 머리통엔
보드란 흙 살살 비벼
다이진 가루인양 뿌리고 나면
금새 보슬보슬 새살 돋았지
세월이 흘러
요오드 후시딘이 점령한 자리
그 옛날 솔솔 뿌려 돋은
흙살은 어디 갔을까
아스팔트 시멘트
훅훅 단내 나는 거리에서
너와 내가 숨통 조르다
깨지고 헤진 환부를
악의 메스에 찢기고 할퀸 상처를
다스릴 명약은 어디 있을까
얼어버린 마음밭 녹여줄 햇살
언제 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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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누리
손국복
개벼리 건너 벙구지
황강물 유유히 돌아
어머니 가슴팍 편안한 거북이 모랫벌
둥두렷이 떠오른 태양
대암산 이마에 햇살로 부서지는
넉넉한 땅 해누리
아침 여는 새소리
여름 익히는 매미소리
더위 식히는 별밤
작은곰 카시오페아 전갈
북극성 의연히 어둠 지키는 밤하늘
도랑물 소리
시원히 가슴 적셔주는
강변 초록정원
신록 창성한 여름 지나
참나무 갈빛 쓸쓸한 산기슭
흰 눈은 순백의 사랑에 손을 부비고
봄날 아침
시의 씨 뿌려
노래의 단비 적신
해누리 동산은
사람의 마을에 꽃등 밝혀 주리라.
*해누리 : 합천 율곡면 제내리 손국복 시인의 집이름.
*벙구지 : 합천 율곡면 제내리 범구주(벙구지) 지명 이름.
오랜만에 합천문학회 홈피에 놀러 왔어요.
나그네 그냥 발길 옮기려다 회장님 글이 쓸쓸할까
몇 자 적고 갑니다.
형체도 없이 허물어져야 새로운 시가 탄생하죠?
시의 거름 많이 만드셨으니
내년 봄엔 더욱 튼실히 싹을 틔우겠네요.
강배훈
2012-09-17 21:48:28
오늘은 월급날 - 밤늦게 문협 사무실에 나와 회장님의 시를 봅니다. 월급통장 카드를 들고 지하 에쿠스 단란주점에라도 가야는데 '썩은쥐'를 보며 무릎을 치고 있어 제가 장가를 못 가는 것인지...하하. 차분한 가운데 삶의 여울과 깊이가 묻어나는 시의 구절 구절들, 많이 와닿습니다. 한 번 즈음은 이 곳에서 막걸리를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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