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동 북천산(54년)
* 계간 현대시조 신인상(1996년) 당선으로 등단
* 현대시조 동인, 섬진시조문학회 회장, 한국․경남․합천⋅김해문협, 한국․경남․진주시조시인협회 회원
* 경남문협 이사, 경남시조시인협회 감사
* 한국아동문예문학상 수상(2013년) 및 아동문학(동.시조) 등단
* 한국아동문학회 회원
* 경남불교문인협회, 경남아동문학회 회원
* 시집 : 『합천호 맑은 물에 얼굴 씻는 달을 보게』김영성.김해석,이동배 3인 사화집, 2004. 고요아침 2013.5『흔적』
* 현 김해시 영운초등학교 교장
시인의 말
살아가는 자체가 시라고 생각하며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 헤맬 때 보는 대로 느낀 대로 즐기며 메모하고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스쳐간 곳이 많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져살아가는 일들이 재미있어지고 풍부해졌다. 마치 부자가 된 것 같다.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의 질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좀 더 애틋하게, 진지하게 남아있는 자취를 취하다 보니 세상이 밝게 맑게 보이기 시작했다.
올망졸망한 세상살이가 새로운 파라다이스로 다가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오직 자신에 대한 시련이다.
살아오면서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다른 새로운 눈으로 보기를 좋아했다. 내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나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보고자 글들을 모아보았다.
이 글들도 어쩌면 나의 살아온 흔적이 아닐까?
그래서 살아오면서 여행하면서 지나쳐 온 모든 것들,,,,,, 그리고 언제나 그리운 아늑한 고향 얘기들, 산, 강, 바다 그리고 섬. 정자 등 옛 사람들의 흔적을 대하면서 스친 인연을 토해 보았다.
요즈음 많은 시집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독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어려운 시들이기에 그렇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본다. 한 편에서는 나의 글에 대하여 너무 쉽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글들은 쉽기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공감을 주지 않을까? 문학성이 높은 좋은 글들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그저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나의 목소리나 작은 소식지랄까!
생애 첫 시집 어쨌던 기분 좋은 시작이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또 나의 글들이 좀 더 세련되어지고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또 다른 나의 시심이 성숙해졌으면 한다.
오늘 지금 또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처럼 꿈을 꿔 본다.
2013년 5월
이 동 배
흔적 1
- 가야산 소리길
물소리 하나 머금고 나도야 스며들고
바람 한 줌 짊어지고 오다가다 들고나면
새소리
주워들고서
즐거워라 한없이
갈색으로 덮은 마음 펼치며 불러보고
어설픈 세상사 숨어들지라도 한 참을...
등 굽은
노송 하나는
산비탈에 서 있다.
회향리 노송老松*
겉이 늙어 노송老松인가
속이 차서 청송靑松인가
심심深深 산골 인연 엮어
전설인 양 우뚝 섰다
천년송
숨소리 삭여
서성이던 고샅길
애닯은 연緣을 쫓아
품속에 감싸안은
인목대비 뒤엉킨 혼줄
구룡목龜龍木 쳐다본다.
일상日常을
훌훌 털고서
승천昇天하는 미목美木이여
회향리 老松 : 합천군 묘산면 회향리에 所在한 老松으로 수려한 형상이 돋보임. 조선조인목대비의 일가가 피난을 왔다는 곳으로 영창대군을 생각하는 인목대비의 혼이 깃들어져 있다고 전해져 오며 수령이 천년쯤 된다고 함.
마중물*
새 희망 꿈의 나래 멋지게 펼쳐 놓은
주고받는 마음받이 한 움큼 내던지고
나에겐
꿈이 있어요.
희망의 빛 영글다
여린 맘 쓰다듬고 바른 길 안내하는
깊은 곳 길어 올라 언제나 밝은 모습
살며시
다가가는 맘
안아주는 보살핌
언 마음 어루만져 빈자리 채워 놓은
마음 열어 마주 보는 든든한 동행 되어
살포시
감싸 안은 이
가슴 열고 품은 너
끝없이 넓은 세상 알록달록 색칠하며
무지개 꿈을 엮는 마음길 다져오는
어울려
담아 내린 정
솟아나는 환호성
*마중물 :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아니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물. priming water, fetch the pump
동해안 야행夜行
별빛 속에 달빛 속에 어둠에 묻혀 숨죽이는 시각
가만히 있던 밤이 하얀 눈밭에 스러집니다.
이 밤을
가르는 숨길
새하얀 첫경험이지요.
새 세상을 뚫고서 멈추지 않는 발길
동점행 밤기차 비둘기호는 달려갑니다.
추억을
저울질하는
슬픔 조각 부수면서요.
싸늘한 동해바다 검붉은 욕망들도
다가앉은 마음 흔적 희미한 그림자랍니다.
호젓한
무릉도원武陵桃源 엔
솔향기만 가득합니다.
시계방 창고
흐리고 퇴색한 세상 한 모퉁이
가다 멈춘 시각의 파편들이 쌓여있다.
아무런
몸짓이 없어
폐기처분된 시간들
생애 짓눌린 곪디 곪은 생채기에
새살 돋듯 째깍째깍 우짖는 욕망의 씨앗
기억의
회로가 끊긴
소리도 미동도 없는
아무도 모른다는 코끼리의 무덤처럼
시각의 사체死體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
등 굽고
낡고 제처진
부스러기 추억들
태엽이 풀어지고 전원이 끊어진
역사로 굳어진 그 날의 사연들과
서서히
부서져가는
모자이크된 진실들.
감포 앞바다
어둠이 잽싸게
다가서는 바닷가에
멀리서 반짝이던
쉰 바람이 안겨온다.
가난한
겨울바다는
늙은 고깃배 타고 있다.
부서져 내리는
밤바람 빛깔처럼
고요히 말라가는
저녁놀이 얹혀있다.
서러운
갈매기 울음
잠이 드는 작은 섬
출렁대는 햇살 아래
가만히 내려앉은
흐름으로 묻어 놓은
꿈길 같은 뱃길 따라
외딴섬
종종 걸음으로
내달으는 밤 이야기
발로 그린 유목주의자의 감성적 체험
-이동배 시조집 「흔적」에 부쳐
김복근(시조시인 ‧ 문학박사)
시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과 이상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 위하여 상상에 의한 에너지를 동원한다. 상상력은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없는 세계와 체험을 더하여 표현하는 의식으로 존재한다. 시는 새로운 표상을 제시하는 영감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이 갖는 창조의 힘에 의미를 두기도 하지만, 구체적 체험에 의한 상상세계가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사실 우리는 체험하지 않은 사실을 사유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우리의 경험 속에 포함된 기존인식과 사물에 대한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상력도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유의 기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의 모든 과정에 들어가 있는 감각과 정서적인 체험을 융합하게 하고, 생기를 주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동배는 발로 시조를 쓰는 유목주의자다. 자연과 역사적 현장을 직접 답사한 후 자신의 영감과 지적 상상력을 감성적으로 재구성한다. 체험을 상상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체험을 도출하고, 다시 반복되는 상상작용을 통하여 구체적 체험으로 재결합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따라서 그의 시조세계는 구체적 사물에 대한 인식에 의해 자신이 체험한 감정 상태가 자신의 사상과 결합된 심상으로 표출된다. 그의 시조가 진실하면서도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흔적을 답사하면서 보고 느끼고 지각한 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결합함으로써 형상화하는 성실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찍이 고려시대의 대시인 이규보는 ‘기가 부족한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기가 부족한 사람도 대자연을 자주 찾아다니면 기를 얻을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여기서 이규보가 말하는 기는 창의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가 부족한 사람이 시를 쓰려고 하면 자연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창의성을 북돋우어야 한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이동배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이다. 자신의 기를 키우기 위해 자연을 찾아다니고, 그 흔적에서 취재한 모티브를 직관적인 서정세계로 표현하거나, 역사적 현상에 대한 자각, 노령화 사회에 대한 불안, 교육에 대한 바람 등 감성적 체험에 의한 지각과 상상력으로 비빔질 하여 새로운 시조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1. 직관적 서정세계
이동배는 자연에 대한 답사를 통해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면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에 의한 체험을 감각과 지각 작용에 의해 새로운 사실로 의미부여를 하면서 직관적인 서정성으로 표출한다.
별빛 속에 달빛 속에 어둠에 묻혀 숨죽이는 시각
가만히 있던 밤이 하얀 눈밭에 스러집니다.
이 밤을
가르는 숨길
새하얀 첫 경험이지요.
새 세상을 뚫고서 멈추지 않는 발길
동점행 밤기차 비둘기호는 달려갑니다.
추억을
저울질하는
슬픔 조각 부수면서요.
싸늘한 동해바다 검붉은 욕망들도
다가앉은 마음 흔적 희미한 그림자랍니다.
호젓한
무릉도원武陵桃源엔
솔향기만 가득합니다.
-「동해안 야행夜行」전문
고요한 밤이다. 별빛과 달빛이 어둠에 묻혀 숨을 죽이고 있다. 시인은 눈 내리는 밤기차를 타고 동해안의 동점역으로 간다. 허만하 시인이‘가파른 벼랑 발치를 깨물며/유연히 흐르는 검은 산협의 물/그, 기슭에 추락할 듯 간신히 붙어선/한없이 조용한 시골역’이라고 노래한 동점역(銅店驛)은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에 위치한 역이다. 여객열차는 정차하지 않지만, 철암역에서 3km 가까이 내리막으로 연속된 피난선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피난선과 안전측선이 있는 오지의 한적한 역이지만, 여행객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어둠’도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던 밤’도 ‘눈밭’에 스러지는 ‘시각’에 화자는 ‘추억을/ 저울질하는/ 슬픔 조각’을 부수면서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는 밤기차를 타고 있다. 그의 삶의 여정은 고달프다. 그러나 긍정적이어서 의연하다.‘동해바다’는 ‘검붉은 욕망’들로 ‘희미한 그림자’를 보여주지만, ‘무릉도원엔/솔향기만 가득’하다. 무릉도원은 도연명이 꿈꾼 이상 세계로 동양인의 영원한 안식처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하는 이상적인 모델로 우리의 가슴을 휘어잡는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삶의 여유를 보이면서 갈등과 긴장관계에 얽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상향에 가까운 동해안 밤 여행을 은유적으로 권유한다.
이러한 양상은‘동해 쪽 먼 바다’를 사모하고 있는 「울릉도」와 ‘개펄 먹은 피조개’가 ‘피’를 토하는 「갯가에서」, ‘강물 위로 온유하는 바람이 되고 싶어’하는 「흔적 6 - 연어의 꿈」등 그의 시편 곳곳에서 직관적으로 표출되어 그의 서정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2. 역사적 현상에 대한 자각
이동배는 역사적인 세계관과 시대적인 이데올로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실존적인 고뇌와 번민과 상실감을 수용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한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시대상을 반영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금강물 따라가다 서해바다 떨어지는
오랜 역사 담아 내린 물줄기로 열린 터라
진한 삶
찾아서 떠난
청정淸淨 역사 귀향지歸鄕地
등잔불 희미해진 오고가는 나루터엔
일몰日沒이 흘려내려 일렁이는 낙조落照 이뤄
지는 해
철새의 군무群舞
어울려진 화폭이다.
배웅도 마중가도 새해가 가고 오면
어디로 물들이나 호젓이 여민 숨결
자연의
경이로움은
가창오리 나래짓.
- 「곰개나루」 전문
나루는 뱃길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강을 돌아가면 먼 길이 되지만, 나룻배를 이용하면 가깝게 건너갈 수 있다. 웅포의 곰개나루는 전북 익산시 웅포면의 금강에 있는 나루터로 곡식과 고기를 나르는 포구로 이름났다. 최무선이 왜구를 무찌르기도 하였고, 이성계가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정몽주는 우국충정의 시를 남기기도 한 역사적 배경지인 곰개나루. 금강 하구 둑이 생기면서 뱃길은 끊어졌지만, 시인은 ‘진한 삶/ 찾아서 떠난/ 청정 역사 귀향지’로 당시의 흔적을 유추한다.‘일몰’이 내린‘낙조’와 ‘철새의 군무’가 어우러지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나루는 이별과 만남의 여운이 길게 자리하는 곳이다. 지금은 낙조의 명소로 사람들이 요란하게 사진으로만 남기려 하지만, 화자는 ‘새해’가 가고 오는 길목에서 ‘숨결’마저 호젓하게 여미며, ‘자연의/경이로움’을 경탄하면서 회한에 젖어있다.
겉이 늙어 노송老松인가
속이 차서 청송靑松인가
심심深深 산골 인연 엮어
전설인 양 우뚝 섰다
천년송
숨소리 삭여
서성이던 고샅길
애닯은 연緣을 쫓아
품속에 감싸 안은
인목대비 뒤엉킨 혼줄
구룡목龜龍木 쳐다본다.
일상日常을
훌훌 털고서
승천昇天하는 미목美木이여
-「회향리 노송老松」전문
「곰개나루」가 자연을 대상으로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면, 「회향리 노송老松」은 보다 직정적으로 화자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이 달아둔 주에 의하면 회향리 노송은 합천군 묘산면 회향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조선조인목대비 일가가 피난을 왔던 곳으로 영창대군을 생각하는 인목대비의 혼이 깃들어져 있다고 전해지는 수령 천년의 노송으로 수려한 형상이 돋보인다고 한다.
첫수에서는 노송의 모습을 보는 느낌을 묘사하면서 서정적인 접근을 하다가 2수에서는 참혹한 시련을 체험하는 운명의 여인 인목대비와 영창대군과의 관계를 구룡목처럼 바라본다. ‘노송’인지, ‘청송’인지 구분이 안 되는 ‘천년송’은 역사성을 함의한 채 ‘일상을/ 훌훌 털고서/ 승천하는 미목’으로 자리한다.
시인의 역사 인식은 「소록도小鹿島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서러운 역병’은 ‘응혈진 풍경화’로 남았고, ‘애달픈 울부짖음’은 ‘단종대/ 핏빛 울음’으로 남아‘골을 따라’흐른다. 지금의 소록도는 한 폭의 한국화처럼 아늑하지만, 당시의 역사를 알고 보면 몸서리 쳐질 만큼 가혹했다.
3. 노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노령화 사회는 노령인구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 사회이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수준, 환경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는 점차 노령화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노인은 오랜 삶을 통해서 젊은이들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을 알고 있으며, 지식과 지혜를 가진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농경 사회가 상공업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지식도 오랜 것 보다는 새롭게 발전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하게 되고, 노인들은 부양을 해야 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형편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어둠이 잽싸게
다가서는 바닷가에
멀리서 반짝이던
쉰 바람이 안겨온다.
가난한
겨울바다는
늙은 고깃배 타고 있다.
부서져 내리는
밤바람 빛깔처럼
고요히 말라가는
저녁놀이 얹혀있다.
서러운
갈매기 울음
잠이 드는 작은 섬
- 「감포 앞바다」1.2수
시인의 시에는 노령화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군데군데 묻어 나온다. 동해안에는 해안선을 따라 도로와 시가지가 밀집해 있으며, 주요 어장의 하나인 감포가 있다. 감포 앞바다에서는 꽁치·대구·멸치·오징어 등이 많이 잡혔는데, 교통조건이 불리하여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감포에 발길이 닿은 시인은 ‘어둠’이 다가서는 ‘바닷가’에서 ‘쉰 바람’을 쏘이며,‘가난한/ 겨울바다’가 ‘늙은 고깃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감회를 피력한다.
우리나라의 장수촌은 바닷가에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난하면서 오래 사는 장수는 비극처럼 인식되고 있다. 한 때 주요 어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감포도 ‘갈매기 울음’마저 서러운 ‘작은 섬’이 됐다.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가 크면
모두가 훌쩍 훌쩍 떠나가기 때문
아이를
떠나보낸 섬
어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늙은 애비 어미 슬픈 사연, 갈매기 울음 되어
고즈넉한 그리움 켜켜이 쌓여 있는
파도는
외로운 섬마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아이들 웃음소리도, 만선의 뱃고동소리도
뭍에만 닿으면 어디로인지 사라져
희미한
그리움 남아
떠다니는 섬마을
-「섬마을은 세월이 무섭다」전문
「감포 앞바다」에서는 자연이 쇄락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섬마을은 세월이 무섭다」에서는 떠나간 젊은이들이 한번 떠나가면 돌아오지 않아 노인들만 모여 사는 노령화 사회를 조명하고 있다. 섬마을에는 단순히 자연연령이 높아져 노령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노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시골 마을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둥지에는 아이와 중․장년 노년층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산․어촌에는 환갑노인이 청년이라고 자조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흐리고 퇴색한 세상 한 모퉁이
가다 멈춘 시각의 파편들이 쌓여있다.
아무런
몸짓이 없어
폐기처분된 시간들
생애 짓눌린 곪디 곪은 생채기에
새살 돋듯 째깍째깍 우짖는 욕망의 씨앗
기억의
회로가 끊긴
소리도 미동도 없는
아무도 모른다는 코끼리의 무덤처럼
시각의 사체死體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
등 굽고
낡고 제처진
부스러기 추억들
태엽이 풀어지고 전원이 끊어진
역사로 굳어진 그 날의 사연들과
서서히
부서져가는
모자이크된 진실들
-「시계방 창고」전문
「시계방 창고」는 노령화 사회에 대한 신산한 삶의 흔적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시간. 누구도 그 시간의 흐름은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의 상상세계에서는 ‘시각의 파편’을 쌓기도 하고, ‘시간’을 ‘폐기처분’하기도 한다. 「시계방 창고」에는 ‘욕망의 씨앗’과 ‘시각의 사체’,‘추억의 부스러기’들이 ‘역사로 굳어진 그날의 사연’과 ‘진실’이 ‘모자이크’ 되어 나타난다. 화자 특유의 감정과 표현방식에 의해 시계방 창고는 무의미한 존재의 집합이 아니라 직관을 통한 세계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초월세계의 상징으로 형상화된다.
노령화 사회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부정적이지는 않다. ‘굽어진 세월 품고 오래된 문패 달고/ 늙으면서 멋대로 꿈틀거려 보면서/ 세월은/ 상처를 안고/ 멋들어지게’(흔적 4-밀양 혜산서원 앞 노송) 놀기도 하고, 나이든 소나무에 비기면서 우리 인간도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지혜를 체득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떠나고 돌아오는 기다림이 앉아 있는/ 코스모스 벙글벙글 피어나는 양지쯤/ 가끔은/ 작은 차창을/ 활짝 열고’(북천역)싶어 하기도 하면서 떠나간 젊은이들이 귀향하기를 기대하는 심리적 기제를 표출하기도 한다.
4. 교육에 대한 바람
각박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시인이지만, 교육에 대한 기대수준은 긍정적이다. 사회 문제 해결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제고해야 한다. 교육의 현장에서 오랜 세월 학생교육을 담당해온 시인은 교육에 대한 희망메시지를 발화하고 있다.
새 희망 꿈의 나래 멋지게 펼쳐 놓은
주고받는 마음받이 한 움큼 내던지고
나에겐
꿈이 있어요.
희망의 빛 영글다
여린 맘 쓰다듬고 바른 길 안내하는
깊은 곳 길어 올라 언제나 밝은 모습
살며시
다가가는 맘
안아주는 보살핌
언 마음 어루만져 빈자리 채워 놓은
마음 열어 마주 보는 든든한 동행 되어
살포시
감싸 안은 이
가슴 열고 품은 너
끝없이 넓은 세상 알록달록 색칠하며
무지개 꿈을 엮는 마음 길 다져오는
어울려
담아 내린 정
솟아나는 환호성
-「마중물」전문
마중물은 우물물을 잣아 올리기 위해 미리 펌프에 부어주는 물이다. 교육은 마중물이다. 교육은 미래사회의 인재를 키우는 희망 기제다. 교육의 양태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에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활동이다. 마중물을 아껴서는 물을 퍼 올릴 수 없듯이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없으면 당연히 바른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한 화자의 인식은 긍정적이다. 화자는 ‘꿈’이 있고, ‘희망의 빛’이 영글고 있어 ‘안아주는 보살핌’으로 ‘살포시/ 감싸 안으면’‘무지개 꿈’을 엮어 ‘마음 길’ 다져오며, ‘환호성’이 솟아난다고 하였다. 평이한 표현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지만, 교육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세상에!
봄이 오고 있다고 꽃이 핀대요.
길섶, 키 작은 노란 민들레 꽃봉오리
양지뜸
늙은 매화나무
천년향 확 터트려
동구밖
송 송 송 노오란 개나리꽃
시냇가에 갯버들가지 꽃잎 달고 휘청거려
첫사랑
파랑새부부
유채꽃밭 숨어든다.
어머나!
봄비가 내리니까 봄소식 온대요.
산골짝 강어귀 산수유 활짝 웃고
벚나무
꽃그늘 아래
반가워서 화들짝.
뒷동산
산등성이 진달래꽃 물들이고
정원엔 속닥속닥 목련꽃 꽃봉오리
요렇게
피고 지니까
봄이 오는 거래요.
-「개화」전문
「개화」는「마중물」에 비해 더 직정적이다. 화자의 동심이 꿈과 희망으로 그대로 살아난다. 이 작품은 4수로 된 연시조이지만, 엄밀히 보면 2개의 의미구조로 나누어진다. 첫째 의미구조는‘봄이 오고 있다고 꽃이’피고, ‘민들레’와 ‘늙은 매화나무’도‘천년향’을 터뜨리면, ‘첫사랑/ 파랑새부부/ 유채꽃밭 숨어든다.’고 했다. 두 번 째 의미구조는 ‘봄비가 내리니까 봄소식’이 오고, ‘산수유’도 ‘활짝’웃으며,‘진달래’와‘목련꽃’이 ‘피고지니까/ 봄이 오는’거라고 한다. 화자의 체험이 은유되어 상상력으로 발현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상상력은 체험에 의한 감각적인 지각을 능동적으로 종합하는 능력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보면서 현실체험과 사유과정으로 융합하여 동심이 잘 드러나게 표현했다.
이동배는 시적 체험을 내재화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는 시인이다. 새로운 체험을 위해 사물이나 사건에 노출되기도 하고, 유목주의자적인 체험 활동을 통해 감각적인 지각과 사건에 대한 관찰,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상상력은 영감이나 직관처럼 체험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 그러한 체험들을 종합적으로 구성하여 우리가 현실에서 보지 못한 것을 새롭게 창조하거나 완전하게 한다. J. 애디슨은 “상상의 기능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현상이나 실재의 부족한 것을 보다 새롭게 꾸며 완전하게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파악했다. 체험이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을 때 그것은 이미지로 나타나며, 감각의 대상이 없을 때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체험에 의한 감각들을 종합하여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현대 시학은 상상력을 심리현상의 하나로 보고 무의식의 발로를 시의 상상력과 관련시켜 표현하는 추세로 전환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의식의 표출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시인의 자유로운 영감의 발현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배는 복잡하고 혼란한 이미지보다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을 동원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표현으로 맑고 진실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발로 그린 그의 감성적 체험이 시조의 외연 확장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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