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걸음을 하고 뻔 한 잔고에도 얼마가 남았을까를 저울질하며 365코너에서 띵띵띵 자동 출납기를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구석진 자리 우두커니 나를 쳐다보며 웅크리고 앉아 눈만 껌뻑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별관심도 없이 힐긋 쳐다보았을 뿐 나는 구멍에서 시퍼런 배추잎사귀가 많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차르르륵 돈이 쏟아지는 소리에 안도의 이산화탄소를 마음껏 내뱉으며 밥 한번 먹자고해도 든든할 미소를 짓는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까지도 내 등짝을 잡아당기는 사람은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얀 안개꽃에 둘러싸여 붉은 주름을 겹겹이 하고 은은하게 웃으며 옷핀까지 꽂고서 …
“누구를 기다리시나봐요”
“응, 내 딸,”…
“어딜 갔는데요? 언제 온다고 말하고 갔어요?”
“응 낼이 어버이날이라나? 지난번에 그때 온다고 했거든 바쁜데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꾸 지다려지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으네”
“아! 그러세요? 따님 오면 잘 가세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응 걱정 말고 잘 가 항상 조심하고…….”
햇살은 때깔도 좋다. 구름은 바람을 타고 세상구경이고, 참새들은 고급 비타민을 먹었는지 짹짹짹 즐겁기만 하다.
나도 안 좋을 일이 전혀 없다. 비었던 지갑이 통통하니 맛난 거 사면 되고, 푸짐하게 사서 맛있게 먹고, 한숨 푸우욱 자고 일어나면 멋진 인생인거다. 그러니 돈이 있을 때 시장을 좀 봐야겠다. 아들 좋아하는 싱싱한 생선이랑, 딸들이 좋아하는 잘 익은 과일, 살아있는 해물을 가득 샀다. 시장바구니는 투덜댄다. 꼭 한번 씩 이렇게 혹사를 시킨다며 삐걱 삐걱 거리면서도 달달달 따라온다. 아랑곳없다. 내 새끼 먹일 것이니 시장바구니의 아픔쯤이야 눈도 깜짝 않고 부려먹는다. 그런데 사람들 오가는 시골시장터 사람들사이로 저만치서 냄비뚜껑을 두드리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골라요 골라 졸리지도 않고 내려오지도 않고 사이즈는 입었다하면 십문칠이요 색깔은 멋쟁이요 입기만 하면 안성맞춤이니 골라요 골라 어버이날 가장 좋은 고급선물. 볼 것도 없소 만원에 이런 명품 있음 내가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장을 지져! 백화점 들어가는 물건인데 어버이날 특별 상품으로 나왔으니 퍼뜩 고르는 기 잘하는기요 . 쫌 만 있어보소 금방 동이 나부 링께 그때는 부모죽고 나서 후회하는 자식과 같은기라요”
그렇게 다그치며 소리치자 누군가 큭큭 합죽웃음을 웃으며
“죽을 날 받아놓은 할마이 뿐이구마 불효자식이 될 끼나 어딧소?”
이래 옷 사 입으러 오는 것도 자식 잘 둔 행복이 구마 요즘 같은 경기에 찍 소리 않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효자인 것이지”
학교를 졸업한 어느 해 일이었다. 친정엄마 선물로 옷을 사서 집으로 갔다. 선물을 보시고 좋아하시더니 깜박 잊고 없애지 못한 가격표를 안 보는 듯 슬쩍 뒤집어 보고는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트집을 잡으셨다. 옷을 바꾸고 현금을 주면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고 싶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 바꾸어 드렸더니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거 실컷 사고도 돈이 남았다며 자랑하던 우리 엄마의 실체를 오늘에야 본 것이다. 그렇게 절약하고 아끼면서 오로지 자식들 걱정으로 좋은 것 한번 몸에 걸치지 못하고 고부랑 할머니가 된 것이 무심한 세월 탓으로만 말하시던 우리 엄마…
꿈에서 깨어나듯 이마엔 한줄기 땀이 흐르고 내주위에는 여전히 지팡이 허리를 한 할머니들이 소부레기 모여 천원만 깎자며 졸라대고 있다. 옷을 고르는 저 할머니도 하얀 꽃으로 딸을 기다리던 쓸쓸한 할머니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엄마였던 것이다. 전화도 가뭄에 콩나듯이 하고 거리가 멀다고 일 년에 한두 번 고작 친정을 가서 빼곰이 얼굴만 내밀고는 내 새끼 키운다고 달려왔건만 당신은 당신 자식인 나를 애타게 기다리며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고운 척 분장한 파운데이션이 불어터져 찐득하게 녹아내리고 가슴은 두들겨 맞은 듯 폭포소리가 난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눈물은 이렇게 살아온 나를 속죄시키듯 온몸으로 가득 가득 흘러내린다. 아이 셋을 낳고서도 내 자식 입에 넣을 양식만 살 줄 알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가슴이 아팠다. 그새 시장바구니는 널부러져 뱃속을 뒤집어 놓고 시장구경을 즐기고 있다. 어쩜 물건조차 철없는 주인을 닮았냐며 투덜거리고 시장바구니를 일으켜 세워 엄마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빨래 2.
이동실
삶을 통째로 다시
빨아 널고 싶다
지친 살덩이
턱 막힌 가슴
앙상하게 말라버린 영혼을
내어 널고 싶다
푸른 강으로 달려
묵혀둔 첫사랑
주머니 속 추억
꾹
꾹
눌러 밟아주고 싶다
피어버린 곰팡이
풀 죽은 구정물이 되고
젖가슴 고들고들 해 질 때까지
나를 통째로 빨고 싶다.
시
이동실
뱉지 못해
이 악물고 울고 있다
피 눈물 같은 뼛속 물관
슬픔에 녹고
꿈틀대는 심장 터질듯 한데
아직
달콤하게 삭히지 못한 것일까?
웅
웅
소리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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