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6 하동 구례지역 문학기행
하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2016 문학기행으로 찾아간 곳은 입동이 지난 만추의 끝자락인 11월 26일부터 27일까지 1박 2일 여정의 하동 구례지역이다.
출발 집결지인 카페토랑 나비 앞에 오전 9시가 되면서 회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김상완 손국복, 최병태, 김숙희, 송영화, 윤경선, 유미, 이동실, 박황규, 하철종, 김현숙, 이홍래, 이성동 회원과 진주에서 합류한 이경식 회원 등 예년보다 더 많은 14명의 회원이 작년 청산도 문학기행 시에도 운행하면서 호감을 느낄 수 있었던 마음 좋은 기사님 ㈜ 엔젤렌터카 합천영업소 이오성 사장님의 25인승 버스에 탑승하여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여정의 길에 올랐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운무가 짙게 깔린 대구-진주간 국도에 진입한지 10여분 지나 박황규 사무국장의 일정 소개와 송영화 회장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자, 김현숙 간사가 마이크를 잡고 예년처럼 차안 레크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회원 각자에게 자기소개를 하게 하면서 먼저 앞 사람의 자기 소개말을 그대로 반복시키고, 그 사람 옆에 앉은 나는 누구이며, 나의 취미와 장점과 단점을 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일 먼저 발표한 사람은 맨 앞좌석에 앉은 이동실 회원이다.
그녀는 평소에 말을 재치 있게 잘 구사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는 분위기 메이커다. 그녀의 장점은 잘 웃고, 단점은 잘 까먹으며, 취미생활로 요즘 시조창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 옆에 앉은 이홍래 회원은 합천문학회에 몸담고 있는 것을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한다. 지난해 일본문학기행에 불참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그 아쉬움을 달래는 마음으로 회원들과 함께 이번 여행을 가장 멋지게 보내고 싶다고 말하며, 취미는 마라톤과 음악이란다.
그 뒤에 앉은 이경식 회원은 거주하는 집과 직장(법원)이 진주이지만 합천문협행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성실한 회원이다. 장점은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고, 단점은 어떤 일에도 금방 식상해한다고 한단다.
그 뒤에 앉은 손국복 회원은 합천교육장으로 근무하다가 금년 3월에 진주중학교에 전출되어 매일 합천에서 진주까지 출퇴근한다. 공식행사나 협회행사에서 향상 뛰어난 능변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놀라운 기량을 가지고 있다.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며 직무에 쫓기다 보니 자신의 장단점도 모르고 살고 왔으니 이대로 살다 죽으려한다고 말한다.
그 옆에 앉은 정유미 회원은 문협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사무처리나 회계업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재량을 발휘해 인정을 받고, 금년부터 예총사무국장에 발탁되어 근무 중이다. 그녀의 장점은 사람을 좋아하고, 단점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좋고 싫고가 없이 여여하면 상처도 없을 텐데 좋았던 사람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 하여 싫은 표를 내면 괴로움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그녀 옆에 앉은 이경선 회원은 양파와 수박 등 농산물을 많이 재배하며 여가 틈틈이 시를 쓰고 일상을 바쁘게 살고 있지만, 늘 털털한 웃음을 잃지 않는 소박하고 마음씨 고운 농부시인이다. 그녀의 취미는 흙을 헤집고, 뒤집는 것이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잘 짓고, 자연을 벗삼아 설레이는 삶을 살고자 한단다. 단점은 키가 작아서 대중 앞에 서면 주눅이 잘 든다고 말한다.
그녀 옆에 앉은 김상완 회원은 인상이 매우 인자해 보이는 미남형 얼굴이다. 근래 교직에서 퇴임 후 합천 초계에 새 둥지를 틀고, 농촌 전원생활을 하며 합천문협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여 글을 쓰게 된 것이 남들 서울대 입학해서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단다. 마음은 항상 서슬 푸르게 정의를 위해 살아가려하나 잘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스스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겸손해 한다.
김상완 회원 옆에 앉은 김숙희 회원은 여성으로서 전임 문협회장으로 있을 때나 현재 예총회장직에 있으면서 그 자리 역대 여느 남자회장 못지않은 리더십을 가지고 훌륭히 그 직무를 잘 수행해 내고 있다. 어떤 행사이든지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막힘이 없고 대중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녀는 자신을 “옛날에는 참 모질고 차가운 여자였으나 지금은 모가 닳아서 누가 봐도 많이 부드러워 보일 것이다. 지금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고, 살아오면서 가슴에 쌓이고 쌓인 설음이 많다”며 그 순간 눌려있던 설음이 폭발해 작년 청산도 가면서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어 소녀처럼 또 울고 말았다.
김숙희 회원 옆에 앉은 송영화 회장은 가야면 숭산들 일원에 집단 쌀농장을 만들어 친환경 쌀을 생산하고 부산 등 인접 시군에 판로를 개척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촌 지도자이다. 평소 바빠서 여행을 한 번 제대로 못해 가까운 섬 제주도라도 한 번 가보고 싶으나 정작 떠나지 못하는 것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그리움이 있고, 또 그 그리움이 가슴을 아프게도 하지만 모든 것을 사랑으로 승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번 문학기행을 “사랑이자 그리움”의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
그 송회장 옆에 앉은 최병태 부회장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살고 있는 불굴의 사나이다. 아무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그의 장점은 잘 먹고, 많이 먹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게으르다는 것이다. 오늘 문협회원들과 함께 여행을 와서 기분이 참으로 좋다고 하였다.
그 옆에 앉은 나 이성동 회원은 마이크를 잡고, 먼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현숙 회원을 가리키며 “대중 앞에 마이크를 들고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순간은 누구나 진지해지고 묻는 말에 꼼짝 없이 응답을 하게 하는 정말 파워가 대단한 여인이다”라고 그녀를 치겨 올려 세우면서, 이번 문학기행부터 그녀를 작은 거인( A Little Giant)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문학기행을 함께 하기 위해서 서울까지 가서 허리와 다리 통증을 치료하고 왔다고 말했다. 나의 취미생활은 산행이다. 청정한 산속의 자연과 교감하고 호흡하며 여가를 즐기는 것이고, 단점은 오랜 군생활이 몸에 베어 원칙과 딱딱함이 대인관계에 좋지 않음을 느꼈다고 말하고, 나이 60에 접어들면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드럽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 옆에 앉은 하철종 회원은 작년 우리 문협에 가입한 신입 회원으로 예의 바르고 겸손하지만 회원 모임 시에는 분위기를 활성화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다. 장점은 도량이 넓어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단점은 행동이 좀 느린 편이란다.
그 옆에 앉은 박황규 사무국장은 합천신문 발행인으로 지역 언론에 종사하면서도 국선도 지도자로서 누구보다도 활동범위가 넓고 하는 일도 많은 차분한 성품의 소유자다. 자신의 장점은 무던하고, 단점은 심심해서 재미가 없다고 말하면서 바르게 살려고 많이 노력하고, 또한 문학회에서 우리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이어서 두 번 째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은 요즘 나의 근황, 나의 마음의 상태 등을 하나의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떠한 색인가를 말하고 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묻고 응답하는 것으로 전 회원들이 나름대로 잘 표현했지만, 표현 내용이 너무 많아 그 기술(記述)을 생락한다.
이동배 시인의 청심연가 방문
일행이 대구-진주간 국도와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오전 11시경 도착한 곳은 지리산 끝자락 이동배 시조시인의 부부가 교직에서 퇴임하여 새로운 둥지로 정착하기 위해 마련한 집이다. 하동군 북천면 상촌길 일대와 지리산 계곡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60평 단층 경량목구조의 서양식 건물로 그 호명(戶名)도 아름다운 ‘청심연가’이다. 청심연가의 주인인 이동배 시인은 새벽에 하동포구에 나가 싱싱한 장어를 구입해 와서 직접 요리를 하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언덕 위의 첨심연가는 그동안 건축공정에 큰 장비가 동원되어 길을 내고 기초 토목공사와 건물을 구축하면서 많은 노력과 재정이 투입된 것은 물론, 전기선과 상수도 등 부대시설(附帶施設) 설치 공사도 만만치 않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집 옹벽 밑 계곡 한쪽에는 이 시인이 근간에 엮어서 만들었다는 소일거리 화초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이곳은 이렇게 다른 인가와 멀리 떨어져 산 속의 자연과 교감하면서 부인과 함께 여생을 즐기며 살고 싶은 그들만의 오붓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아들과 며누리, 손주들이 주말에 한 번씩 찾아오면 집안의 고요한 적막이 깨지고 시끌벅적한 행복감도 안겨줄 것이다. 이 집에서 우리 일행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 시인의 인사를 뒤로 하고 상촌길을 되돌아 나와서 이날 정오가 조금 지나 하동 군청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북천면 직전리 경서대로가에 있는 ‘코스모스 & 메밀가든 식당’에 도착했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직원들의 환영리셉션
일행이 ‘코스모스 & 메밀가든’ 식당에 도착하였을 때 하동군청 김재권 문화관광과실장 외 5명의 직원들이 미리 와서 대기해 있다가 식당 앞에서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주말 여가를 즐기고 있을 시간에 한 두 명도 아닌 6명의 군청직원들이 평소 면식(面識)도 교류도 없었던 낯선 타 지방의 문화예술인들을 그것도 공휴일날 현장에 나와 이렇게 열렬히 영접해주는 것은 타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파격적(破格的)인 예우로 느껴졌다. 식당 안에 들어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양측 대표의 인사말이 있고서야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하동군 부군수직에서 근년에 퇴임한 공대일 부군수님이 이전에 합천군 부군수 재직 시에 당시 손국복 합천교육장님과 서로 깊은 우정과 신뢰관계를 쌓은 사이였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이 반영되어, 그 같은 환영 리셉션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관광자원을 콘텐츠로 미래비전을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문화관광과 실장을 서기관으로 임명한 것만으로도 하동군의 문화예술정책이 일보 앞서감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문화우선주의가 타 지방의 문화예술인 방문을 그렇게 열렬히 환영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의 직원들의 환영리셉션을 마치고 이날 오후 한 시를 조금 지나 일행이 다음 코스로 도착한 곳은 이병주 문학관이었다.
이병주 문학관 방문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에 위치한 소설가 이병주 문학관에 도착했을 때는 입구에 미리 와 대기해 있던 김재권 실장이 우리 일행을 이곳에서 또 한 번 반겨주며 하동을 방문해준 데 대하여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향후에도 합천, 하동 양 지역간 활발한 문화예술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간단한 하직인사를 마치고 떠났다. 그리고 이어서 이병주문학기념관 전속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일행이 영상실에 들어가 역사기록유산 ‘지리산’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병주 문학은 선생의 고향인 지리산과 섬진강, 다도해를 배경으로 한 근현대사와 민족분단의 암울했던 시기의 시대사조(時代思潮)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병주문학관은 이 지역 문인들의 지성적 전통과 문학적 성과를 다듬고 축적하는 문학공간이다.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던 이병주는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작가의 길에 들어선 후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80여권의 방대한 작품울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등단작품인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시작으로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한 장편”낙엽“과 한국창작문학상의 ”망명의 늪“,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한 장편 ”비창’ 등이 있고, 작가의 정신이 담긴 작품들로 대하소설인 “지리산”, 소설남로당“, ”그해 5월“, ”산하“, 관부연락선” 등이 있다. 전시관에는 작가가 생전에 사용하던 만년필과 책상을 비롯한 유품 38점, 도서 2,000여권 등을 볼 수 있었다.
청학동 삼성궁 방문
일행이 이병주 문학관을 나와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신선도장(神仙道場)이다. 이날 오후 3시경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집행부가 현장에서 사주는 비옷을 입고 기념촬영을 한 후 모두 삼성궁으로 향했다. 이 신선도장은 우리나라 토착종교인 도교 중흥의 현장이다. 삼성궁 입구에는 한 줄로 늘어선 솟대들이 곧 하늘을 날 듯한 비상(飛狀)의 형세(形勢)를 취하고 있었다. 이 솟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새의 상징물로써, 고대사회에서는 마을 입구에 서낭당과 함께 이런 솟대들을 만들어 동네 입구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언제든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을 하늘로 승천해주기 위해서이다. 삼신, 삼성, 소도, 솟대는 도교신앙에서 나오는 단어들이다. 삼성궁은 이 고장 출신 강민주(일명 한풀선사) 선생이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이곳에 우리 민족의 성조이신 환인, 환웅, 단군 등 세 분의 성인(聖人)을 모셨다고 한다.
원래는 이 세분 성인들을 제사하기 위한 사당(祠堂)으로 만든 것인데, 선도(仙道) 즉 도교의 중흥을 위해 1984년 삼성궁으로 개명하고, 화전민이 살았던 폐허의 터전에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주어모아 담을 쌓아 오늘의 삼성궁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도에는 범법자가 이곳에 숨어 들어와도 관권(官權)이 미칠 수 없는 신성불가침 지역이었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인 삼한에서는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천군(天君:제사장)을 선발하여 이 장소에서 하늘에 제사하며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고 한다. 소도 옛터인 삼성궁 계단과 그 주변에 쌓여있는 1.500여개의 돌탑들은 고대사회 적석문화(積石文化)의 한 단면이다. 특이한 팔작지붕 형태의 삼성궁 안에는 삼성을 모신 사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삼성은 삼신이라고도 말하는데, 불교와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으로 농촌마을에서는 매년 봄`가을로 액(厄)을 막고 풍농(豐農)을 기원하는 제액풍농제의(除厄豐農祭儀)와 어촌마을에서는 풍어굿, 용신굿을 주로 한다. 현재도 이곳에서는 매년 3월 16일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삼신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일행이 삼성궁 탐방을 마치고 섬진강 대로에 위치한 펜션물꽃정원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후 4시 30분이다.
펜션물꽃정원에서 숙박
펜션물꽃정원은 최근에 지은 것으로 구례와 하동을 연결하는 섬진강과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대규모 숙박시설이다. 배정된 방에 여장을 풀고 일행은 이 펜션에서 운영하고 있는 섬진강포구식당에서 하동에 가면 꼭 맛을 봐야 한다고 하는 별식, ‘참게가리장’을 스페샬로 만찬을 즐겼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 참게를 한두 마리 적게 넣고 양을 늘려 공복(空腹)을 채우기 위해 밀가루를 풀어 끓여서 먹던 음식이었는데, 이젠 밀가루 대신 쌀가루, 콩가루 등을 듬뿍 넣고 구수하게 끓여 먹는 별미 중의 별미가 되었다고 한다. 만찬이 끝난 후 일행이 들른 곳은 가수 수니킴과 키타리스트 김성환 뚜엣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물꽃정원 2층에 마련된 강의실이었다. 이 뚜엣 재즈공연 소음악회는 그날 화개장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것을 현재 하동군 예총회장이자 이곳 펜션물꽃정원을 운영하는 강태진 사장님이 우리 일행을 환영하기 위하여 특별히 요청해서 이곳 강당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김성환의 키타연주에 맞춘 허스키한 음색의 수니킴이 부르는 재즈곡은 서양 음악에 둔감한 사람이 들어도 경쾌하면서도 감미로운 무드에 신명이 절로 났다. 이 흥겨운 무드에 맞춰 하철종, 이홍래 회원이 무대 앞에 나가 가수 김흥국의 역동적인 호랑나비곡 춤사위를 벌이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갔다. 여기에다 가수 진미령보다 더 매력적인 음색의 정유미 회원이 무대에 올라 그녀 특유의 ‘소녀와 가로등’을 구성지게 부를 때는 그날 밤 홀 안의 무드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공연 도중에 공대일 전 합천 부군수님께서 이곳 공연장에 방문하여 진정어린 환영사를 할 때는 객지에서 고향까마귀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펜션의 밤 레크레이션
그날 밤 재즈공연이 끝나고 밤 9시경 일행이 숙실로 장소를 옮겨 여흥을 즐겼다. 김숙희, 송영화 두 분 회장님들은 재즈공연 도중 불가피한 사정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밤중에 합천으로 떠나고, 남은 회원들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노장들의 방에서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며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은 회원들을 청`백팀으로 나누고 청백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앞에서 지시하는 사람의 구령에 따라 청기, 백기를 양손에 들고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임으로 게임 도중 엇동작을 보일 때는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동요가사를 짓고 기존 동요곡에 맞춰 함께 불러보는 게임으로 시국을 풍자하는 해학적(諧謔的) 게임이다.
창작 대표곡 “정신 차려 대한민국” 한 곡만 여기에 소개한다. 이 노랫말은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의 원곡을 차용하여 다음 가사에 붙여 불렀다.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고파하는
백성이 최고인 대한민국
착한 사람등 뒤통수 후려치고
끝까지 갑질 오늘부터 안통한데요
정신차려 대한민국~~
정신차려 대한국민~~
정신번쩍 갑시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촛불민심 배반하면 나라꼴은 엉망진창
우리 같이 만들어! 살맛나는 대한민국~
~ ~ ~
세 번째 프로그램은 12월 6일밤 예총총회 송년의 밤 행사에 올리는 흥부와 놀부전 장기자랑 시나리오를 배역들이 읽어가며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펜션의 밤은 이렇게 자정이 가깝도록 유모어와 해학이 넘쳐나는 화기애애 (和氣靄靄)애애한 분위기 속에 박장(拍掌)과 파안대소(破顔大笑)를 연발하며 정답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튿날 펜션 불꽃정원의 아침
이튿날 아침, ‘섬진강포구식당’에서 이 지방 토속식품인 제첩국을 별미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2일째 여정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현숙이가 이 여관 정원으로 오르는 돌담 틈에 미리 숨겨놓은 종이쪽지를 찾아 보물찾기를 하며 누구나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동심이 절로 우러나온다. 보물찾기에 이어 현숙이가 또 언제 준비해두었는지 제기를 내놓으며 모두 어릴 때 즐겼던 제기차기를 하도록 명한다. 현숙이의 일정계획과 준비는 참으로 놀랍다. 가는 곳마다 무료함이 없도록 치밀한 프로그램을 짜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즐겼던 세시풍습인 제비차기가 시작되면서 일행은 또 동심으로 돌아갔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가도 그 속에 아이가 잠재해 있다가 여행할 때는 예외 없이 튀어나와 어린 아이로 돌변하며 즐거워하는 것 같다.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는 현숙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무엇이든지 기탄없이 하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섬호정에 오르다
하룻밤 묵었던 물꽃정원을 출발할 때는 쾌청한 날씨에 섬진강 맑은 물결이 상쾌한 아침나절이다. 하동읍을 통과한 일행은 섬호정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섬호정 전망대를 향했다. 전망대 중간쯤에는 6,25 전쟁 중에 국토를 수호하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충혼탑이 있고, 그 주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곳마다 벤치들이 놓여 있어서 하동읍민들이 사시사철 올라와 여가를 즐기기에 충분한 휴식공간이다. 거기서 조금 더 오르니 옥색치마에 금박물린 댕기를 단 성춘향 같은 어여쁜 아가씨가 금방이라도 창공을 차고 오를 것 같은 그네가 있었다. 이동실 회원이 그 기량을 뽐내려고 그네에 올랐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시간 섬호정 누정 위에는 먼저 오른 손국복, 최병태, 이경식, 정유미 회원들이 거기서도 또 재기차기를 하며 웃음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서산에 해 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을 일장춘몽이라 하지 않았던가, 낯선 곳 이곳 하동까지 와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어린 아이처럼 동심의 세계에서 함께 어우러져 제기도 차고, 그네도 타며 동심의 세계에 젖어드니 이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 흥겨운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의 무동산, 불암산, 억불봉과 하동송림을 병풍처럼 두른 맑은 섬진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섬진강 송호림 둘레길 산책
일행은 다시 섬호정에서 내려와 이 지방의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섬진강변 송호림 숲둘레길을 산책하였다. 수천년 강물이 흐르면서 삼각주를 이룬 명사십리 같은 모래사장을 옆에 끼고, 수령 56년에서 230년이 넘은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숲속 300미터 흙길과 가족들이 나와 맨발로 강변모래사장에서 주말 여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옆으로 지며보며, 섬진강변 둘레길을 걸어 되돌아 나왔다.
섬진강은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 우왕 때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려고 하는 순간, 진상면 섬거에 살던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들어 진을 치고 울부짖는 통에 놀란 왜구들이 도망쳐서 당시 난을 피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이 강을 두꺼비 섬(贍)자와 나루진(津)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강변 둘레길을 걸어 나와서 일행이 정원 광장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시간 전날 밤 펜션물꽃정원 소극장 작은 음악회에 우리 일행을 환영차 오셨던 공대일 부군수님이 환송차 이곳까지 또 나오셨다. 이곳 특산품인 하동녹차 그것도 하동 최고브랜드 차로 알려진 ‘세작’을 회원들 모두에게 한 통씩 나눠주고 가셨다. 그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일행은 이날 정오경 다시 차에 탑승하여 칠불사를 향해 달려갔다.
칠불사를 찾아
섬진강변 송호림 숲 정원에서 출발하여 이날 정오가 지날 무렵 일행은 섬진강대로와 화개장터를 경유, 칠불사 방향으로 달려갔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매년 4월이 되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손을 꼭 잡고 백년해로를 한다고 하여 붙인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하는 십리벚꽃길을 20여분 달려가니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와 방향이 갈라지는 석문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길이다. 펜션과 산장들이 한가하게 늘어선 급커브가 많은 오르막 낙엽송 숲길을 시속 30km 속도로 30여분 달려 지리산 칠불사 일주문 주차장에 차가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후 한 시쯤이다.
칠불사는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외삼촌 장유화상의 지도로 합천 가야산에서 수도하여 깨친 후 다시 이곳에서 2년 수도정진 끝에 성불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김수로왕이 친히 이곳까지 내왕하여 일곱 아들의 동시 성불을 축하해주고 절을 지어 “칠불사”라 이름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이다.
칠불사는 임진왜란과 조선말엽에 전소되어 중창했으나 다시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사건 때 전소되는 난을 겪고 중창에 중창을 거듭한 끝에 1978년 쌍계사 주지 통관스님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문격인 보설루의 편액 ‘동국제일선원’의 의미처럼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서산대사를 비롯한 고승 선사들이 수도하였고, 현대에 와서도 효봉, 서암, 일타스님 등이 안거를 지낸 바 있는 예로부터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함께 2대 선원으로 부르던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다.
일행이 이날 칠불사 경내를 들어섰을 때는 진입도로 보수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사현장을 우회하여 보설루 아래 통로를 통해서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은 주불(主佛)이 석가모니부처님이고, 그 양쪽 협시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10대 제자 중에 문수보살은 지혜제일이고, 보현보살은 행원제일의 제자이다. 한쪽 벽면에는 여기서 성도(成道)한 김수로왕의 아들 일곱왕자가 개금불(蓋金佛)로 단장하고 찬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웅전 아래 오른쪽에는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이중 온돌방을 지으면서, 스님들의 동안거 중에 매번 장작불을 지펴 넣는 불편과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번 불을 붙여 장시간 난방 할 수 있도록 고안(考案)한 구들구조가 아자(亞字)형이라 아자방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화개장터에 잠시 들려
칠불사 탐방을 마치고 이 절 일주문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했을 때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이날 오후 2시였다.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화개면 석문길 쌍계사 입구에 있는 ‘석문식당’에 들러 도토리묵과 더덕구이를 별미로 동동주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인 사성암으로 가는 도중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롓사람들이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친다는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를 연상하며 잠시 차를 멈추고 장구경을 하였다.
섬진강은 수문을 연 이래 영남과 호남을 잇던 이곳에 삼한 시대에 화개관이라 불린 요새가 장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와 1726년 번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이 되었고, 객주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는 화개장의 역사가 적힌 기념비를 보고 시장 안을 들어가니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고 백화점과 마트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추세와는 전혀 다른 활기찬 옛 모습, 그대로의 화개장터의 성시(盛市)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성암(四聖庵)에서
하동에 십리벚꽃길이 있다면 구례에는 섬진강벚꽃길이 있다. 섬진강벚꽃길을 달려 사성암 진입로 입구에 들어섰다. 칠불사 진입로보다 더 가파르고 오르기 힘든 S자 콘크리트 커브길을 돌고 돌아 이날 오후 4시를 조금 지나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사성암 진입로는 국내 세 곳 밖에 없다는 키 큰 홍송의 짙은 솔내음을 맡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흙길을 밟으면서 오르는 자연친화적인 해인사 진입로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주차장에서 홍래의 부축을 받으며 아픈 다리를 끌고 10여분 더 올라가 바라본 약사여래를 봉안한 유리광전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봉황이 나래를 펴 금방 비상(飛上)할 것 같은 팔작지붕을 이중으로 겹쳐 붙여 아슬아슬하게 세워 놓은 전각(殿閣)이다.
사성암은 지리산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백제 성왕 때에 오산에 세웠다고 해서 처음에는 오산사(鼇山寺)라 불렀으나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대 선사가 수도하여 도를 깨친 곳이라 사성암(四聖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르면서 오금이 저리는 현기증이 났지만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겹겹이 펼쳐진 지리산 능선들을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어서 금강에 이른 듯하다.
유리광전에서 잠시 예불하고 뒤돌아 나와 내려다 본 섬진강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지금은 동면(冬眠)에 들어가 조용히 흐르고 있지만, 머잖아 봄빛 머금은 푸른 강이 기지개를 펴고 동면에서 깨어나면 재첩 훑는 아낙들의 물질이 바빠지고 길가에 늘어선 벚꽃들이 눈송이 같은 하얀 꽃잎을 흩날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주차장에 이른 시각이 이날 오후 4시 50분경, 마침 지리산 굽이굽이 저 멀리 낙조를 펼치며 서산에 지는 해가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다. 사람은 나이 들어 언젠가는 죽지만 저처럼 아름다운 빛을 남기고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 하루하루를 아름다운 빛깔로 가꾸며 살아야겠다.
귀로에서
이틀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사성암에서 일행이 합천을 향해 출발한 시각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진주-순천간 고속도로와 진주-산청간 고속도로를 지나 이날 오후 7시, 통영-대전고속도로 상에 있는 산청 휴게소에 차를 멈추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동심은 그 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손국복 회원이 휴게소 광장에서 일행과 차에 오르기 전 재기차기를 또 하였다. 육순의 연령에 천진한 동심과 감성이 없는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기막힌 일은 거기서 옛날 어릴 때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 역시도 재기차기를 무척 좋아하여 같이 거들다가 마주하고 보니 어릴 때 제기차기하며 같이 뛰놀던 고향친구였다고 한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신기한 만남이다.
산청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진주–대구간 국도에 진입한 시각은 오후 8시, 그 순간부터 차안 레크레이션이 또 시작되었다. 분위기 메이커 김현숙 간사가 미리 준비한 발광 파티복 상의와 모자, 나비타이를 꺼내들고 노래하기를 청하자, 제일 먼저 이홍래 회원이 나와서 그것들을 몸에 걸치고 ‘딸랑딸랑’ 노래를 비롯해 네 곡을 연달아 불러 작년 청산도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아름다운 동조(同調)라 할까 다음은 하철종 회원의 ‘섬마을 선생님’ 외 2곡, 김상완 회원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윤경선 회원의 김현태 작 “그대는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라는 시 낭송,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금 동남아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부른다는 최병태 회원의 ‘아파트’ 노래가 이어지면서 회원들의 열렬한 박수 속에 차안은 이번 문학기행의 주제 그 ‘사랑’의 마음이 충만해 있었다.
이날 밤 9시, 사랑과 우정의 뜨거운 마음을 가득 실은 엔젤란터카가 카페토랑 ‘나비’ 앞에 멈추면서 2016 하동, 구례 문학기행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이번 문학기행도 알차고 보람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써주신 송영화 회장님을 비롯한 박황규 사무국장, 김현숙 간사와 전 회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2. 합천문화원 회원 영월 단종유적 답사
지난 5월 12일 합천문화원이 전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례문화행사인 국내문화유적 답사가 있었다. 금년도에는 세계유산 사적 제 196호로 지정된 조선 제 6대 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려있는 영월의 장릉을 둘러보는 유적탐방순례였다. 전정석 문화원장의 인솔로 합천문화원회원 500여명이 14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해 17개 읍면별로 출발하여 작년처럼 경북 달성군 논공휴게소에 집결해서 미리 대기해있던 하창환 군수와 김창수 한국전력 합천지사장, 하규하 문화체육과장의 영접과 환송을 받았다. 이날 문준희 전도의원과 김윤철 재향군인회장도 답사대열에 합류하여 일정을 함께 했다. 군민을 섬기는 복지행정을 지향하는 행정수장이 군민나들이인 문화원회원 유적지 답사에 경북 달성군 논공휴게소까지 나와 매년 일행을 환송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김창수 한국전력 합천지사장이 문화원회원 각자에게 심심찮게 즐길 수 있는 다과를 제공해주는 성심에도 깊은 감사를 느낀다.
합천문화원 하재효 이사가 인솔하는 야로회원 5호차는 정한균 전 야로중학교장, 방신정 전 야로면장, 이찬균, 권병근 전 현직 합천향교 청년유도회장을 비롯한 34명의 회원이 야로면 유재식 사장이 운행하는 관광버스에 탑승했다.
이날 답사코스는 야로-논공휴게소-안동휴게소-단양휴게소를 경유하여 장릉 버스주차장에 14대의 버스가 장사진을 이루며 영월군 장릉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전 11시였다.
영월군 장릉에서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비운의 왕 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려있는 장릉(莊陵)이다. 지난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릉(莊陵)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한 것을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다. 1580년(선조 13)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을 세웠고,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추복(追復)되고,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합천문화원회원이 이곳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장릉이다. 장릉 주차장에서 하차한 일행이 단종역사관과 박충원 낙촌비각 사이로 난 가파른 산길을 따라 500미터쯤 오르자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외로운 장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구는 금줄을 쳐놓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50여미터 밖에서 보는 장릉은 여느 왕릉과는 다르게 푸대접의 행색이 역력히 보인다. 다른 능에서 볼 수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있는 난간둘레석도 없고, 봉분 앞에 왕릉을 호위하는 무인석도 보이지 않는다. 능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들만이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듯 경건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에 비애감(悲哀感)을 넘어 경외감(敬畏感)으로 다가온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단종비 정순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나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峯) 밑에 초막을 짓고 피륙에 자줏물을 들여 댕기, 저고리, 옷고름을 등을 만들어 팔며 살았지만, 그것으로는 끼니를 연명할 수 없어 시녀들이 동냥해오는 음식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세조가 동망봉 서쪽에 사당과 집을 지어주고 살게 했으나 그녀는 끝내 사양하고 그대로 초막에 머물렀다고 한다. 단종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그녀는 조석으로 산봉우리에 소복을 하고 올라가 단종의 유배지 동쪽을 향해 통곡을 하곤 했는데, 산 아래 마을 여인네들이 같이 따라 동정곡(同情哭)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망봉(東望峯)이라는 이름도 정순왕후가 동쪽을 향해 통곡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동을지산 자락 정릉의 단종 혼령이 한양의 동망봉에서 울부짖는 그 부인의 피맺힌 통곡을 들었을까,
정순왕후 송씨는 단종과 불과 3년 함께 살았지만 그녀는 목숨을 끊지 못하고 모질고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갔다. 원수였던 세조가 죽고 시사촌인 예종, 시조카 성종, 시손 연산군의 죽음까지 지켜보았다. 세조 앞잡이로 나섰던 모사꾼 한명회가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당하는 꼴도 보았다. 그리고 중종 11년(1516년) 영월에 있던 남편 묘에 봉분이 세워지고 제사가 치러질 때 이를 지켜봤다. 남편 사후 59년 만이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적 고비들을 낱낱이 지켜보고 5년 뒤 82세에 그녀도 세상을 떠났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478년이 지난 뒤 영월문화원에서 이들 두 사람의 영혼이 만날 수 있도록 1999년 4월 9일 남양주 사릉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뽑아 와서 영월의 장릉 앞에 옮겨 심어 두 사람의 한을 위로했다는 얘기가 있다.
정릉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에 그 정령송(精靈松) 한 그루가 능을 오르고 내리는 관람객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한 그루는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조금 내려와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5분쯤 내려오면 단종의 애사를 여러 면모로 묘사해 놓은 장릉 주요 상설 전각들이 광장 한쪽에 도열해 있다. 단종복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육신과 세조의 왕위찬탈에 끝까지 저항했던 생육신의 위패 등 각종 사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 단종과 궁녀들의 신위들에게 매년 제사를 지내는 배식단(配食壇), 신성지역을 표시하는 홍살문(紅箭門), 한식 때 단종제를 올리는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던 우물, 단종의 신도비를 위요(圍遶)한 단종각,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호장 엄홍도의 혼을 기리는 정려각(旌閭閣) 등이 있다. 영월이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장릉공원내 H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이 오후 일정으로 들른 곳은 장릉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청령포와 관풍헌이다.
청령포에서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령포, 강을 건너기 전 나루 왼쪽에 왕방연의 시조비가 걸음을 멈춘다. 단종에게 사약을 먹이고 돌아서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지은 시조, 지금도 많은 사람들 입에서 애송되고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임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의 한이 서려있는 눈물인지 이곳은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기 피어난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이런 현상을 “단종의 한숨 섞인 눈물이 물안개로 변하여 피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강건너 단종의 유배지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가려져 있고, 그 주위 동, 남, 북 3면을 에둘러 동강이 흐른다. 주변 산 그림자가 투영되어 파랗게 보이는 강물위로 동력선 도선(渡船) 두 대가 양안(兩岸)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청령포는 동강에 둘러싸여 있어서 섬처럼 보이지만 섬은 아니다. 북쪽으로 육육봉(六六峰)이라는 암벽이 솟아있고, 배가 없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육지 안의 고독한 섬이다.
도선을 타고 동강건너 자갈밭을 지나 울창한 송림 속으로 들어가니 수문장처럼 우뚝 서서 지켜보는 한그루 노송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종의 유배생활과 관련된 비사를 품고 있는 ‘관음송’이다. 높이 30미터, 수령이 600년에 달한다는 관음송은 청령포를 포옹하듯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시름을 달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령포에는 단종의 외로운 생활을 지켜본 관음송(觀音松) 외에도, 단종의 어가와 그리고 영조 때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단묘유지비(端廟遺趾碑),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시름을 달랬다는 망향탑(望鄕塔)과 노산대(魯山臺) 등이 있다.
단묘유지비는 단종 사후 240년이 지나 노산군으로 강봉됐던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복위시키고 유배생활을 했던 처소를 ‘어소’로 했다는 영조 임금의 배려로 세워진 것이다. 아버지 문종 임금으로부터 받은 왕위를 숙부에게 빼앗긴 통한도 크지만 청춘의 나이에 사랑하는 부인과 생이별을 당하여 그 외로움을 감내하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단종의 슬픔을 가장 애절하게 보여주는 두 곳이 청령포에 있다.
그곳은 바로 노산대와 망향탑이다. 노산대는 단애(斷崖)의 암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는 바위산으로 단종이 외로울 때 그곳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달랬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데크길로 만들어 놓아 오르내리기 쉽게 해놓았다. 망향탑은 청령포 서쪽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향하여 부인 정순왕비를 생각하며 쌓았던 애절한 마음이 알알이 박혀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관풍헌에서
단종이 청령포에 머문 기간은 고작 석 달 정도, 비가 많이 내려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처소를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겼는데, 단종이 이곳에 머물던 1457년 9월 작은 아버지 금성대군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발각되어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고 한다. 누군가에 의해서 또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고, 자기 생명까지 위협을 느꼈을 세조가 그해 10월에 사약을 내려 단종을 죽게 했던 것이다.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에게서 죽임까지 당했으니 단종의 혼령이 한동안 이곳 관풍헌 일대에서 머물며 얼마나 애통했을까?
영모전(永慕殿)과 전설
영모전은 청령포에서 아라연 계곡을 따라 4km쯤 북으로 올라가면 영월의 주산인 매봉산 자락 남쪽 언덕에 있다. 1517년(중종 12) 영월부사 이용하(李龍夏)가 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려고 성황당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고, 그의 후손 이계진이 개수하여 ‘영모전’이라 하였으며 추익한(秋益漢)이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進上)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 단종과 추익한(秋益漢)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추익한은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하려고 영월로 오던 중 연하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와 익선관 차림에 백마를 타고 동쪽을 향해 가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은 황망히 읍하고 땅에 꿇어앉아 “대왕마마께서는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하고 여쭈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 그것은 처소에 갖다 두시오” 하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추익한이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고 급히 단종 처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숨진 뒤였다. 추익한은 방금 전 만났던 것이 단종의 혼령이었음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과 함께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곳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단종 혼령이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은 단종을 숭상하는 일종의 민간신앙으로 발전하여 영모전 외에 녹전 성황당, 정선각, 보덕사의 칠성각 등에서도 단종의 위패 또는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곳에는 해마다 단종문화제가 열리는 시기와 음력 10월 24일(단종 승하일)에 제향을 올린다.
한반도 지형을 닯은 영월군 서면 응정리 선암마을 관광
단종의 애달픈 비사가 서려있는 청령포 일원을 둘러보고 이날 오후 귀로에 야로 회원만이 찾아 든 곳은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영월군 서면 옹정리의 선암마을이다.
서강길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와 화양목 자생 군락지 사이로 난 탐방로를 경유하여 1km쯤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오간재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에 올라 남산재 쪽을 바라보면, 남북방향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독도를 연상시키는 작은 바위도 있다. 우리 국토 한반도를 그대로 빼닮은 지형이다.
저 멀리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해모수가 다스리던 옛 우리강토 북부여 땅도 한 눈에 들어온다.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뻗어나가는 우리민족 웅비를 상징하는 지형이다. 오간재에서 내려다 본 한반도의 조감도(鳥瞰圖), 화폭에 수를 놓은 듯, 정말 아름답다. 지금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 서구 열강들이 지배했던 20세기 대서양 시대가 지나고 한` 중` 미` 일` 러 등 동북아 국가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태평양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태평양 시대의 트렌드에 부응하여 한반도 이슈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세계사의 주역으로서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국가전략을 관망(觀望)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 대응한 우리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대를 실현시켜야 한다. 부산에서 출발한 대륙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쌍트페테부르크와 모스크바, 핀란드 등 북유럽을 거쳐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까지 넘나드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시키는 날, 우리 한반도는 세계 물류 중심, 세계문화관광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그런 날이 결코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지금 저 한반도 지형이 말하고 있다.
귀로의 버스 안에서
합천문화원 야로회원 일행이 서강길 한반도지형 탐방로를 되돌아 나와 귀로의 버스에 오른 시각은 이날 오후 3시, 차안은 다시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 여정에서 우리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비사가 서린 장릉과 청령포 관풍헌을 둘러보고, 귀로에 여정에 없었던 영월군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을 둘러봄으로써 역사현장의 답습과 21세기 한국의 비전을 상징하는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며 세계 중심국가 지향의 포부를 가슴에 새겨보는 의미 있고 보람을 느꼈던 2017년 합천문화원의 국내유적지 답사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국내유적 답사를 위해 애쓰신 합천문화원 전정석 원장님과 김규열 사무국장 및 실무담당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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