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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호 원고(이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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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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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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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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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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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00:26:35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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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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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액자 속의 사진
이 동 실
우리의 삶 속에는 추억이 녹아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나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기억의 조각들로 살아난다.
근래 들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진화해가면서 사진의 풍속도도 빠르게 변해간다. 휴대전화 카메라의 화소가 질이 좋아, 장소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사진을 찍고, 인화가 쉬워지다 보니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기도 한다. 셀카로 온갖 포즈로 모델도 되어보고, 얼굴 턱을 갸름하고 키를 키우기까지, 작은 눈을 크게 만들고 미운 점은 지우기도 하는 요술 같은 일도 가능해졌다. 그러다보니 사진관은 기념일이나 여권, 운전면허증 찍는 곳이 되어버렸고, 사진도 앨범대신 휴대폰 기기 속에 보관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 년 전, 한 학부형과 차 한 잔을 한적 있다. 오래전 내가 운영하던 학원에 다녔던 순영이가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딸아이 결혼을 앞두고 앨범을 정리하다보니 내가 몇 해 동안 찍어 준 사진을 통해 딸애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덕담까지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생각해보니 사진으로 인해 기분 좋은 만남이 된 것이 다.
사진에 얽힌 추억담을 들고 집으로 가다가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30년 지기가 운영하는 사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태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기는 했지만 그 사진관도 한때는 돈벌이가 제법 쏠쏠했었다. 요즘은 밥벌이나 겨우 한다는 그들에게 작은 소일거리도 되고, 내 자신도 지인들께 기분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애들이 성장하는 것만큼 나도 성숙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나와 인연을 맺은 모두가 어찌 고맙지 않으랴. 신이 나서 사진관으로 들어서며 사진관 언니 부부에게 내 카메라에 담겨있는 지인들의 좋은 모습을 인화해 달라고 했다. 작은 액자를 구입해 사진을 넣고 보관했다가 주인공을 만나면 선물했는데, 미니액자 사진을 받아든 그들은 달콤한 초콜릿을 맛본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액자에 담는 사진들을 고르는 데는 내 나름의 철학이 있다. 행사나 모임에 참석했을 때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찍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웃을 일이 많지 않아서일까. 웃음이 귀한 시대가 되어버린 탓일까.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찾기란 생각만큼 많지도 않았다. 즐겁게 웃는 표정들이 보이면 즉시 찍고, 그런 사진들을 인화해 액자에 넣어 두었다 전하면 그들의 표정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내가 이런 때도 있었네. 이리 좋을까. 신이 났구먼.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에 또 다시 웃는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웃으면 복이 온다는”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 여럿이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내 굵은 팔뚝이 삐죽이 나오고, 중년의 아랫배가 자랑처럼 그대로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는데 기가 막혔다. 본래의 모습인데도 예쁜 내 모습을 기대했을까. 부끄러웠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더 신경 써서 찍게 된다. 또 사진만 전하면 아무 곳에나 넣어두기 십상이다. 그래서 미니액자에 넣어 전해준다. 작은 선물이니 주고받는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사진관 언니부부도 함박꽃처럼 웃는다. 우리가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계기도 되고, 이윤을 남기지 않아도 선물이라는 단어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순영이 어머니를 만난 그날 후. 지인들의 모습을 액자에 넣어서 꾸준히 선물하고 있다. 많은 이들과 정을 나누고 싶은 욕심에서라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첨단시대다. 좀은 미련한 일이라고 흉볼 수도 있겠지만 미니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다.
누가 알랴. 훗날.
웃는 모습의 미니 액자 사진을 가장 오래 선물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지!
역할극 놀이
이 동 실
옆 교실에서 아이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한참 지나도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아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으로 들여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담당선생은 기다렸다는 듯 눈짓을 했다.
아이 둘이서 다퉜는데 달래도 안 되고, 수업에 방해가 되어 낭패해 하던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우는 아이에게 손가락 하나를 입으로 갖다 대며 살며시 손을 잡았다. 눈치 빠른 아이는 옷깃으로 눈물을 닦으며 내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교실을 나왔다. 상담실로 온 아이는 다시 큰 울음소리로 울었다. 속상하고 억울하다는 표현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니 도움을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눈물을 닦아주며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찔끔 눈물을 짜더니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친구가 와서는 자기 자리라며 팔을 잡아당기고 때렸다며 울먹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울고 있는 자신을 두고 선생이 웃으니 아이가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부가 하얗고 오동통해서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는데도 애기 티가 흐르는 1학년생.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를 순한 눈을 가지고 서러워서 우는데, 그 모습마저 귀여웠다. 때린 친구와 대면을 시켰다. 그 아이의 얼굴과 옷에 묻은 물감의 흔적으로 개구쟁이임을 알 수 있었다. 때린 친구의 변명은, 앉고 싶은 자리에 친구가 앉아있어 팔을 당기기만 했는데 큰소리로 울더라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를 나이긴 했다. 작은 일이라지만 생각의 차이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하고 대수롭잖게 넘길 수도 있지만, 풀어주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자존감의 상처는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역할극’ 놀이를 시켰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때린 아이가 먼저 “내가 잘못한 것 같애. 미안.”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울던 아이도 멋쩍게 웃으며 새끼손가락 걸어 화해를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치며 돌아가는 그들의 보고 있자니 지난주 내게 일어난 일이 떠올라 귓불이 빨개졌다.
며칠째 몸에 미열이 있었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결국 감기몸살이 났다. 저녁이 되자 온 몸이 쑤시고 아파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이 퇴근해오면 병원에 가려고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늦었다. 밤늦게 돌아온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앓고 있는 걸 보더니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다. 며칠째 아픈데 그것도 모르냐며 막무가내로 몰아세웠다. 기분 좋게 한잔하고 들어온 남편은 “말을 해야 알지.” 라며 도리어 서운해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꼭 말을 해야만 알고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단 말인가.
돌덩어리처럼 딱딱해진 마음에 냉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식사 때도 침묵이 흘렀고, 출근길에 나누던 인사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도 “예” “아니오.”로만 대답했고, 잘 때는 발이 닿을까 이불로 담을 쌓았다. 살아온 시간들이 허무한 바람을 안고 밀물처럼 몰려왔다. 나는 여태껏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올리려고 애쓰며 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살뜰하게 챙겼다. 뭐든지 남편이 최우선 순위였다. 그런데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말을 해야만 챙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니. 만사 귀찮았다.
휴일이지만 꼼짝도 못 하고 몸과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쟁쟁거리는 폰 소리도 귀찮은데 미운털이 박힌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뚱하게 받으니 눈치가 없어 미안했다며 식사 예약을 했으니 가끔 들리던 카페로 나오라는 게 아닌가. 못 이기는 척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무심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들어섰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노래가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감미롭게 흘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버린다고 해도
당신만 날 사랑한다면 내겐 두려움 없네.
사랑이 아침을 채우고 그 사랑 내 몸을 감싸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당신이 날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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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사랑해요.
매력적이고 감미로운 테너 가수 임태경의 목소리가 막힌 혈을 뚫어주듯 내 마음의 비워진 공간을 채운다. 음악까지 나를 위해 특별 예약을 했다는 그이도 있고, 아늑하고 달콤한 분위기에 와인까지 겹들이니 서운해서 꽁꽁 얼었던 마음이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내가 옹졸했다는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남편을 다 헤아려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프다는 말만 했으면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을 몇 날 며칠 스스로 생채기를 냈으니 말이다.
누군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역할극’을 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섭섭한 일이 있을 때는 역할극을 해보리라. 아직 철이 덜든 나에게는 ‘역할극’이 제격일 것 같아서다.
상록수, 그 후일담
이동실
책장 정리를 하다 빛바랜 책 한 권이 우연처럼 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 아련한 기억처럼 희미하게 드러나는 제목은 심훈의 소설『상록수』였다. 희생과 열정으로 꿈을 펼치는 주인공 동혁이와 영신이의 용기에 마음까지 홀려 합천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한 마중물이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청사진처럼 발랄한 아가씨가 꿈을 엮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대구 시내의 한 유치원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도회에 있는 좋은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교육조건이 좋은 곳이었다. 편리한 교통과 문화생활에도 부족함 없으니 꽤나 만족했다. 가을바람에 낙엽들이 흩날리는 어느 오후였다. 교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신사 한 분이 창문 너머로 이것저것 살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사회교육부에 유치원 교사를 의뢰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합천에서 왔다고 했지만 그 당시 나는 합천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교회 부설 유치원을 설립한 지 3년째인데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1년을 넘기는 교사가 드물다고 했다. 큰 도시에는 선생이 남아돌고, 시골에는 근무할 사람이 없어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니 가슴이 저며 왔다. 그날 이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기회가 되면 봉사하리라 마음은 먹고 있었으나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허리가 휘도록 농사지어 보내주신 등록금으로 편하게 공부한 내가 아닌가. 그런데 열정만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간다면 가족들의 반응이야 불 보듯 뻔 한일이었다. 지인들이라고 다르겠는가. 이런저런 상념이 깊어질수록 주인공 동혁과 영신이는 힘을 내라며 등 떠밀듯 다가왔다.
만류하던 직장 동료와 가족들에게 3년을 약속하고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합천 지릿재를 넘어섰다. 산으로만 둘러싸인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흔들림과 덜컹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멀미도 심하게 했다.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던 말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유치원 출입문은 합판으로 만든 지 오래인 듯 삭아 내리기 직전이었고, 구멍 난 교실 틈은 벽지로 발라 놓았으며, 한참을 가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은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교재도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재활용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구입할 재료도 다양하지 않아 대구나 진주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시골지역 빈부격차도 문제였다. 괜찮은 집안의 아이들이야 복장이나 준비물 정도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만 원이 없어 소풍을 못 간다는 아이. 오 리를 넘게 걸어 다니는 일곱 살 꼬마가 눈에 밟히기도 했다. 동혁과 영신이가 어려운 환경을 위해 갈등하던 모습들과 겹쳐지기도 하며 필연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아닐까 하는 책임감으로 성당의 주일학교나 야학에도 나섰는지 모를 일이다. 결국 근무하던 유치원은 경제난을 이겨내지 못했고, 나는 선뜻 합천을 떠나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았다. 나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듯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어쭙잖은 핑계가 될까마는 아이들을 위한 학원을 시작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던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감당하기 버겁도록 닥쳐왔다. 힘들었다면 힘들었던 한 가지는 타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중의 하나였다. 물설고 낯선 객지에서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을 때는 당장 달음질쳐 떠나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손을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학원비 밀릴 걱정 없이 다니는 초롱초롱한 눈, 언제든 드나들고 늦도록 같이 해준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차마 내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도 찾아오고, 이웃도 생기고, 그들의 문제도 같이 해결해 나가면서 작지만 그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나를 스스로 위안과 보람으로 삼았다.
세상이 변했듯 이곳도 나도 많이 변했다. 낯선 설움은 익숙한 포근함으로 남았다. 상록수 주인공들과 같이 뜻을 오롯이 펼쳐내지는 못했지만 그 또한 내 그릇의 크기라고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아직도 나를 바라봐 주는 빛나는 눈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우연히『상록수』를 만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상록수, 그 후일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젊은 날 가졌던 그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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