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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문학19호 원고-시7편(김옥란)



추천 :	518	이름 :	김옥란	작성일 :	2011-08-17 20:22:00	조회수 :	1,933

아버지

당신을 산에 묻고도
나는 밥을 먹었다

늑막염을 앓고
어깨 한쪽이 기울어진
이 세상 살 때 부지런히 산 죄 밖에 없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와서도
나는
웃을일 있으면 웃고
사랑도 하고

무심한 계절은 오고 가고

그날 이후
해도 달도 뜨지 않았다

-오늘 아침-

상큼한
봄나물

새 색시
첫 친정 나들이

저 만큼 서 있는 잔설

철 이른 홍매화

-나이-

여자는 약간의 남성성이 있어야 멋진 여자
남자도 여성성을 지녀야 미남이라고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그많은 피맺힌 사연들도
세월이 지나니 다 그림움인걸

삼십년을 넘겨살고 난 내남편이
나보다더 자주 얼굴 맛사지를 하는 남편이
늙기 싫어 하는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그 험한 세상 어떻게 살래 싶어서
젊은이 들이 안쓰럽다는

수십년을
당신 몸 뒤에 내몸가리고 살아온
결코 쉽지 않았던 날들

젊은이는 늙은이 다워야 멋진 젊은이
늙은이는 젊은이 다워야 멋쟁이

-남천-

가을이 깊어지면서
일제히 빨강 꼬마등을 달았다

한 세상
부대끼고 기쁘고 슬프고
자세를 아무리 고쳐 앉아도
도로 그 자리

오늘 같이 눈 오는날
봄 맞이 준비로
저리 예쁜 등을 달고 있구나
희망의 등 밝혔구나

-장난처럼-

높은 산에 올라
사람 사는 동네 내려다 보면
장난감 같다
코코블럭 장난감 병정들이
빨갛게 파랗게
나타날것 같은
어렸을때 그렸던
뿔난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탕탕 총 놀이 할것같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든게 장난처럼 보인다
내 남편이 바람 나면 기함을
할꺼면서
바람기 많은 남의 남편들 뒤통수가 귀엽고

저녁이 되면
골골이 노을이 찾아와
취할수 있는곳
사람 사는 동네
불빛이 따뜻하다

-꽃피기전 백일홍-

달빛이 추워
외투깃을 세운밤
어스름 어둠 속에서
흰 뼈가 날 유혹한다

나무에도 뼈가 있네
가벼운 탄성이
발 밑에 떨어지고
안개빛 밤은 깊어가네

달빛이 추워
온몸이 얼듯한데
지난해 뼛속에 가둬둔 분홍빛 꽃은
꿈속 비명 소리 처럼 터지질 않네

-노을-

취한듯 달아올라
검붉은피 토하더니

조각배 타고 누워
잔파도 일으키고

아득한 어둠속
정신없이 파고들어

아양떨듯 몸 흔들어
겨드랑이 간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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