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연습 5
-국화 진 자리-
손국복
그대 홀연히 내 곁을 떠나
흔적 없이 사라진
꽃이여 여인이여
아름다운 가을 이름이여
한 시절 눈부시게 풍미하던
농염한 자색
발 밑까지 벗어 두고
시린 맨발로 떠나간 사랑이여
서릿발 긴 여로
눈 내리는 언덕을 넘어
여위고 순결한 모습으로
갈바람 무서리 더불어
초연히 내 곁에 돌아올
꽃이여 여인이여
아름다운 오색 이름이여.
겨울 천리향
손국복
네 혈관에 이미 봄의
피 흐르고 있어
네 입술에 벌써 봄의
향 묻어나고 있어
네 가슴에 환한 봄의
사랑 번지고 있어
일월과 나무와 꽃
하늘과 땅과 사람과 사람 사이
네 위대한 우주
깊이 서리어 있어.
산 위에서
손국복
그렇게 바삐
어디로 가고 있니
그렇게 슬피
무엇을 울고 있니
나래짓 시원히 비익하는 백로의
세상을 용서하는 눈매와
천 년을 건너 온 해탈
바람 가르는 큰 자유 좀 보아
그렇게 부은 얼굴로
누구를 원망 하니
한 때 몰아치는 광풍처럼
다 지나갈 길인걸
미움과 성냄과 다급함
다 벗고 털어 홀가분한
여기 산 기슭 걱정 없이 누운 사람들 곁에
논둑길 밟고 아침 여는 농부의 발길 따라
물안개 피어나는
푸른 강물과 정결한 골바람
세상을 밝히는 빛의 풍요와
진실만 담아내는 밤의 신화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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