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변에 있는 y욕탕은 도시 문화인들이 즐기는 대도시의 사우나탕에 뒤지지 않게 시설이 무난하고 깨끗했다.
욕탕의 첫 조건인 물을 황강에서 끌어오는지 몰라도 투명하고 매끄럽다.
어느 날 이 목욕탕에서 정말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성싶은 앙상한 노인의 등허리, 사타구니 그리고 양팔과 양다리까지 조심스럽게 김이 서린 열탕 가에서 씻어주는 착한 젊은이를 보았다.
내 자식들이 아동들이고 나도 힘께나 썰 때, 그 놈들을 목욕탕에 대려 와서 곤욕을 치른 일이 생각났다. 탕에서는 자기 육신의 피부를 민다는 자체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 중노동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좀 쑥스럽지만 남의 손을 빌려 때를 밀고 수고비를 지불한 예가 더러 있었다. 나뿐만 아닐 것이다.
잠시 후에 보니, 그 늙으신 할아버지가 스팀 탕 입구 한편에 놓여있는 일인용 반 침대형 나무 의자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나는 걱정이 되었다. 행여 그대로 영원히 잠드시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피골이 상접한 노구가 나무침상에 누워있다 기 보다, 살갗이 뼈대를 둘러싸고 있는 듯 공기 빠진 튜브 같이 중력에 짓눌려 납작하게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욕탕의 증기로 인해 체형이 가물가물한 시루엣이 되어 내 안 막을 자극하는 그 어른의 모습은 언젠가 런던의 대영박물관 진열대에 누워있는 BC 2,600경에 만들어졌다는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등 파라오들의 미라 같이 신비로운 서기가 풍기는 듯 하였다.
"왜 자기 체구도 가누지 못하실 어른이 혼자 욕탕에 왔을까." 그리고 "저런 어른의 때를 밀어 주고 있는 젊은이는 누구일까." 궁금하였다. 온수 탕으로 스팀 탕으로 오가며 유심히 보니 노인의 몸체를 씻어준 때밀이 젊은이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h성을 갖인 이 지역의 단위 기관을 총괄하는 공직자였다.
나는 "오라, 대중탕의 대중 앞에서 자신의 공직에 걸 맞는 봉사를 한다는 듯, 한 노인에 대한 분에 넘친 공경행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가식적 행위가 아닌지--!" 하고 사시(斜視)했었다.
탕에서 먼저 나온 나는 "저 탕 안에 있는 노인네가 누구입니까, 그리고 자주 오시는지요" 하고 종업원에게 물었다. "그 노인은 oo장 부친입니다." 라고 일러주며, 당신은 그 두 분이 부자지간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 지역 사람이 아닌가 보지요, 하듯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나는 자원봉사자들이 양노원 등 불우노인들 수용기관을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몸체가 메말라 줄음으로 휘감긴 노구(老軀)들을 정성껏 씻어주는 장면을 티.비에서 가끔 보았다. 타인의 손길이지만 그렇게도 좋은지, 그 노인들은 벌거벗은 체 합죽한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오물오물 띠든 감격스러운 장면을 다시 그려보며,
그 때, 저 노인 내는 자식이 있는지 없는 지---, 만약 자기 친자식이 씻어주면 얼마나 더 행복해 할까---, 하든 생각도 또 떠오른다.
h씨는 자기의 오늘을 존재케 한 근본이고, 자기를 키우느라 허리가 굽고, 쇠진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부친에게 자신의 직위에 걸 맞는 진정한 효도를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분에 대한 경애심이 솟아오른다.
자신의 몸체에 당신의 DNA를 물려주신 부친의 살갗 세포가 수명을 다하고, 때와 함께 폐기되어 욕탕 하수구로 띄워 보내는 엄숙한 의식(儀式)이라 생각하는지---, h씨의 떼미는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하여 내 가슴에 찡하는 감동을 일으킨다.
왜, 나는 내 부친이 살아 계실 때, 목욕탕에는 커녕, 어깨를 부축하여 맛있는 외식조차 한번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지 못하였나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진다.
그 후, 내가 위 h씨가 집무하고 있는 기관에 민원의 일로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일반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실 한 편에 그분의 업무용 책상이 전직 장과는 달리 안쪽 별실에서 나와 있었다. 어느 사이에 먼발치로 나를 알아보았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자기 책상 앞 쏘파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하는 것이다.
적은 일이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부친을 공경하듯 그분은 우리 시민들의 일도 자기일 같이 돌보는 언행 일치의 공인(公人)이로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다. 또 내가 최근에 그 목욕탕에 갔었다. 그 날이 토요일이고, 오후였다. 마침 내가 옷을 입고 나오려는데, 그 h씨가 자기부친을 부축하고 목욕탕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옷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탕으로 모시고 들어갈 때까지, 유심히 보았다. 노인에게 인사하는 사람을 부친이 몰라보고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부친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아부지 저 사람이 바로 뭐뭐하는 아무게 아입니꺼" 하고 일일이 여쭙는 것이다.
아흔이 넘어도, 노인네가 궁금한 것이 많은 것을 보니, 집에서도 자식들을 무척이나 성가시게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부모를 귀찮게 여기는 비정한 자식들을 메스콤이 고발하는 소리를 무수하게 듣고 보아 온 우리들이 아닌가.
양노원에서 탑골공원에서 전철입구에서 자식에게 버림받고 가정에서 쫓겨나 여생을 찌든 눈물로 살아가는 어버이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런 힘없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냘픈 숨을 몰아쉬는 부모를 하찮은 일로 생명까지 빼앗아 가는 비정한 자식을 가끔 보는 현실 속에서 위와 같은 사례는 정말 아름답다 못해 숭고해 보인다.
아마 매주일거야,---
토요일이면 한쪽이 백수를 넘고, 다른 한쪽도 칠순이 넘도록 서로 의지하는 두 노인의 귀한 모습이 좀더 오랜 기간 황강 변 y욕탕에 계속 드나들길 빌어 본다.
한 대(漢代)에 만들어진 효경(孝經)에서 '효' (孝)는 도덕의 근원이며, 우주의 원리로서 형이상화(形而上化)하여, 부모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규범화했다.
여러 사례를 들먹일 필요 없이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지켜져야 할 인륜의 덕목임을 우리 자식된 자들은 잊지 말자.
[온.청.정.선(溫淸定省)]이라는 교훈에 따라, 늙으신 부모에게 치울 뗀 따뜻하게, 더울 뗀 시원하게, 잠자리는 정하게, 아침에는 밤사이 안녕을 확인해 보는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한국의 자식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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