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정길 63
낡은 나무 대문이
한쪽 날개 하나를 때어버린 저녁.
사랑채 헤어진 문틈 사이로 번득이는 쥐
모의 중이다
가전제품 제쳐가며 쥐 본드를 쫘아악 펴놓았다.
끈적거림으로 오는 생존경쟁은
어둠 속을 전진한다,
찌푸린 비명소리
등꽃처럼 울먹한 새벽하늘 날아오르던 날
그날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어야 했다.
2.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1)
대정성지에 세워진 추사관
날씨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
나중에 시듦을 안다는 세한도
부러지고 휜 소나무 두어 그루
늘 푸른 잣나무 바라보며
초심으로 돌아가 야지 마음 디져보는
고목된 나뭇가지 파릇파릇 솔잎 피어오르고.
2)
철석 철석 파도소리 무서워라
조밥은 목구멍을 할퀴고
눈에 삼삼 군침 흐르는 인절미
오늘 따라 먹고 싶어
무심코 방문 여니
뱀 한 마리 꾸물덴다
#대정성지 =조선 태종때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읍
3. 키다리 뚱딴지
김숙희
한들한들 하늘 본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배고픔으로 부터 해방된 뚱딴지
노부부 손때 묻은
담벼락 귀퉁이 부끄럽게 섰다가
반드르르 돼지 살찌우는 구시에 앉았다
이놈들 봐라!
와삭와삭 나를 먹어치운다
산산조각난 내 몸뚱이
동강 날 때마다
다 비우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다시 환해지는
못생긴 덩이줄기.
4. 선모초 仙母草
김숙희
오월 단옷날 다섯 마디 자라
아홉 마디까지 자란 널
구월 구일 집으로 가자했다
두말없이 따라 와준 널
햇볕들 세라 애지중지 그늘에 말려두었더니
고모님이 오셔서 거두어 주셨다
귀한 집 딸 되거라 보내 주었더니
장작불 가마솥에 넣어달라고 했다지.
달인 물마시고 따뜻해진 고모 집 딸은
해마다 산길을 간다했다
다시 태어난 선모초 너를 보며
애틋한 어머니 사랑을 생각 한다지.
5. 첫 사랑
그대 때문에 즐거웠어요
새벽 밥 한다고 나가는
뒷모습
감동 받았어요.
행복한 아침상을 받고
고마운 선물도 받고
행복 한 사람들 사이
그리움으로 솟아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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