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보고
우리 사회는 지금 공동체의 가치나 규범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인지 알 수 없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국민의 생존이 달려 있는 민생 법안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되어 걸핏하면 장외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이후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이 100개가 넘게 산적해 있다. 행정부와 함께 국정을 책임져야 할 의원들이 당리당력으로 장외투쟁을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서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의회정치의 기능이다.
두 차례나 세월호 특별법안에 양당대표가 합의한 뒤에도 세월호 유가족 한 사람의 주장에 의해 무산된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에 대한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요즘 관객 1,500만을 넘게 달성한 한창 인기리 상영 중인 영화 ‘명량’이다. 영화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1597년 정유재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 역)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전의(戰意)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 역)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해군과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보다 더 위대한 전쟁이었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외선에 맞서 싸웠던 명량해전 이야기,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픽션(꾸며낸 이야기)이 아니고 역사에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이다.
주인공 최민식의 눈빛, 일거수 일투족, 그는 417년 전 이순신 장군의 그때 그 모습처럼 위세가 당당해 보였다. 겁에 질린 휘하병사들의 전의(戰意)를 상실한 모습을 보고 고뇌하면서도 삼도수군통제사로서의 흔들림 없는 위엄(威嚴)과 리더십은 세계 해전사에 그 명망(名望)을 최고로 자랑하는 영국의 ‘넬슨’제독과 일본의 ‘도고’제독보다도 더 위대해 보였다. 이순신으로 분장한 최민식도 이전의 최민식이 아니었다. 이순신의 역할을 이순신답게 무난하게 연기한 그는 그가 이전에 출연한 어느 액선영화보다 연기가 뛰어났다.
명량해전을 최후 일전이라고 생각한 그는 “나는 오늘 바다에서 죽기 위해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生卽死,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死卽生)” 그의 비장함 속에 병사들의 사기(士氣)가 살아난다.
드디어 명량해전이 시작되던 순간, 330척의 왜선 앞에 기세가 꺾인 11척의 배가 이순신의 판갑선을 전선에 홀로 남겨놓고 모두 뒤로 물러났다.
이순신은 1대 330의 엄청난 숫적 열세에도 당당하게 대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전율(戰慄)과 감동적인 장면이 울돌목의 조류(潮流)다. 이순신은 이 조류를 이용해 전세를 유리하게 전개해 나갔지만 울돌목은 이순신의 판갑선도 예외로 비켜두지 않았다. 성난 울돌목의 회오리에 이순신의 판갑선이 빠져들어가는 순간, 주변에 있던 인근 어촌마을 어선들이 달려와 줄 끝에 쇠칼쿠리를 걸어 판갑선을 인괘(引卦)해 구출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뒤로 밀려나가 이를 지켜보던 11척의 이순신의 휘하선도 용기를 얻어 합류하면서 왜선을 일망타진하는 그야말로 장쾌한 장면이 연출된다.
근간 뉴스만 틀면 정치권의 행태에 늘 울적했던 마음이 영화 명량 한편을 통해서 한 순간에 정화(淨化)되어 오랜만에 환희의 기분을 만끽했다.
이처럼 임진왜란의 국가위기 시에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국난을 극복했듯이 지금의 정치혼란과 불안한 국가안보상황에서는 그 같은 영웅의 출현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 난국을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은 더 이상 다투지 말고 산적한 민생법안을 우선 처리하고, 비통에 젖은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세월호특별법을 추진하되 국가관리 소홀로 발생한 여타 참사 사고의 희생자들과도 형평성에 맞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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