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찾은 세계 지도자들은 많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대립과 갈등 분노가 끝없이 치닫고 있는 이 사회의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의 가슴에 이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고 떠난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한편의 시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적시는 사랑의 메아리였다. 교황이 이번 방한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단연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화두는 화해와 용서였다. 우리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적시(摘示)한 말씀이었다.
그는 14일 서울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세계 여느 지도자와는 달랐다. 외국 정상들이 입국할 때 의례히 볼 수 있었던 모든 의전 절차를 거부하고 비행기 탑 입구에 수행원의 도열도 물리치면서 맨 먼저 얼굴을 내밀고 소박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그의 손에 자기의 가방이 들려 있었고 해맑은 눈에 그야말로 인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영접 나온 박대통령과 환영인파에 환한 미소로 답하였다. 청와대에서의 그의 첫 메시지는 한반도의 평화였다. 한국을 찾은 세계의 정상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기원한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 분단 현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남북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평화의 씨앗”이라며 평화와 화해를 위해 대화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不義)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극복하는 것”이라고 천명(闡明)했다.
그리스도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불타(佛陀)의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과 상통하는 말씀이다.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유족들을 만나서는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위로했다.
엄청난 물질적 번영의 그늘에서 정신적 빈곤과 외로움,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는 소외 계층을 위해서는 공동체 생활의 토양으로 자비와 인내와 사랑을 베풀 것을 역설했다.
16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카돌릭신자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 말기 이 땅에 천주교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 외 123위에 대한 시복식도 있었다.
그의 행보는 가는 곳마다 마치 친 할아버지처럼 어린이를 대하면 머리에 입맞추고 신자들의 손을 잡고, 꿇어 앉은이에게는 머리에 손을 얹어 주었다.
명동성당에서 집전할 때는 “모든 한국인은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대립과 갈등 설전(舌戰)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모처럼 밝고 따뜻한 사랑의 기류가 그의 체류기간 내내 가는 곳마다 감돌았다. 그는 카돌릭 신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의 가슴에 큰 사랑을 안기고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카돌릭 교회의 최고의 어른이자 이 시대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교황이 보여준 따뜻한 사랑의 리더십은 다른 세계 어느 지도자들보다 따뜻하면서 그 품위가 달랐다.
그는 남북분단의 고통을 직시하고 간절한 평화통일을 기원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실상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불신과 적대감으로 70년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 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그리고 전쟁에 지친 전 세계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우리와 인류의 마음에 가장 자애롭고 위대한 사랑의 대의(大義)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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