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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문학 20호 원고 시7편(최종수정) - 최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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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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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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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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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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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22:40:02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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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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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가 아름다운 건
최병태
누렇게 펼쳐진 고즈넉한
풀밭 길을 서러운 듯
바람은 울음을 토해 낸다
그 슬픔
어찌 바람뿐이랴
회심곡 멋드러지게 불러대는
풀벌레들의 처연한 협주곡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며
빈 들은 저만큼 밀려가는데
나만 홀로 그 자리에
시린 기억 떠올리며
홀로 서 있구나
떠날 사람은 떠나야겠지만
다시 올 님을 위해
산과 들 휘감아 도는 바람
마디마디 스며들며
잠시 머무는 것은
함께 저물어가는 내 심사
나누고 싶은 게 아닐까
저녁 산책길
최병태
물안개 내려앉은 강변길 따라서
홀로 걷는 발걸음엔 어느덧
포근함마저 전해오며
가슴 속으로 전율처럼
잊혀져가던 기억들 오롯이
떠오른다
흐르는 시간 잊고 걷노라니
온몸에 퍼지는 푸른 살 반짝이며
강 길은 하늘가에 노을로
꽃 담장 두르고 있어
시린 가슴 더욱
저미어 온다
물, 새, 바람 소리에 맞춰
적막은 깊어 가는데
노을빛 사랑에 취하고파
강가에 나만이 남아 있으려니
여백이 내 안으로 들어와
한 폭의 수채화로 남는다
노을에 기대어
최병태
간밤 몰래 마신 술에
몹시나 취해버렸구나
매정하게 등 돌린 나에게
무슨 미련 있기에
진한 화장까지 하고서
교태의 몸짓으로 주정하느뇨
지난번엔 옷을 찢더니만
오늘은 생살마저 찢으며
석양을 끌어안고 서 있는
알몸의 슬픈 여인이여
헝클어진 머리와
빛바랜 입술 부르르 떨며
익숙해진 이별을 위한
농염의 안무가 안쓰럽구나
그립다, 그 산이
최병태
그립다, 그 산이
큰 바위 얼굴 아니어도,
지하도를 건너지 못한 술병과
찢겨진 신문지 사이의 세상에
이름에도 없는 산
푸성귀 몇 단 햇볕과, 졸고 있는
무너진 젖무덤 일으켜 세우는
그 산이 그립다
길거리에 좌판을 펼쳐 놓은 긴 해와
앉았다 일어서며 집으로 돌아가는
축 처진 어깨를 짊어진 사람의
그 산이 그립다
호산나, 호산나,
말씀이 말씀인 높은 산 하나
침묵에도 흐르는 물이
깊은 산
내 몸 하나 넉넉히 품어줄
그 산이 그립다
詩의 産苦
최병태
빈말이 내게로 다가온다
번뜩이며 긴장한 순간
퍼석한 빈 쭉정이 몇 알
씨알 없는 낱말 되어
허공을 돌고 돌아, 수도 없이
나를 포위하며 옥죄어 온다
날개 꺾인 내 삶의 흔적만큼이나
아픈 걸음으로 모여드는
낱말의 파편들 모아
원고지 체에 걸러
고르고 고르면
처절함이 가당 없어
세월이 할퀴고 간 눈물만 남아
시가 될 수 없는 것이
시라는 옷을 입고
생살 빨갛게 돋아난다
불구의 낱말이여 내게로 오라
허공에 버려진 씨앗들이여
내 사랑의 가슴을 태워
영혼의 불을 지피어라
옥동자를 잉태하리라
흰 구름
최병태
드높은 저 높은 곳
한 폭의 흰 구름 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안에 켜켜이 엉겨 붙은
상흔의 먹구름 떼, 일순에 녹아
단비로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아라
어머니 마음의
정원과도 같은 흰 구름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너무나도 눈부셔
부끄런 얼굴 땅에 떨구고
부질없는 탐욕 비우라 하네
골골마다 휘감아 돌면서
새하얀 물꽃을 피우니
드높은 하늘 넘나드는 전령사 되어
승무의 파노라마인양
노을빛 사랑을
토해내는구나
여명을 그리며
최병태
삶의 한 계단 내려서니
세월에 떨어진 낙엽이 밟힌다
문득
무언지 알 수 없는 퍼뜩이는
시퍼런 날 선 시간들
칼 소리 되어 징징 울어댄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내 기도가
가을비에 젖고 있는데
긴 암흑에서 눈을 뜨니
떨어져 나간 삶의 파편들
다시 밟히며 속삭이듯
들려주는 언어 되어
내 마음 흔들어대는데
짓눌렸던 힘든 시간도
켜켜이 쌓였던 서러움도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여명이 가까이에 있음을 터득하리라
울고 울게 했던 시간들도
앞으로 웃고 웃게 할 시간들로
내 삶의 한 토막이었음을
탐욕 열차
최병태
비늘 선명한 뱀이
평행선 위를 달린다
꾸물꾸물 느리게 걷다가
씽씽 냅다 질주하다가
잠시 멈추더니 옆구리가 터져
삼킨 것들을
쿡쿡 쏟아낸다
미련스레 삼킬 때는 언제고
전혀 소화시키지 못한
탐욕스런 구토가 시작된다
또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힘에 겨운 듯 언덕길을 오를 땐
가쁜 숨을 헐떡이며
꽁무니에선 칙칙 소리를 낸다
겨우 언덕길을 올라
비탈길을 쏜살같이 달리더니
아까처럼 터진 옆구리로
살아 꿈틀대는 배설물들을
토해 낸다
희한한 광경이 목격된다
배설물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사라진다
일상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계속 이어지는 질주
어디가 끝인지
언제가 마지막인지
알 수 없는
자화상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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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였습니다 시인님 주옥 같은 시 즐감하고 갑니다
언제 이렇게 쓴는지요 부럽기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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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흐름과 의미 구조가 탄탄하여 놀랍습니다. 평소 쓰던 작품의 시어들을 넘어선 다양한 시도와 언어 구사가 돋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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