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랬다
—베트남의 투본강 가에서
정 경 혜
목선을 묶어두고 흙길을 걷는다
초라한 도예마을 도자기 체험장
발로 물레를 돌려 작은 항아리 하나 빗고
투박하게 이름을 새겨 넣는다
점토 십장생을 소쿠리에 받쳐든 소녀는
수줍게 말한다
2달라 2달라,
에누리 해 줄 마음으로 불렀으리라
진흙길은 좁고 짧았지만
내 안의 가늘고 긴 여운…
우리도 그랬다
기브미 초콜릿 했다
작은 강마을에서
지난날 우리의 모습을 본다
흙빛 투본강에 황혼이 물든다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강은
고향처럼 순박하다
잠자는 호이안*,
언젠가 그대 깨어나
어느 후미진 골목 앞에서, 말하리라
언젠가 우리도 그랬었다고.
*호이안:
베트남 남중국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 한때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무역항,
1999년 그 옛이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돤 고대 도시.
2)
묘지 이장
—2014년 한식날에
정 경 혜
21년만이다
그때처럼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려 앉고 있는데
그는 말없이
하얀 잇빨만 드러내고 웃고 있다
참 예쁘다,
두개골이 이토록 단아 하다니
오른쪽 정수리에 아직도 남아있는 머리털이 정겹다
그랬었구나
왼쪽 가르마를 탔었지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사이, 달라진 것이 없네
이제 고향 선산,
부모님 곁으로 간다고
천진한 웃음 웃고 있는가
그는, 늘 그랬다
고통에 대해 투정하지 않았듯이
21년의 외롬에 대해서도 투정하는 기색이 없다
고맙구나, 잘 견뎌 주어서
파릇한 봄풀 돋아나는 산천에서, 그는
21년간의 집세 일천 원을 내고
유택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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