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옆에서
김정옥
곁의 나무, 풀들이 다 흔들리고 뒤채어도
꼿꼿이 서 있다
그 향은 울음일까
잎잎마다
눈물의 소인消印이 찍힌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는
푸르고 짙은 불의 형상으로 타오르고 있다
줄기에 묻어둔 무슨 화로가 있어
비바람 거셀수록 몸 사르는 향내는 나는 것일까
어디까지 내려가야 물관부를 흐르는 불씨를 잡아당겨
불꺼진 내 혈맥에 향香 당길 수 있을까
시간도 더디 흐르는
둥지 같은 등불
오늘은 지나는 바람이
종종걸음으로 그 불꽃을 쬐고 있다
프라하의 봄밤
김정옥
초닷새 초승달 호젓이 얹은
붉은 황토기와 지붕들
너머로
두세 마디 자란 청보리 유채꽃은
초야 치른 각시 얼굴이다
젖은 목소리에
달려가 말이라도 건너고 싶은
얘기 나누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프라하성 외곽의 어느 술집 노천카페
이제 막 산을 내려온 짐승 같은 한 사내
필스너 한 잔을 앞에 두고
주인 여자에게 가끔씩 허기진 말을 건너다
밤을 일렁이는
로레타의 종소리 스물일곱 마디 변주에
못내 겨워
몸을 퉁겨 일으킨다
민들레 지천으로 핀 구릉에서
촉촉이 젖은 종이꽃 붉은 입술 한 잎 따들고
지붕 낮은 마을
골목 어귀를 돌아들어
팥꽃나무꽃 흐드러지게 핀 집 앞에
걸음 멈춘다
밀월(蜜月) 어르던 손으로
긴 머리 빗어 넘기는 여인
발그레한 볼
창가에 어른거리고
풀벌레 울음소리
문지방 아래 들썩인다
사나이 벗은 발걸음처럼
오늘 밤
길을
잃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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