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문협 일본 후쿠오카 지역 여행기
합천문협이 매년 6월에 실시했던 문학기행을 2014년에는 당초 계획했던 것이 여의치 않아 미루다가 해를 넘겨 해외여행으로 결정하여 일본 큐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지역을 선정해 다녀왔다. 일본이 삼국시대 한국을 200년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임나가라설, 일제의 한국여성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등 역사 왜곡과 독도영유권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지만 근래들어 일본의 ‘엔저 정책’이 유인(誘因)이 되어 요즘 설 연휴 들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그 중에 관광객이 많이 붐비는 일본의 도시가 후쿠오카로 꼽혔다.
일본의 큰 섬들 중에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는 큐슈(九州)는 후쿠오카(福岡)와 오이타(大分), 나가사키(長崎), 사가와 구마모토(熊本) 등을 통틀어서 기타큐슈(北九州)로 칭하기도 한다. 특히 큐슈의 관문인 후쿠오카는 중심도시로써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나라 일본.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가 바로 후쿠오카이다. 도쿄와 후쿠오카간의 거리가 부산과 후쿠오카간의 거리의 5배나 된다고 하니, 예로부터 해상을 통해 우리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며, 큐슈지역의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이다. 연평균기온이 약 16.3°C로 1년내내 따뜻하며 나라(奈郞), 헤이안 시대(平安)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해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는 요지이다.
부산여객선 터미널에서 일본 후쿠오카항에 이르기까지
2015년 1월 29일, 이날 여행가방을 꾸리고 나와 이화예식장 앞에 대기했던 소형버스에 탑승한 사람은 손국복 합천예총회장, 김숙희 합천문협회장, 최병태 부회장, 정유미 사무국장, 박황규 간사, 윤경선, 김옥란, 김현숙, 필자 등 합천문협임원과 회원을 포함한 9명이 모두였다. 정유미 국장이 애써 마련한 김밥과 음료 등으로 아침 요기를 하면서 부산항 여객선터미널을 향해 달려가는 차창 밖에는 운무와 야음이 짙게 깔려 있었고, 버스가 함안을 지나 부산시 입구에 들어설 무렵에야 동쪽에서 여명이 트이기 시작하였다, 아침 7시 20분경 페키지여행사 태평양관광 직원을 여객선 터미널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일행이 출국수속을 마치고 승선하여 배정된 자리에 앉고 10여분 후 긴 고동의 여운을 남기면서 쾌속선 ‘코비’가 출항할 때는 손을 흔들어 잘 다녀오라는 부두의 아가씨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일본 큐수를 향해 출항하였다. 악견산 선녀 옥란 여사가 배멀미를 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있는 선실창가 조용한 옆 좌석에 앉았다. 방송실에서 유창한 우리말과 일어를 교차하며 연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일본인처럼 보이는 여승무원들이 선실 통로를 오가며 안전벨트착용 확인, 도시락 배달 등 승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지만, 내게 필요한 잔심부름은 유미 씨가 친절하게 도맡아 해주었다.
선실창 밖으로 거센 해류와 파도가 일고 있는 대한해협을 지나 한 시간쯤 지날 무렵 대마도가 우현에 보였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켜 부산과 동래 앞바다에 포진했던 왜구들이 여기서 잠시 집결했던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삼남 지방을 자주 침투해 노략질하며 괴롭혔던 왜구들의 근거지였다. 우리와 관계가 좋을 때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 행렬을 맞이했던 곳으로 일본 본토 막부정권과 한반도 조정 사이의 가교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1905년 을사늑약 때는 의병을 일으켜 일본과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끌려온 뒤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와 대마도 도주 후예인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한 뒤 정신병에 걸려 사랑하는 딸 정혜(일본명 마사에)를 빼앗기고 고국으로 쫓겨 온 비운의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쾌속선 코비가 너울을 타고 질주하며 부산부두를 출항한지 2시간 50분만인 이날 오전 11시 40분경에 일본의 후쿠오카 하카다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객선 페리보다는 소요시간이 1/3 밖에 되지 않게 빠르게 달려 갈 수 있었던 것은 코비호가 배 밑에 날개를 달고 있는 수중익선(水中翼船)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가 다르게 해외여행풍속도가 바뀌어, 우리의 해안에도 호화여객선과 쾌속선이 등장하여 일본은 물론 중국과 대만, 세계 어느 곳이든지 돈만 있으면 빠르고 안락하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일본과는 일일생활권이 되어가고 있어서 수년 전 나의 일본, 제주도 여행 때와는 전혀 다른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카다항에서 첫날 숙박지까지
쾌속선 코비에서 하선한 일행이 하카다항에 내려 입국수속과 세관원의 검색을 받았다. 나는 2000년 공직에서 퇴임한 후 이번까지 네 번째 일본을 방문하지만 세관원들은 마치 범인을 색출하는 듯 매섭고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세관을 통과하자 미리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중년부인인 한국인 가이더 김서목 씨를 만나 대기해있던 24인승 코비 전용버스에 탑승하였다. 그녀는 자기소개와 함께 우리말로 ‘기사님’과 같은 뜻의 ‘도라이바 상’이라는 70대의 운전기사를 소개하고 이어서 2박3일간의 우리 여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날 남은 오후 일정은 ‘아소활화산분화구’이지만, 이 분화구에서 분출하는 유독성 가스 때문에 아소산 입산금지조치가 내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초원을 연상케 하는 쿠사센리 광활한 초원에 소떼가 풀을 뜯는 한가로운 모습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백천수원(白川水源 : 시라카와 수이겐)으로 향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아소활화산분화구’를 대체한 여행지가 온천수가 분출한다는 구마모토의 백천수원지, 일본의 명수(明水) 백선(百選)에 들 만큼 유명한 수원지(水源池)이다. 이 물은 아소산 분화구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섭씨 13.5도의 열로 1초에 1톤씩 솟아올라 다시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지상의 차거운 기온과 만나 뿌연 운무(雲霧)를 피워내면서 히노끼목과 삼나무에 수증기를 뿜어주어 나무들이 정갈하게 자라면서 수로변과 오호리 공원 일대에 울창한 숲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곳 수원지에서도 신(神)이 있어 물이 솟는다고 믿고 백천수원 안쪽에 ‘요시미신사(吉見神社)’라는 신사를 짓고 수호신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토속신앙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태풍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유독 많은 일본인들은 악령(惡靈)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대한 참배를 통해서 재해(災害)를 막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신도(神道) 또는 신사(神社) 토속신앙이 생겨났다고 한다. 일본의 신사에는 천황가의 조상신이라고 생각하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이 가장 많고 유명 귀족, 무사, 문신, 조상신 등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사에 모셔놓고 있기도 하다. 새해 첫날 한 해 가족의 건강과 재운(財運)을 기원할 때도, 마쓰리(축제) 때에도 신사를 찾는다. 아직도 매년 초 일본 수상을 비롯해 각료들이 태평양전쟁 전범들을 안치한 야수쿠니 신사를 참배해 태평양 전쟁 피해 당사국들과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신사는 아직도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들이 많아 국토면적의 2/3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다수 용암으로 굳어져 있어 나무가 자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산들에 억새를 조성해서 말이나 소, 염소 등 초식성 동물의 사료로 만들고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에는 틈만 있으면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아소산 주변 차로를 오르내리며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울창한 숲들은 일본인들이 수백년 조림을 하여 분화구로 찌든 황무지의 땅을 인간이 살 수 있는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고, 조성하여 현재 목재만으로도 일본의 2~3세대가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수목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의 나라(奈良)에 있는 호류지(法隆寺)와 동대사(東大寺 : 도다이지)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1971년에 발견된 공주의 백제무령왕릉의 목곽도 일본에서 들여온 금송으로 만든 것이어서 이들 목재는 금액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인류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온천물이 솟아오르는 용수지(湧水地), 백천수원 관람을 마치고 오후 6시를 조금 지나 겨울비와 짙눈깨비가 섞여 내리는 아소산 중턱 구마모토의 스머프마을 아소팜빌리지에 도착했다. 일본 아소 지역의 대자연을 활용한 건강 테마파크로 아소산에 둘러싸인 450동의 객실들이 1동1객실로 올망졸망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팜빌리지’는 ‘농촌마을’이라는 뜻의 영어이다.
먼저 호텔 프런트에 가서 가이더로부터 방을 배정받았는데, 나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 박황규 간사와 룸메이트가 되었다. 하룻밤, 그것도 낯선 이국땅에서 한 지붕 밑에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은 전생에 소중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콘크리트 구조이기는 하지만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몽골인의 집 ‘게르’와 유사한 객실에 투숙하여 이색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몽골인의 ‘게르’는 천막으로 싸여있지만, 이곳 객실은 ‘게르’를 모방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가와바다 야쓰나리’가 설국(雪國)을 쓰며 머물렀던 일본 홋카이도 키타유자와 온천지역이 아닌데도, 겨울비를 동반한 짙눈깨비가 잠간사이에 함박눈이 되어 하염없이 내리는 온천료칸(온천여관)객실입구, 기모노를 입은 아릿따운 ‘게이샤’의 영접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안내자나 시중드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무인관리시스템의 객실이다,
머리에 얹힌 짙눈개비를 털고 객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내는 하얀 시트로 깨끗하게 단장한 침대가 종횡으로 네 개나 놓여있고, 욕실 한쪽에는 손님이 입을 수 있게 잘 정돈된 목욕타월과 ‘유카다(ゆかた)’가 그날 밤 입을 자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남의 옷을 입는 기분이 들어, 가방을 열고, 가지고 갔던 간편 복장으로 편하게 갈아입고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아소 팜빌리지는 구역 내에 객실과 레스토랑, 온천탕, 맛사지숍, 상점, 커피숍, 노래방(가라오케) 등 위락과 편의시설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으며, 이들 시설 사이를 셔틀버스가 3~5분 간격으로 운행을 계속하여 ‘룸키’만 제시하면 가고자 하는 곳에 가서 내려주기 때문에 이동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셔틀버스에서 내려 호텔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데에는 안내자가 없었고, 안내판이 일본어 ‘카타카나’로 レストラン(레수토란)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일본어를 모르면 한참 헤매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는 대다수 영어나 한글로 병기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런 세심한 배려가 빠져있다.
호텔 레스토랑 음식은 뷔페식 일본음식이었다. 한국 음식과 비슷한 일본 기무치와 닭볶음, 베지터블, 소스된장으로 된 국을 식기에 담아 식탁에 앉았지만 느끼하고 신맛이 풍기는 음식이라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속성이 아니더라도 우리 음식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호텔 온천욕을 했다. 한국처럼 냉탕, 온탕, 열탕을 구분해서 즐길 수 있었고, 주변에는 샤워와 떼를 미는 시설과 한증실도 있어 한국과 비슷한 온천실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곳 온천수는 아소활화산에서 용암과 함께 분출되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용출(湧出)되어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에 유황성분과 탄화수소나투륨이 많고 높은 수소이온농도의 알카리성의 이 물은 우리나라 어떤 온천수보다 질적으로 피부에 매우 좋다고 한다.
공중도덕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중국인 젊은 관광객 4~5명이 주위를 개의치 않고 오만방자하게 떠들어대는 소란한 분위기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탕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객실에서 가져온 타올을 정수리에 얹혀놓고 일본사람 흉내를 내고 있었다.
가이더 말에 의하면 일본 사람들은 샤워를 하지 않고 바로 탕에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이러한 습성을 갖게 된 까닭은 몸에 심한 피부병을 가진 원숭이들이 노천탕에 몸만 적시고 들고나는 것을 반복한 후에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은 것을 보고, 피부병이 있는 일본인들이 이에 따라서 노천탕에 몸만 적시고 나오게 된 것이 일본온천문화의 시원(始原)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노천탕이나 실내 온천탕에 남녀가 혼욕하는 이색적인 목욕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곳 구마모토지역 온천탕에는 지금도 남녀가 한 목욕탕에 자유롭게 출입을 하는데, 탕에 출입하는 여성들의 알몸을 빤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일본 혼욕탕의 에티켓이라고 한다. 이날 밤 우리가 이용한 호텔 온천탕은 외국여행객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남녀 별도의 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혼도시 문화도 온천욕에 편리하기 때문에 생겼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의 하부가 쉽게 노출되는 혼도시를 보고 ‘야만’이라 말하는 반면, 그들은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먼저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상투를 하고 한복을 입는 우리국민을 ‘조센징’이라 칭하며 미개한 민족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저변에는 왕인 박사가 전해준 논어와 천자문 등 그들을 개화시킨 문자가 있고, 천년 일본문화의 금자탑인 호류지(법륭사)에 고구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 일본에 처음으로 도기(陶器)를 전해준 조선도공들의 요업(窯業)문화 등과 같이 우리의 선진문화가 전해져 그들을 먼저 개화시켰음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늘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렸던 일본인들이 한국의 김치를 세계인들이 즐기자 우리의 김치를 모방하여 ‘기무치’라는 것을 만들어서 외국에 내다 팔아 큰 소득을 챙기고 있다. 그들이 우리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멸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의 상대성을 모르는 자민족중심주의에 깊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아소산 팜빌리지 호텔
저녁식사 후에도 밖에는 여전히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몸을 씻고 자리에 누워 편안히 쉬고 있는데, 모이라는 전갈이 있어 손회장 · 최원장의 커플 객실에 ‘유카다(ゆかた)’를 입은 박간사와 간편복장을 한 내가 찾아 갔다. 눈을 맞으며 다른 회원들도 하나둘 한 객실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원하는 것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그 내면에 명랑한 아이를 항상 가지고 있다고 어느 심리학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도 이런 여행 때에는 그 속에 잠재해 있던 명랑한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카다(ゆかた)’’를 입고 마치 ‘패션쇼’라도 하듯 김숙희 지부장이 들어오자마자 어린애처럼 침대 위에 올라서서 둥실둥실 춤을 추고 뒤따라온 현숙이도 청바지바람에 연분홍 잠바를 걸치고 트위스트 춤을 날렵하게 추면서 게르 안 분위기는 그날 밤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침대 아래 둘러앉은 회원들은 그날 낮에 먹다 남은 헴소시지와 게살, 눌린 오징어를 안주로 캔맥주와 소주 등을 마시며 이 광경을 즐기고, 그리고는 현숙이가 가져온 통 아저씨 장난을 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통아저씨 배 밑을 번갈아 찔러 몸통 윗부분이 튀어나오는 장난으로 재수 없는 차례에는 누구든 걸리게 되는 장난이다. 걸린 회원은 노래를 하는 데 모두가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이날 밤 우리가 부른 노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요와 가곡만을 부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정이 가까울 무렵에야 모두 자기 객실로 돌아갔다.
유후인 온천마을과 킨린코호수
아소산 팜빌리지의 아침, 6시가 되자마자 프런트에서 일어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아침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다시 짐을 꾸리고 나와 프런트에 들러 짐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누를 끼친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식당입구에 들어가면서 식당출입을 체크하는 점원에게 제시해야 할 식권을 호주머니 안에 두고 그것을 찾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마침 현숙 씨가 뒤따라 들어오면서 도와줘 겨우 입장하여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여건이 되면 젊을 때는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노령이 되면 조금 전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순발력도 둔화되어 옆에서 젊은 사람들이 인도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절차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본 100대 명수(名水)로 지정되어 있는 ‘사라와(サラワ) 수원지 관광을 위해 산중의 온천마을인 쿠루가와로 이동했다. 유후인은 북동쪽에 명산 유후타케와 쓰카하라 고원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남북으로는 오이타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휴양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계곡 저편에 쿠루가와 마을이 보이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우리들은 가이더의 안내에 따라 여자회원들은 온천욕을 하기 위해 쿠루가와로 이동하고 남자회원들은 전통온천 마을인 유후인온천(ゆふいんおんせん)으로 향했다. 일본 최고의 온천 관광지는 큐슈(九州) 지방의 오이타(大分) 현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온천 지역으로 벳푸(別府)와 유후인(由布院)을 꼽을 수 있다.
'벳부 지옥온천'은 뜨거운 열탕에서 증기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지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름 붙은 온천관광지다.
'유후인 온천'은 최근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온천지로 온 가족이 함께 온천을 즐기고 일본의 정서가 담긴 거리를 걸으며 맛있는 디저트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높아진 인기로 금상고로케, 치즈어묵, 밀크푸딩빵 등 각종 먹거리로 가득한 유후인 거리는 요즘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붐빈다고 한다.
이날 우리가 찾은 유후인은 벳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로, 조용히 편히 쉬기 위해 잠시 머물기에는 알맞은 곳으로 느껴졌다. 유후인 온천 용출량은 일본에서 세 번 째로 많으며 온천의 온도는 41℃에서 98℃로 높고, 온천수는 류마티스· 신경통·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후인시 어디를 가든 온천 목욕탕에 딸린 ‘료칸’(旅館)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은 또한 끈질기게 옛마을 공동체 모습을 되찾으려 애썼던 지역주민들의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건물들이 100년에서 200년 이상 되는 고가의 주택인데, 이러한 고가(古家)의 주택들을 보존하기 위해 이곳 주민들은 이사를 할 때도 새로 주택을 짓지 않고 살던 집을 해체하여 이사할 곳에서 해체한 건축물의 이음새 부분을 다시 결합하여 세운다고 한다.
잉어가 뛰어오를 때 그 비늘이 금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의 이 긴린코호수(金鱗湖)는 ‘유후인의 후지산’, 유후다케(由布岳)·1천584m)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함께 솟아나 만나면서 생긴 안개 때문에 아침이슬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택시들이 좁은 거리에서 행인들을 피해 요리저리 잘 지나다니지만 경적소리가 전혀 없다. 거리에는 대다수가 한국인들이고, 일본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물가게에 들어가 리에코(里惠子)라는 금년 나이 60세의 가게 여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오프시즌(Off Season) 이라고 말한다. 겨울철에는 추우니까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여인은 한문과 영어로 묻는 나의 질문에 쉽게 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빵을 사먹기 위해서 가이더가 소개한 유명한 노인 빵가게에 들렀는데 노인이 외출하고 문이 잠겨 있어 돌아 나오는 길에 길목 화가의 점포에서 손회장의 얼굴을 그리는 노화가의 솜씨를 감상하며 잠시 망중한(忙中閑)을 보냈다.
그리고는 안개 낀 킨린코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쇼핑을 즐기다가 차에 오를 시간에 임박해서 우리는 화장실을 찾아 다녔다. 호수 주변을 두 차례 돌고 돌아 겨우 찾은 공중 화장실, 줄을 짓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은데 변구가 하나뿐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화장실 안에 들어가 보니 불결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용변을 보는 둥 마는 둥 나오면서 이 나라가 과연 선진국 수준에 드는 나라일까 의심스러웠다.
한 집안의 교양 정도를 알아보려면 화장실에 가 보면 알 수 있고,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아보려면 공중시설의 화장실을 가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공중시설에 화장실이 깨끗하고 단정한 나라는 얼마나 될까?
우리 합천의 일해공원만 봐도 일본 유후인의 면적에 반에 반도 안 되지만 화장실이 3개소나 있고, 그 화장실에 들어가면 우선 깨끗하면서 은은한 멜로디가 흐르고 향긋한 내음이 풍긴다. 우리의 화장실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사용하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캐널시티(Canal City) 자유 관광
킨린코 호수와 유후인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전날 쾌속선 코비에서 내렸던 후쿠오카로 이동했다. 캐널시티는 일본 큐슈(九州) 후쿠오카현(福岡縣)에 있는 운하도시로 흔히 줄여서 ‘캐널시티’라고 한다. 이 이름이 유래한 것은 길이 180m의 인공운하가 약 3만 5000㎡의 넓은 부지 중앙부를 남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중심을 흐르는 하카타강(博多江) 옆에 자리 잡은 복합시설로, 1996년 4월 20일에 '도시 극장'을 주제로 개장한 이곳에는 다양한 상점·레스토랑·영화관·공연극장·놀이공간·호텔 등이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시간, 계절, 세대, 국적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날 우리 일행이 3층 난간에서 내려다 본 운하 중앙의 선플라자 무대 주변에서는 내외 관광객이 주위를 둘러싸고 관람하는 가운데 감미로우면서도 경쾌한 아메리칸 백인풍의 재즈음악이 분수쇼와 함께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운하를 중심으로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복합건물에 다양한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고, 각 공간과 시설은 빛, 바람, 비 등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연친화적으로 꾸며졌으며, 운하에는 네온사인과 가로등 밑 벤치 등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관심과 시선을 모으는 것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후쿠러크 매트릭스(Fuku/Luck,Fuku=Luck, Matrix)'가 벽면에 설치되어 있었다. 세로 10대, 가로 18대, 합계 180대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정연하게 줄서, 고상한 이미지로부터 통속적인 이미지, 그리고 서양적 문맥이나 아시아적 풍경 등 다채로운 이미지의 단편들이 어지럽게 화면상을 착증해 보이는 그것은 마치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혼돈이나 무질서의 상태인 카오스(caos)와 같은 현상이라고 한다.
항공, 쾌속열차, 선박 등 교통이 점점 편리해져 국경과 거리개념이 가까워지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우리가 둘러본 후쿠오카의 캐널시티는 운하와 함께 친환경적 공간을 활용해 예술과 이벤트 등 국제적 문화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내외 관광객을 충분히 유인(誘因)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 관광가치를 자랑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널시티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에 여성회원들은 쇼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에 찬조해주셨던 분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에게도 외국여행시에는 감사의 뜻을 전하는 선물을 사서 전하는 것은 우리의 전래미풍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버스에 탑승할 시간이 이미 지나고 있었다. 캐널시티에서 사서 쓴 모자와 잘 어울린 옥란 여사의 아름다운 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30여분 늦은 우리 팀을 보고도 동승버스 안의 다른 팀들이 불평을 하지 않고 쉽게 이해를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들은 이번 2박 3일간의 가장 가까운 우리들의 이웃이었다. 여행 중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다녔고 식당과 호텔프런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날 때는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가 되고 있었다.
후쿠오카 힐튼 씨호크 호텔에서
그날 저녁 우리가 투숙한 곳은 객실이 천개가 넘는다는 일본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특급 숙박시설이었다. 여기서는 대규모 국제회의, 결혼식, 전시회 등 각종 큰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하카타항의 아름다운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대규모 상업시설 호크스타운과 프로야구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의 본거지인 후쿠오카 야후(Yahoo)가 있는 저팬돔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객실에 오르는 중간 4층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프런트 로비가 있고, 여기에는 수백명의 투숙객이 체크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체크인 후 여기서 박간사와 함께 배정받은 25층 객실을 찾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25층까지 오르는 데에는 순식간이었다. 우리의 고층 승강기의 승강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운행을 하고 있었다.
객실 안에는 2개의 침대가 깨끗한 시트로 단장하고 손님 맞을 차비를 하고 있었다. 박간사와 함께 투숙한 객실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밖을 환하게 조망할 수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TV와 소형냉장고가 놓여있으며 이와 함께 쾌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실내 장치들이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전날 밤 아소팜빌리지 호텔에서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산촌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었던 반면,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바다에 접한 후쿠오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도시 야경이 참으로 좋은 객실이었다. 일본의 도농(都農)간 숙박시설의 이러한 체험을 이틀 동안 번갈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이번 여행의 기획은 누가 했던 간에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름다운 도시 하카다항의 야경(夜景)을 감상하며 소요(逍遙)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가 호텔 인근에 있는 카바레에 잠시 들어갔다. 케이팝이 한류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기 전에 한류풍이 이곳에 먼저 도착해서 일본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다가 요즘 아베정권이 들어서고는 한일간 현안문제를 놓고 양국이 갈등하면서 일본 전역에 열광적이던 한류풍이 다소 잠잠해지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를 듯한 일본의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입장하고 보니 공연시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무대공연을 보지 못하고 매운 맛이 혀를 쏘는 찌짐을 안주로, 맥주와 과일주스를 마셨지만 유흥의 분위기는 좀처럼 일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 시간쯤 머물다가 호텔로 돌아와 손회장, 최원장 커플 객실에서 못다한 여흥을 즐기다 각자 객실로 헤어져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침식사를 위해 호텔 식당에 입장하는데 입구에서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전날 아소팜빌리지호텔식당과는 달리 직원에게 말하면 바로 현금결재도 가능하며 음식은 주로 아침식사 메뉴로 빵종류와 헴소시지, 덴뿌라, 계란말기, 방울토마토, 그리고 갖가지 채소류 등을 뷔페식으로 하고 있었다. 음식값은 한끼 3천앤 우리돈으로 3만원 상당이다.
남장원가는 길목에서 <블루스카이>를 부르며
힐튼 씨호크 호텔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동양최대의 누워있는 부처 와불상(臥佛像)이 있는 남장원으로 향했다. 남장원 입구 버스 주차장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첫날 아소팜빌리지 호텔에서 옥란 여사가 소개한 ‘푸른 하늘 은하수’를 영어로 번역한 ‘블루스카이(blue sky)’라는 동요를 부르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 동요를 우리 회원들이 첫날 투숙한 호텔 객실에서부터 모두 즐겨 부르기 시작한 것은 엉터리 번역의 영어가사이지만 이 가사 속에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과 유모어가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에는 호텔에서 그리고 들리는 관광지마다 틈만 나면 그 동요를 즐겨 부르고, 또 부를 때마다 배꼽을 쥐고 웃었다. 이번 여행은 이 동요 때문에 더 즐거웠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이 동요와 함께한 이번 여행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또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의 멜로디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여기에 그 노래가사를 소개한다.
<블루스카이 실버트리, 화이트 쪽배에 계수트리 완트리 토키완마리 돗대도 노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후쿠오카의 남장원은 원래 다카노야마에 있던 절이었는데 ‘에도’ 말기에 불교 사찰의 폐지령 이후 30여년의 탄원을 거쳐 현 위치에 새롭게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가는 남장원은 일본 불교 성지 고야산 진언종의 큐슈지역 본산으로 세계 최대 와불(臥佛)로 유명하여 연간 1만명의 한국불자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와불(臥佛)은 석가모니불께서 45년간 중생을 교화하고 마지막으로 세상과 인연이 다 하여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번뇌를 끊고 무여열반에 드는 모습(쌍림열반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후쿠오카에 있는 "남장원" 와불상을 보기 위해 건물 뒤쪽 산기슭으로 난 턴널 통로를 지나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사원건물이 보이고 그곳 넓은 광장 뒤편으로 커다란 와불상이 나타났다. 그 장엄한 모습이 부처님의 쌍림열반상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부처님 열반상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와상의 크기를 보는 것과 마음속에 복을 구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불교신자들이 모여 와서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빌면서 와불의 발바닥을 만지고 가거나 와불상 앞에 놓여있는 366개의 공양통에 돈을 넣는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복을 빌고 가는 사람들 중에는 롯토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부부가 나란히 당첨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교신앙의 근본 가르침은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위로는 법을 구하고(상구보리: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하화중생:下化衆生)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련만 한국인이나 일본인들 중에는 불교를 복을 빌고 소원을 성취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고 여기서도 그러한 현상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일정 태재부 천만궁 관광
남장원 와불상을 친견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이 태재부 천만궁 신사이다. 1300년 전 태재부시(太宰府市)에는 큐슈 전체를 다스리는 태재부란 관청이 500년 동안 지속되고 있었는데 이곳에 일본역사상 가장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스가와라노미치자네‘라는 사람이 좌천되어 근무한지 2년 후 이곳에서 죽었는데 그가 죽었을 때, 죽은 시신을 소달구지로 옮기던 중 소가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그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 신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스가와라’의 장례시 시신을 운구하던 소를 형상으로 한 동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소로부터도 영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줄을 잇고 있다.
그리하여 이 '다자이후 천만궁'은 학문의 신을 섬긴다는 속설로 시험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일본 전역에서 이곳을 방문한 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는 한해 방문객이 700만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에 차지하는 교육비 비중이 부담스러워 자녀 하나 또는 둘만 낳는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자녀들이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명문국립대나 사립대를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립학교와 사설학원을 다니면서 그 비용이 1인당 적게는 1천만엔에서 많게는 6천만엔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돈으로 1억원에서 6억원에 해당한다. 이런 저출산 현상과 일류대병이 일본인들을 이곳 학문의 신사(神社) ‘태재부 천만궁‘으로 찾아들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부터 중,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부류의 학생들이 방문하여 무언가를 빌고 있고, 소동상 앞에 와서는 소를 손으로 쓰담는 모습이 줄을 이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때, 고득점 취득을 위해 부모들이 절에 가서 염원하는 신앙행태와 닮은 풍속이다.
이러한 풍속도 외에도 하룻밤 사이에 날아와 저절로 피었다는 1200년 된 비매(飛梅)나무와 그 앞에서는 경건하게 박수 두 번 치고 묵념을 하되 '오르면 5만원을 내야 한다는 ‘태재부 천만궁', 그리고 그 주변의 아름다운 정원수의 절경으로 이곳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후쿠오카 하카다항 출발 귀로에서
‘태재부 천만궁’ 관광을 마치고 하카다항 근처에 있는 우동집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후쿠오카 ‘만안(灣岸)’ 면세점에 들려 가족과 친지에게 전할 선물을 구입하고 하카다항으로 이동했다.
항만에서 출국신고를 마치자 행렬에 밀려 귀국선 ‘코비’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일본 입국 때도 ‘후쿠오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이 지역의 주요 관광 명소를 거의 편력하고 이제 출항 후 몇 시간 후면 고향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갈 때와는 달리 돌아올 때는 선실좌석 중앙에 배치되어 어쩔 수 없이 TV 드라마 시청을 강요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코비는 운항시간 2시간 55분을 알리며 부산부두에 정박하고 있었다. 일행은 항만을 벗어나와 손회장의 친구인 어느 사업가의 주선으로 부산부둣가의 K음식점에 들어가 만찬을 즐기고 그날 밤 9시경 이화예식장 앞에 차가 멈추면서 2박 3일간의 일본 후쿠오카 해외 문학여행의 대단원이 마감되었다.
이번 후쿠오카 일본 여행은 비록 2박 3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지역의 숙박과 음식, 피부에 좋다는 온천욕의 체험, 특히 좁은 도로에 경적 없이 사람을 잘 피해 다니는 노련한 일본 기사들의 운전 솜씨와 한국관광객을 친절하게 대하는 가게 주인들의 상냥한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인접국가에 저지른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배타적 민족감정으로 타민족의 인명을 함부로 학살하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관동대지진 때는 일본 경제가 나빠지고 민심이 흉흉하자.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1937년에는 남경(南京 :난징)에서 도망친 장개석의 국민당군 잔당을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죄없는 중국인(30만으로 추정)들이 일본군인에 의해 살육당했다. 태평양 전쟁(1941~1945) 중에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일본군 731부대의 생화학무기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무참히 죽어갔다. 그리고 합천문협이 이번에 방문한 이곳 후쿠오카 현에는 우리가 둘러보지 못한 오무타 시와 나카사키 시 나카사키 현, 기타큐수의 제철소와 조선소, 탄광 등에 수만명(한국인 6만명으로 추정)이 징용되어 그들의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이 때 한국인과 중국인을 강제 동원한 미쓰비시광업, 신일철주금, 미쓰이광산 등 군수 기업들은 한반도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의 후방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부활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그들은 공동목표를 위해서는 타민족의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죽였으며 같은 2차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과는 달리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2011년 일본 도호쿠대지진 때는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이 가족을 잃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도 상점 앞에 질서정연하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선진국민다운 의연한 모습을 보여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근간에는 과거의 만행과 과오를 전혀 뉘우치지 않고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 위안부문제 책임 회피 등 뻔뻔스럽고 양심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민족 80% 이상이 우리와 같은 유전인자(DNA)를 그들의 몸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역사에 기록된 도래인(渡來人)과 백제와 가야인들의 일본으로의 민족대이동의 역사가 그것을 시사(示唆)해주고 있다. 그리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는 국제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대립 등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과거의 한일간의 앙금 때문에 이대로 양국이 끝을 모르고 대립해 소모적인 대립만을 일삼을 수는 없다.
한일 양국은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추구해나가는 중요한 동반자로서 이웃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원대한 공동의 목표 실현을 위해서 그들을 용서는 하되 그들이 과거에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고통의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합천문협의 일본 후쿠오카 여행이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국내를 벗어나 이국(異國)땅을 다녀오면서 보다 넓은 세계에 대한 문학적 안목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푸시킨·차이콥스키의 고향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가다
7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해외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메르스가 창궐하던 지난 6월 2일 오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편으로 출국하였다. 여객기를 타고 비행하는 시간이 9시간 15분, 오랜 시간 벨트에 몸을 묶고, 불편을 감수하며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모든 것들을 보며 중세기 유럽의 인문적 사색과 비주얼(Visual)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서는 하얀 밤의 추억, 백야(白夜)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근래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러시아에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연상되는 것이 있다. 1917년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리고 볼세비키 10월혁명으로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나라, 조선인들을 연해주에서 타슈켄트로 강제 이주시키고, 1950년 김일성에게 탱크와 전투기를 지원하여 6,25 한국전쟁을 배후에서 사주한 스탈린이 떠올라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2008년 우리나라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여 새로운 한-러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우호적인 나라가 되었다.
어느 나라, 어느 마을에 가도 세상의 주인은 나무다. 높게 서서 하늘을 이고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여기 내가 잠시 머무르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콘스탄티노프스키 26번가는 크레스톱스키 지하철역이 5분 거리에 있고, 주변에는 쭉쭉 뻗은 자작나무 그늘과 노란 민들레가 지천에 깔려있는 아름다운 정원 사이를 네바 강 검푸른 물결이 유유히 흐르는 쾌적한 강가 마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강어귀에 발달된 면적 45.6㎢에 이르는 커다란 삼각주에 발달된 항구로, 예로부터 발트해(海) 제일의 무역항을 이루었다. 네바강은 전유로(全流路)가 항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백해(白海)∼발트해를 연결하고, 모스크바~볼가강(江) 유역의 도시, 카스피해∼흑해를 잇는 중요한 수상교통로 구실을 한다.
라도가호에서 발원한 검푸른 네바강 너울물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와 시가지를 적시는 아름다운 도시, 유서 깊은 이곳은 65개의 샛강이 흐르고 500개가 넘는 다리를 놓아 운하의 도시로 만들어졌다. 이태리의 베네치아처럼 아치형 다리 밑을 유람선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거기에서는 사공이 배를 젓지만 여기서는 엔진을 단 동력선(動力船)이 운항되고 있다.
자연과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심미적(審美的)인 감성(感性)을 가진 예술인들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쉬킨, 차이코프스키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고향이며 6~8월에는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지 않는 백야의 적막이 신비로운 문화예술의 도시다.
이곳은 밤 시간이 가장 짧을 때는 30분에서 많을 때는 두 세 시간 밖에 안 되고, 낮과 밤 경계점에서 저녁노을이 금방 여명(黎明)으로 바뀌며 해가 떠있는 시간이 계속되는 ‘백야(白夜)’ 현상이 있는 곳이다. 백야는 ‘북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이 되었고, 이 도시를 유럽의 대도시들과 구별시키는 신비스러운 관광자원이 되었다.
대낮 같이 밝은 밤시간, 나는 아름다운 이 도시 백야(白夜)의 적막이 흐르는 네바 강변을 라일락 꽃 향기를 맡으며, 몽유병 환자처럼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 두 번 다시 찾아 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운 주인공은 바로 표트르 대제였다. 표트르 대제1682-1725)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자신의 상징적 모델로 삼고 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의 신화에는 ‘물과 돌’이 등장하는데 도시가 세워지기 전 물이 있었던 늪지대에서 표트르 대제는 돌로 건축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피라밋과 진시황의 그것을 상징하는 만리장성에서처럼 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늪지대에 돌을 깎아 세우고 건물을 쌓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농노(農奴)들과 죄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것이다. 역사는 그 소중한 인명의 대량 희생에 대한 표트르의 대죄를 묻기보다는 그들의 희생 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운 그의 업적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가 세운 상트페테부르크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이자 제정러시아 황제들의 황금 휴양지 겨울궁전과 각종 보물로 치장한 엘카테리나 궁전(호박관),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쥬 박물관(여름궁전)과 백조의 호수나 신데렐라 같은 발레 공연을 하는 마린스키 극장, 무려 40년에 걸쳐 건립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상트 이삭 대성당’과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흘리면서 숨을 거둔 피의 사원, ‘그리스도 부활 성당’ 등 러시아의 300년 정치, 종교, 역사와 전통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곳들을 모두 섭렵하려면 적어도 10일 정도가 소요된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생산법인을 가다
러시아에서 세 번째 일정이 계속되는 날이다. 6월 5일 이곳에 있는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보내준 택시를 타고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카멘카 지역 이곳 현대자동차 생산법인 공장을 방문했다. 이날은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가족들이 초청되어 자동차 생산라인을 견학하는 날이어서 사위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연고로 나도 함께 공장 견학을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무실 입구에 붉은 색의 소형 승용차 ‘쏠라리스’(국내명 액센트) 한 대가 밤바 위에 새겨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세련된 사인을 자랑하며 스마트한 자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이 지난 2010년 9월 완공돼 이듬해 1월부터 본격생산에 들어간지 2년 7개월 만에 러시아 진출 외국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장 빨리 연간 5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현재는 1일 920대를 생산해 금년 5월에도 생산 및 판매 수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공장은 현지에 진출한 외국 자동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프레스-차체용접-도장-의장 조립' 등의 전 공정을 하나의 공장에서 수행하는 완성차 공장(Full-cycle plant)' 설비를 갖췄다. 11개 부품 협력사도 동반 진출해 현대차를 지원하고 있다.
이 공장 K총무과장은 “프레스부터 완성차 생산까지 한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고용창출효과가 뛰어나다”며 “이 같은 효과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정부(州政府)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에서도 모범적인 해외기업 진출사례로 꼽히고 있다”고 강조하며 진열창에 진열된 푸틴 대통령이 수여한 상패를 가리켰다.
이 공장에서는 현재 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2천100여명, 협력 업체에서 4천900여명 등 총 7천여 명의 러시아인들이 일하고 있어서 한-러 협력의 최일선에서 국익을 위해 현지 법인을 세운 정몽구 회장과 묵묵히 생산현장에서 생산공정을 일일이 감시감독하고 근무하며 한-러간 유대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 현지 관리자 및 근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유라시아 시대의 비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러시아의 모든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직장을 갖게 해준 한국 기업과 한국인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이들이 받는 한 달 근로자들의 급료는 우리 돈 평균 150만원이지만 러시아 근로자들의 평균 소득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근로자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사분규를 일으킬 불만이 전혀 없다고 한다.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현대자동차를 포함해서 2006년부터 LG, 삼성, 대우조선 해양, 롯데, 한국야쿠르트, 오리온, KT&G, LG 하우시스, STX 그룹의 조선소, 현대중공업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하여 대러 투자와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수반하여 늪에 빠졌던 러시아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은 러시아뿐만 아니다. 유라시아 역내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통해 교역의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고, 이를 위한 유라시아와의 협력이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동북아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이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과제는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위한 대륙간 철도망 구성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유라시아의 ‘이니셔티브’이다.
우리는 150년 전 중국과 일본이 개방정책으로 변화하고 있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통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제2의 개항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IT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유라시아의 역내외 국가들과도 자유무역협정과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대륙간 철도망을 추진하고 있어서 이러한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21세기 우리의 비전인 유라시아 시대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반도가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부산을 출발, 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21세기 실크로드 특급열차를 타고 여유롭게 여행하면서 백야의 적막이 조용히 흐르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생애에 한 번 더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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