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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호 작품 출향 강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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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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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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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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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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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6 20:09:22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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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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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어찌 잊으리
姜 中 九
‘낮은 능선 위로 하늘은 활짝 트이고, 그 밑에 바다가 숨어 있는지 일대는 온통 바닷물의 반사로 눈이 부셨다. 길은 화산재 때문인지 바랜 것처럼 하얗고, 나무란 나무는 일부러 그린 것처럼 엷은 연록색을 띠고 있다. 틀림없는 조선의 산하였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소설《고향을 어찌 잊으리(故鄕忘く難じ候)》에서 가고시마현에 있는 미야마(美山) 마을을 묘사한 대목이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미야마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작은 마을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쓰마야키(薩摩燒)의 본 고장이다. 사쓰마야키는 자기와 도기를 동시에 구워내는 것이 특징인데 초기에는 질그릇과 다기가 주산이었으나 지금은 고급 도예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고시마에 있는 미야마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들이 정착한 마을이니 역사가 400년도 넘는다. 1597년 전라도 남원 전투에서 승리한 사쓰마 영주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조선 도공 80여명을 붙잡아 3척의 배에 태우고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박의평(朴平意), 심당길(沈當吉) 등 살아남은 43명이 탄 배가 도착한 곳은 가고시마현 시마비라(島平)라는 인적 없는 해변이었다.
그들은 생업인 백자를 구울 흙을 찾아 나섰지만 화산재로 뒤덮인 큐슈에서 백토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5년을 헤매어도 찾지 못하고 1603년 사쓰마한(薩摩藩)에 구원을 청하고자 남부여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고향인 남원을 닮은 나에시로가와(苗代川)가 마음에 들어서 정착하게 되었다.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한 조선 도공들은 한복을 입고 단군님을 모시면서 살았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마을사람들에게 단군님을 모시지 못하게 하면서 마을이름마저 미야마로 바꿔버렸다.
미야마는 야트막한 산 아래 펼쳐진 논밭과 집들이 우리나라 여느 시골마을을 연상케 했다. 마을 뒤 푸른 숲은 마을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하고 만나는 마을사람들도 상냥하고 인정이 있었다.
미야마에 거주하고 있는 200여 세대 가운데 그 절반인 100여 세대가 조선 도공들의 후손으로 조상들의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쓰마야키를 대표하는 도요는 심수관요(沈壽官窯)이다.
심수관요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이 만든 도요로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왔는데 특히 12대 심수관은 뛰어난 도공으로 1873년 오스트리아 세계도자기전시회와 1876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큰 호평을 받자 그때부터 심수관의 이름을 대를 이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13대 심수관도 도쿄법대를 나와 총리비서까지 지낸 수재였는데도 가업을 이었고, 지금은 14대 후손인 심수관옹이 사쓰마야키라는 조선도자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인 15대 심수관도 가업을 이어받아 가마를 지키고 있고.
“그릇을 굽다가도, 꿈을 꾸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게 고향이더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일본 땅에 표류한 지 어언 400여 년. 그들이 대를 이어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쓰며 조선풍속을 지키면서 조선을 그리워하던, 미야마 도공들의 못다 부른 망향가이다.
미야마 조선 도공의 후예인 심수관은 일본의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의 실제 주인공이다. 시바 료타로는 당시 외무대신인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조선 도공 박평의의 13대 후손인 박무덕)를 취재하려고 그의 고향인 미야마에 왔다가 조선 도공 들의 애환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시바 료타로는 이 마을에 사는 도자기 명인인 심수관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심수관의 사연을 들은 그는 정유재란 때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비애를 그린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심수관요는 미야마 간선도로변에 있었다. 대문에는 제주도 돌하르방이 서서 한국에서 온 길손을 반갑게 맞는다. 14대 심수관옹은 대한민국 명예총영사로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돌하르방 양옆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유품과 구운 도자기를 전시해 놓은 수장고에는 백자가 많았는데 작품들은 하나같이 훌륭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13대 심수관이 만든 작품들은 흙으로 빚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광택이 나고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자녀들을 가르치던 한글로 된 교본도 있었으니, 붓글씨로 쓴 책을 보고 있노라니 산 설고 물 선 이국땅에 끌려와 살면서도 자손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던 조상의 의지를 보는 듯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히바카리(火ばかり)’
그것은 심수관요 제1대조인 심당길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도자기의 이름을 ‘히바카리’라고 한 것은 흙과 유약은 물론 빚은 사람도 조선 도공이고, 단지 그릇을 구운 불만 일본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심당길의 14대손인 심수관옹은 8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온화하고 자상한 풍모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책상 뒤에는 그의 좌우명이 쓰여 있었다.
‘어제는 동산에 있었고
오늘은 자리에 있지 않으며
내일은 다른 곳에 간다.‘
(昨日在苑 本日不在 明日他出)
그의 좌우명은 400여 년의 세월을 타국에서 유랑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그린 것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길손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고향을 어찌 잊으리.
섬마을 선생님
姜 中 九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하숙방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노라면 철썩, 철썩, 쏴- 하는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래도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라디오를 켰다. 그러면 그 무렵 한창 유행하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이 흘러나왔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초등학교 교사 강중구,
중학교 교사에 임함, 거제 고현중학교 근무를 명함. 1967년 4월 1일. 문교부 장관’
이 사령장 한 장이 심심산골 합천에서 나고 자라서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쌍백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나를 하루아침에 섬마을 선생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독학으로 중등학교 교원자격고시검정시험에 합격하자 문교부에서 중등학교로 발령을 낸 것이다.
사령장을 받아든 나는 지도책을 펼쳐 놓고 거제도 고현이 어디쯤 있으며 어떻게 찾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나는 지리학이 전공이어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합천에서 진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고성을 거쳐서 통영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여서 거제도로 가는 배는 끊어져 버리고 없었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 여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다음날 아침 금양호를 타고 거제도 성포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 거제고현중학교는 계룡산 기슭 옛 거제포로수용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개교한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운동장마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학교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잡초가 무성한 후원에는 6·25 전쟁 때 지은 포로수용소 건물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3개 학년 5개 학급으로 구성된 학교는 단출해서 좋았다. 하지만 8명의 교사가 한 학년에 15개나 되는 교과목을 가르치려니, 한 사람이 네댓 개 과목을 맡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갓 서른에 교무주임이 된 나는 선생님들의 교과 배정을 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래서 지리학을 전공한 나는 지리는 물론이고 역사와 일반사회, 심지어는 물상까지 맡아서 가르쳐야 했고, 체육 선생은 음악과 미술을 맡아야 했으며, 그해 처음 교단에 선 가사 선생은 물상을 맡으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으니, 섬마을 학교 선생님들의 교과 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니 수업인들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그 중에서도 물상은 내 전공과는 거리가 멀어서 수업이 있는 전날이면 밤늦게까지 교재연구를 하지만 그래도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막히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체육을 가르치다가 국어로 전과한 김 선생은 3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내던지고 가 버렸다.
그래도 섬마을 학생들은 순박해서 좋았다. 전공과목이야 문제될 것 없지만 상치과목을 가르치다가 막히기라도 할라치면 학생들이 먼저 눈치를 채고 “선생님, 연구해서 다음 시간에 가르쳐 주시고 재미나는 이야기나 해 주십시오.” 하면서 선수를 쳤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도루코 면도칼로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랑 죽창으로 곰을 잡는 이야기 하며, 소주에 불린 쌀로 참새를 잡는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해 주었다.
그리고 정규수업이 끝나고 나면 방과 후에는 보충수업도 자율학습도 없으니 학생들의 손을 잡고 포로수용소 건물이 늘어선 학교 후원을 거닐면서 청운의 꿈을 심어 주기도 하고 계룡산을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길러 주기도 했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댓섬에서 낚시를 하거나 해수욕을 하다가 파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가고파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그 무렵 풍금을 배워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단발머리 소녀가 찾아왔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중학교로 옮겨왔기 때문에 풍금을 탈 줄 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풍금이 서툴기는 하지만 소녀의 소망이 하도 간절해서 방과 후 학교로 찾아오는 소녀에게 풍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도-레-,미-로 시작한 풍금 교습은 소녀가 총명해서 진도가 빨리 나갔다. 그래서 학교종이 땡-, 땡-, 땡-을 거쳐서 몇 달이 지나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 자격고시 검정시험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내가 몇 년 동안 책과 씨름을 하다가 1년 전에 중등학교 교원자격고시 검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그 방면에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금 교습이 끝나고 난 한가로운 시간이면 우리는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고현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거제포로수용소 건물이 늘어선 학교 후원을 거닐기도 하고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조개껍질을 줍기도 하고.
그런데 다음해 3월 나는 고향의 합천농업고등학교(현 합천고등학교)로 발령이 나 버렸다. 그래서 소녀의 음악 교습은 끝이 나 버렸고 나는 섬마을 선생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섬마을을 떠나는 나에게 소녀는 바닷가에서 주웠다는 하얀 조개껍질을 주었다. 육지에 가도 이 조개껍질을 보고 있노라면 고현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면서.
손을 흔드는 소녀를 뒤로 하고 배를 타고 섬마을을 떠나는 나의 귓가에는 섬마을 선생님 노래 소리가 끝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 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姜 中 九
1990년《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남강문학회 회원,
에세이부산문학회 창립회장, 수필부산문학회 고문, 부산문인협회 자문위원. 전 재부합천문인협회 회장,
국제문화예술상 수필 본상 수상, 제1회 교원학예술상 수필부문 수상
수필집《가을에 그린 초상화》, 《징검다리가 있는 마을》,《고희의 꿈》,《그 찬란했던 배낭여행기 인도》,《내 생애 가장 황홀했던 남아메리카 배낭여행》,《맨발로 돌아본 일본》등
47803, 부산시 동래구 복천로 5번길 34, 우성베스토피아 APT 111동 606호
전화: 051-554-8289, H.P: 010-4463-8289, E-mail: sanha38@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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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 고향을_어찌_잊으리.hwp (38.5 KB), Download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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