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그린 72세 때의 나의 모습
한국수필문학사에서 내게 ‘자화상’이란 주제로 내 얼굴을 스스로 그려보고 글로도 한번 표현해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요즘은 성형이 유행처럼 번져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제 얼굴 모습을 뜯어 고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세상에 부모가 물려준 생태(生態)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형을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 모두 연륜에 따라 그 모습이 점점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각자 그리는 자화상도 연령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기 때문에 위에 그린 화상(畵像)은 H사에 근무하는 사위를 따라 러시아에 가 있는 둘째 딸이 72세 때의 내 사진을 보고 그려서 보내온 것이다. 그러니까 위의 그림은 나의 자화상이 아니다.
위 화상에서 보는 것처럼 72세 때의 나의 얼굴은 왼쪽 뺨 언저리가 매우 일그러져있다. 젊을 때부터 동안(童顔)으로 통해졌던 나는 이순(耳順)인 60의 나이인 때도 50대 초반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해가 갈수록 이처럼 잔주름이 하나씩 늘어나고 안면근육도 탄력이 없어져 쭈글쭈글하며 머리의 백발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황혼의 여정이다.
청년시절에도 나는 눈과 귀, 그리고 입까지 작고, 키도 작은 편에 속하며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내 세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 내 얼굴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스무네살 때 소위로 임관하면서 대한민국의 육군의 간성으로서 앞날에 청운의 꿈을 가진 패기만만한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육군 대위로 승진하고 60년대 후반 미국 볼티모아주에 있는 미육군병기학교에 유학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기간 양쪽 어깨에 ‘나를 따르라’는 견장을 달고 거리를 누빌 때는 세상에 아무런 부러울 것이 없었다. 꿈 많고 패기만만했던 그 시절에 나는 중매를 통해서 평생 배우자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교직에 몸을 담았고, 60세가 되던 해 2000년도에 교직에서 퇴임했다.
퇴임 후 나는 지역의 문학회와 향토사, 문화예술단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70대 중반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내 인생에서 아쉬움이나 회한(悔恨)은 전혀 없다. 얼굴모습이 못나서 고민해 본 일도, 더욱이 잘 났다고 교만한 적도 없다.
자식들 자라 모두 직장을 갖고 독립하여 그런대로 잘 살고 있어서 그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노부부 두 사람 생계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니 부(富)를 더 쌓거나 명예를 더 높이고자 하는 욕심도 없다.
그저 마음이 편안할 뿐이다. 지역사회 참여활동 외에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지난 생애를 반추하면서 조용히 글을 쓰며 어쩌다 지우(知友)를 만나 한 잔의 술로 세정(世情)을 나누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러다가 명절이나 두 사람 생일에 맞춰 아들딸들이 손자 손녀들을 앞세우고 찾아올 때는 그 희열감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다.
나의 노후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이 만큼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젊을 때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아마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이목구비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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