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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향문인 <이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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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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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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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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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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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2 10:45:15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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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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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림받은 남자(680)
이자야
42세 김백수 씨. 그는 이름 그대로 오갈 데 없는 백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천날만날 싸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했기에 서울에 인접한 어느 삼류대학에 들어갔다. 그나마도 졸업을 못했다.
대학 삼학년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그의 백수 신세가 시작됐다.
이웃집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그는 마지못해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곳 또한 그의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7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사표를 냈다. 그러나 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어느 눈 먼 아가씨 하나가 그의 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경리사원으로 일하던 아가씨였다.
사귄지 몇 달 뒤에 아가씨는 임신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그녀와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월세 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자 아예 뱃속의 아이를 지워 버렸다.
그즈음 그는 그의 꿈을 향해 매진을 했다. 가수가 되는 꿈이었다. 그는 밤낮으로 통기타를 두드리며 놀고먹었다. 부모가 남긴 유산은 금방 바닥이 났다. 위기를 느끼자 그는 동네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이미 야한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가게를 연지 불과 넉 달 뒤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은 돈도 몽땅 날아갔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변했다.
아내는 백수가 된 그의 거동을 살피고만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주야로 그 어두운 지하 단칸방에 앉아 노래를 불러댔다. 그 무렵 아내는 부산하게 집밖을 들락거렸다. 아내 스스로 일거리를 잡아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는 수시로 드나들었다. 저녁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기도 했다. 때로는 술에 취해 들어와 횡설수설했다.
“니가 뭐야? 자고새고 통기타만 두드리면 돈이 나와?”
그는 그런 아내를 두어 번 나무랐지만 아내의 외출은 더욱 잦아졌다. 그렇다고 아내를 두들겨 팰 수도 없었다. 여고시절 배구선수였던 아내의 완력을 그가 당할 수가 없었다.
손찌검은 되레 술 취한 아내가 휘둘렀다. 성질이 나면 그의 뺨을 후려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등신아! 나가서 다른 집 남자처럼 돈 좀 벌어와. 넌 자존심도 없냐? 그래, 좋다. 돈은 내가 벌 테니까 넌 집구석에 처박혀 살림이나 살아!”
돈을 못 버는 그는 아내의 말에 순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월말이 되면 아내는 쥐꼬리만 한 봉급을 그에게 내밀었다. 겨우 70, 80만 원 정도였다.
“이걸로 어떡하던 한 달 살아. 이것도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야. 싫으면 나가든지.”
그러나 백수건달인 그가 나갈 곳은 없었다. 아내는 걸핏하면 그런 남편을 구박했다.
나이 40에 접어들던 작년부터 아내는 부쩍 수상해졌다. 한번 집을 나가면 새벽녘에야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왔다. 그가 용기를 내어 항의를 했다.
“당신 어디서 뭣하고 오는 거야?”
“돈 벌고 온다. 왜?”
그 말에는 그도 응답을 못했다. 아내는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잡을 잤다. 그 시간에 그는 아내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직도 꿈을 접지 못한 가수의 꿈을 안고 기타를 두드리며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럼 아내는 부스스 일어나 그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었다.
그 위에 아내는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을 부렸다. 설거지가 덜 되었다고 면박을 주는 가하면, 집안이 지저분하다면서 잔소리를 하고, 키우는 강아지가 불결하다면서 당장 들고 나가 목욕부터 시키라고 호통을 쳤다.
이제 김백수 씨는 그야말로 백수에다 속절없이 고개 숙인 남자가 됐다.
아내의 수입도 들쭉날쭉 했다. 때로는 200만원을 갖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벌이가 시원찮다면서 50만원만 던져준 적도 있었다. 그러자 전기세에 수도세도 밀렸다. 그 위에 살고 있던 전세방도 밀렸다. 그런 말을 하면 아내는 그가 돈을 함부로 쓴다면서 가계부를 보자고 닦달을 했다.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그들은 변두리에 있는 어느 허름한 가옥으로 이사를 갔다. 말이 가옥이지 그건 옛날 곡물창고로 쓰던 가건축이었다. 목조로 된 천장은 비만 오면 물이 줄줄 샜다. 그래도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방도 만들고 집안에 화장실도 만들었다. 그 돈은 다 아내가 댔다. 김 백수 씨는 그나마 남아 있던 자존심도 날아갔다.
아내는 집에만 들어오면 구박을 했다. 그때마다 그는 항의를 했다. 사실 그는 집안 일 외에 바깥나들이도 삼가 했다. 돈이 무서워서 없는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내는 술이 취해 들어오면 당신은 왜 돈을 물 쓰듯 하느냐고 쏘아댔다. 걸핏하면 손찌검을 했다.
견디다 못한 그가 가출을 시도했다. 집 나가서 개고생만 하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어떤 중년의 남자와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내는 신체도 건장하고 얼굴도 훤했다. 부티가 절로 났다.
그는 두 사람이 술 마시는 와중에도 안방에 들어가서 쥐죽은 듯 숨어 있었다. 남자는 그날 해질녘에야 아내를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가수지망생인 그의 머리에도 환하게 드러나 보였다.
보나마나 아내는 사내의 검은 리무진을 타고 시외의 호젓한 별장으로 갔을 것이다. 그는 아내가 들어오기를 뜬 눈으로 기다렸다.
그날 밤 아내는 새벽 3시가 넘어 술에 취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들어 왔다. 그는 아내가 들어오기를 단단히 벼루고 있었지만 막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감히 대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그의 움츠린 모습을 보고 빈정거렸다.
“집 나간 개가 왜 들어 왔어?”
그는 잔뜩 기죽은 자신을 달래며 아내에게 말했다.
“낮에 그 남자 누구야?”
“애인이다, 왜. 할 말 있어?”
아내는 대놓고 그 남자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불렀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당당해서 그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내는 술 취한 몸을 겨우 가누며 침실로 들어갔다. 그도 아내를 뒤따라 침실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아내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어딜 들어와! 집 나간 개가? 당신이 이 방에 잘 자격이라도 있어?”
그는 흠칫 몸을 세우며 아내를 향해 간청을 했다.
“여보 잘 못했어. 다시는 집 나가지 않을 게.”
“아냐. 나가. 나가서 아예 들어오지 마! “
쾅! 아내가 방문을 닫았다. 그날 밤부터 그는 감히 아내가 있는 침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아내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제 멋대로 침대 위를 뒹굴며 그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방문 밖에서 아내가 하는 목소리를 속절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 거는 아내의 목소리는 참으로 나긋나긋했다.
“여보? 당신 지금 뭣해?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야. 나 지금 심심하걸랑. 나하고 저녁에 어디 놀러가자. 강변도 좋고. 지난 번 당신이 데려다 준 그 별장도 좋아, 응?”
아내는 방문 밖의 그가 들으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그 사내를 여보라고 불렀다. 듣다 못한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슈미즈 바람의 그녀가 전화를 걸다말고 멍하니 들어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감히 아내에게 항의 했다.
“당신 지금 너무 하는 거 아냐?”
“뭘 너무해?”
아내는 또 당당하게 물었다. 그는 분노에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말을 했다.
“당신? 부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 단 말 알아?”
그러자 아내는 표독한 소리로 쏘아붙였다.
“지랄하네. 돌아앉을 연이 누군데?”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바람피우는 거 봤어?”
“인간아? 며칠 전 사흘 밤이나 외박하고 돌아올 땐 뭔 짓거릴 하고 왔어? 어떤 계집하고 어울려 놀았냐고!”
그는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계집이라니? 그에게 처음부터 다른 여자는 없었다. 오직 아내뿐이었다. 그런 자신을 아내는 노골적으로 부정한 남자로 보았다. 그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차마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지낸 그 사흘 밤이라니? 사실 그는 노숙자로 살았다. 집나간 그날부터 노숙자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엄처시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날밤은 서울역에서 밤을 샜다. 노숙자들이 그를 구박했다. 골판지에 몸을 눕히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술 취한 부랑자들은 그를 발로 걷어찼다. 밤새 중얼거리고 소리 지르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노숙자 판에서 그는 뜬 눈으로 공포의 하룻밤을 보냈다. 다시는 그곳에 잠자리를 정할 곳이 못 되었다. 그는 떠돌이로 이튿날 거리를 배회했다. 주머니에 든 돈이 없어 칼국수 하나로 하루를 버티다가 이번에는 서울역 근처의 작은 공원에 가서 잤다. 공원이랬자 수풀이 우거진 버림받은 땅이었다. 노숙자들도 찾지 않는 더럽고 냄새나는 그 쓰레기 더미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자 사지육신이 쑤셨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다음날은 그 좁은 공원의 쓰레기더미 뒤에서 숨어 지냈다. 또 하룻밤을 그곳에서 잤다. 이튿날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감기가 들어 기침이 쉴 새 없이 튀어 나왔다. 몸살기운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는 우선 약방을 찾아가서 감기몸살 약을 사 먹었다.
조금 살 것 같아서 몸을 움직이니 허기가 져서 운신을 할 수가 없었다. 주머니의 돈은 바닥이 났다. 이젠 염체고 뭐고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인적 드문 골목길로 들어가 그곳 음식점에서 내다 버린 음식물을 훔쳐 먹었다.
굴뚝 아래서 그가 쉬어빠진 국수 가락을 엉금엉금 먹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그를 보고 다가왔다. 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게걸스레 쓰레기 음식을 먹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개가 말했다.
개보다 못한 인간아? 차라리 죽어라. 똥개인 나도 음식을 주워 먹진 않는다. 그러면서 개는 입을 약간 벌리고 으르렁거렸다. 그런 개의 목소리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해질녘 그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물론 집안에 없었다. 그날 밤 늦게 들어온 아내가 그를 보자마자 더러운 개취급을 했다.
“인간아? 나가서 살지 왜 들어 왔어! “
그가 아내의 말에 대꾸를 못하자 아내는 더욱 기세 등등 했다.
“나가!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마!”
아내는 방안으로 들어서려는 그를 두 팔로 밀어냈다. 그는 항거했다.
“여보? 그게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나, 그 사흘 밤 개처럼 나돌았어. 정말이야.”
그러자 아내는 더욱 큰소리로 앙탈을 부렸다.
“그럼 당신이 개지 사람이야? 사람이냐고!”
그는 또 말을 잃고 멀뚱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왈칵 방문 밖으로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어딜 들어 와! 이 더러운 몸으로! 나가! 차라리 나가서 개처럼 돌아 다녀! 나가라고!”
그는 아내의 힘에 떠밀려 방문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자 아내는 쾅! 방문을 닫으며 소리쳤다.
“개도 당신보다는 나아. 자존심이 있다면 내가 그 남자와 술 마시고 있는 걸 보고만 있어? 이 더러운 개야?”
그는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참으로 참담하고 비참하고 개처럼 비루해진 자신을 느끼며 김 백수 씨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덕허덕 울기 시작했다.
“그래, 난 개여. 개라고. 내가 바로…. 더러운 개야. 여보?”
그는 목 놓아 울었다.
2) 피아노 소리
이자야
사람이 살다가 보면 참 별스런 꼴을 다 당한다. 특히 도회지 인생살이가 그렇다. 별의별 인간들이 이 넓은 도시에 다 모여 살고 있으니까.
벌써 30여 년 전 얘기다. 우리 부부는 천신만고 끝에 셋방살이를 벗어났다. 집장만을 위해 알뜰살뜰 돈 모으며 사느라고 아이 낳는 일도 일부러 뒤로 미루고 있었다.
결혼생활 7년 만에 어느 산비탈에 자리 잡은 조그만 아파트로 들어갔다. 25평 남짓한 집이지만 대궐이라도 얻은 듯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종일 우리 부부는 출근도 안하고 이삿짐을 챙기느라 파김치가 됐다.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남편이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나도 서둘러 세수를 하고 남편을 따라 들어갔다. 침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여보? 오늘 밤엔 작품 하나 만들자.”
“뭔 작품?”
“어허, 미뤄뒀던 우리 2세 말이야. 어서 올라와.”
남편이 나의 한 팔을 침대 위로 끌어올렸다. 나는 못이기는 척 침대 위로 올라갔다. 막 분위기가 무르익는 판이었다. 갑자기 위층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였다. 우린 그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 밤중에 뭔 피아노 소리야?”
“그러게 말이에요.”
화가 난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아냐. 이 길로 내가 올라가봐야겠어. 어떤 인간인지.”
나는 그런 남편을 달랬다. 물론 2세 만들기는 김이 새서 그냥 곱게 잠만 잤다. 다음날 밤엔 정말 작정을 하고 나는 몸단장을 했다. 남편이 거나하게 취해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들어왔다.
“으하하, 요보? 오늘밤엔 진짜 2세 한 놈 만들자. 엉?”
나는 잔뜩 기대에 차서 남편의 손에 이끌려 침실로 들어갔다. 막 침대 위에서 우리 부부가 기분을 내고 있는 참이었다. 마치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소리로 위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놀랜 우리 부부는 침대에서 한 자나 껑충 뛰어올랐다. 화가 난 남편이 팔뚝을 걷어붙이더니 그대로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나도 호기심에 못 이겨 얼른 옷을 바꿔 입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새 남편은 위층 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문 좀 여시오! 문 좀 열라니까!”
그래도 문이 열리지 않자 성난 남편은 주먹으로 출입문을 냅다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남편도 나도 놀래서 또 한 번 껑충 뛰어올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체중이 100킬로그램은 넘을 레슬링 선수 같은 여자가 문 앞을 턱 막아서서 우리 부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등 뒤 방안에선 여전히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벌써 덩치에 겁을 먹은 남편이 기죽은 소리로 사정을 했다.
“저어, 실례지만…. 누가 피아노를 저렇게 칩니까?”
그러자 돼지 같은 여자가 목소리도 퉁명하게 반말을 깔았다.
“내 딸이야, 왜?”
“이 밤중에 저렇게 피아노를 치면 우리 부부는?”
그 말에 뚱보 여자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봐. 쟤가 피아노 특기생이야. 저렇게 연습을 안 하면 어케 대학에 들어가?”
“그렇더라도 소리 좀 안 나게 치면…?”
“지랄하네. 소리 안 나는 피아노 있으면 사다줘. 그럼 숨도 안 쉬고 조용조용 칠게.”
뚱보 여자는 우리 눈앞에서 쾅 문을 닫았다. 남편은 숨만 몰아쉬었다. 덩치로 보나 성깔로 보나 도저히 그 여자한텐 상대가 돼 보이지 않았다. 우린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물론 그날 밤도 2세 만들기 작업은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피아노 소리는 우리 부부가 밤늦게 그 일만 치르려면 기다렸다는 듯이 벼락 치는 소리로 분위기를 깨버리는 것이었다. 이건 하루 이틀 밤이 아니었다. 천하가 알다시피 양 같이 성질 순한 나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끝내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 백장미 아파트 306호인데요. 도저히 위층 피아노 소리에 살 수가 없어요. 낮엔 괜찮아요. 우리 저 이 돌아오는 이 시간만이라도 제발 저 피아노 소리 안 들리게 좀 해줘요?”
내 말에 당직경찰이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 사모님? 그건 어디까지나 사생활이라 우린들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요?”
천하의 양순한 나도 약이 바짝 올라 아파트가 떠나가게 악을 썼다.
“이것 봐요! 경찰 아저씨! 시민이 피아노 소음에 작업을 못하는데 할 수가 없다뇨?”
“사모님 뭔 작업인데요?”
나는 또 악을 썼다.
“그건 내 사생활이에요! 경찰서장 바꾸세요! 서장 말이야!”
내 소리가 하도 기세등등했던지 끝내 경찰양반이 손을 들었다.
“알았습니다, 사모님. 그러니까 자정 너머엔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리게 해 달란 말이죠?”
“그래요! 저놈의 피아노 소리에 우리 부분 이사 온 지 열흘도 지났는데 한 번도 그 작업을 못했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알았냐구!”
그러자 경찰이 화가 난 나에게 싹싹 빌었다. 이튿날 경찰서에서 위층 여자에게 연락이 간 것 같았다. 겨우 살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편 생각을 하며 모쪼록 미장원에 가서 머리손질을 했다. 뿐만 아니었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서 야한 색깔의 잠옷도 새로 샀다. 조금 남은 향수도 남편을 생각해서 아낌없이 뿌렸다. 이제 남편만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나는 첫날밤 신부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벽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졌다. 남편이 올 시간이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목소리였다.
“여보? 미안해. 경리과 송 과장 있잖아. 하필이면 오늘밤 아기를 낳는데. 날더러 사정사정 하는데 내가 대신 당직을 해주기로 했어.”
“뭐에요?”
화가 난 내 목소리에 대고 남편이 죽는 소릴 냈다.
“여보, 사정이 그렇게 됐다니까. 당신이 이해해. 오늘밤엔 모쪼록 피아노 소리도 안 들릴 텐데… 당신 혼자 잘 자. 미안해. 그럼 내일 밤에 봐.”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텅 빈 침대에 철버덕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위층 피아노 소리를 기다렸다. 희한한 일이었다. 내 파출소 신고가 먹혀들었는지 자정이 지났는데도 위층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어쩌랴? 그놈의 2세는 남편도 없이 나 혼자 어떻게 만든담?
그 다음날 밤 자정 가까이 남편이 들어왔다. 나는 일부러 콧소리를 내며 남편을 침대 위로 끌어들였다.
“여보? 이젠 맘 놓고 해요. 저 위층 피아노 소리 이젠 안 들려요. 알았죠?”
남편은 새로 산 내 잠옷을 벗기며 말했다.
“진짜 당신 성깔은 경찰서장도 알아주네, 허허허. 안 그래?”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 판이었다. 웨에에에에엥! 한 순간 불벼락 치는 소리에 우리 부부는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위층에서 불도저가 돌아가는 듯한 진공청소기 소리가 작은 아파트를 덜덜 흔들었다. 기가 막힌 남편이 나를 보며 울부짖었다.
“여보? 어떡해, 저 소리? 오늘밤도 2세 만들긴 글렀네.”
나는 그대로 거실로 뛰어나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이것 보세요! 시민의 말을 개코로 들어요! 저놈의 소리 안 들리게 민원 넣었잖아요! 저 놈의 피아노소리 좀! 댁은 안 들려요?”
그 말에 당직 경찰관이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로 대답했다.
“잘 들립니다, 사모님. 근데 저 소린 피아노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피아노 소리가 그쳤으면 됐지, 진공소제기까지 당직경찰인 내가 책임져야 합니까?” 경찰은 전화를 끊었다. 나도 수화기를 내리며 생각했다. 그 말은 맞다. 백번 죽어도 옳은 말이다. 피아노소리가 그쳤으면 저 경찰이 할 일은 끝났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 2세는 뭔 수로 만들꼬?
약력
월간 ｢수필문학｣으로 수필 등단
계간｢문화마당｣, 월간「문학세계」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사)세계문인협회 자문위원
경남 시문우회 회장
한국여성문학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사무국장
문예창작 강사 . 수필심사위원
현)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시집:｢우루무치엔 별들이 산다｣외
수필집 :｢그는 늘 색안경을 쓰고 다닌다｣, ｢세상을 찍는 사진사｣
소설집 :「그 남자 그리고 나」외 다수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로 61번길 20(구의3동 뉴시티빌 401호
HP 010-4208-1613
이 메일 : leeja0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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