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쓰는 편지
-적요의 그늘에서
김원욱(시인)
지난 봄, 마라도에는 바람만 불었죠. 그 바람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고 또 다른 것들은 꺾기면서 세상의 이치에 닿았던 거죠.
삶과 죽음이란 게 어느 곳에서나 꼭 같은 거지만, 이 여린 적요의 그늘에도 슬픔과 한은 있다는 것이죠.
이 땅의 끝자락 마라도에는 성당과 교회, 그리고 ‘기원정사’라는 도량이 있습니다. 왜 붓다와 예수가 이 작은 곳에 공존하면서 함께하고 있는지, 참으로 우리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성당 옆에는 아주 작은 무덤이 있답니다. 처음에는 눈길초차 주지 않았었는데, 이미 마을은 온통 슬픔에 잠겨있었지요.
누구의 무덤인지, 노을빛 금잔화의 흔들림과 푸르게 빛을 쏟아내는 잔디의 생생함이 더욱 슬픔을 키웠었죠.
그 무덤의 주인이 강아지란 사실을 알고 나서 생각이 너무 깊어졌어요. 펜션 여사장의 울부짖음을 보면서 나의 상상은 적요의 그늘 속에 완벽하게 갇혀버렸던 거죠.
인간인 나의 주검도 저렇듯 성스럽게 돋보일 수 있을까. 저러이 큰 슬픔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아주 작은 무덤을 바라보며, 붓다의 자비와 하나님의 사랑은 외진 곳에서도 넘쳐흐른다는 걸, 그 큰 생명은 늘 푸르다는 걸 알게 되었죠.
왜 우리의 끝은 ‘죽음’일까요. 왜 그것은 우리를 짓누를까요. 우주의 법칙은 소멸과 탄생인데, 만겁말대(萬劫末代)의 진리는 하루살이의 삶도 의미있다는 걸, 다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해주지 않을까요.
근 이십년 전, 해인사 성철스님의 다비장에서 밤새 화염과 흰눈을 바라보던 감동을 잊을 수 없네요. 그때 까지 죽음이란 게 얼마만큼 큰 톤이란 걸 몰랐다니까요. 그 큰 은혜가 지금까지 ‘나’란 존재를 똑바로 서있게 했어요.
지금 마라도는 안개 속이예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배가 끊겼겠죠. 아무도 바라볼 수 없는 이 고절함. 작은 것들은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살아있음을 당당하게 증명하게 되는 거죠.
장마라네요. 나약한 미물들은 자양분을 듬뿍 품고 여름과 가을까지 싱싱하게 자라다가 혹한의 겨울을 맞겠죠. 그 시련을 견뎌내야 또다시 봄의 푸르름을 함께 하지 않을까 해요.
약한 것들에게도 생명은 큰 은혜였을 터. 나의 추한 육신은 무너지는 석양처럼 마라도, 그 적요의 그늘에서 아주 작고 작은 ‘나’ 자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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