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파놓은 웅덩이
또 다른 바람만 뒹굴고
오래 반죽한 기다림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그대를
풀어가는 갈증
때맞춰 술렁이는
오! 사랑
목덜미에 기억되는 바람의 입술
와삭와삭
바람을 깨물어 먹는 푸른 입
방금 뱉어낸 슬픔을 핥아가는
더 짙은 혓바닥
헝클어진 구름도 바람의 뿌리도
서쪽으로 가지런한 시간
천천히 잠기는 붉은 돛아래
내게로 전입해 온 바람을 안고
무겁게 떠오르는 저녁
벚꽃
봄이 홑겹으로 날리고 있어
얇게 볼을 스치며
어깨에 붙은 꽃잎을 털어내자
까르르 달아나는 딸아이 얼굴
너무 작아 눈에 넣고 싶었지
너무 에뻐 혀끝에 받아 보았어
참새 혓바닥 같은 새끼들을
가지끝에 슬어 놓고
난 몰라라 까불대는
노을
삼일 만에
바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트렁크에서 바지락들이
혀를 빼 물고 멀미를 할텐데
머리를 맞대고 잠든 아이들
삐뚤어진 안경너머
속눈썹이 가지런하다
과속방지턱을 타 넘듯
울컥 솟구치는 서러움
무엇을 더 가져오지 못해
저무는 노을처럼 안타까운가
버릴 수 없었던 밍밍한 것들이
추억으로 발효될 때까지
시간을 쓰다듬으며 온몸이 뜨겁도록
여름을 삭혀야 하리
그녀가 웃었다
-결혼 반대에 부딪히자 자살-
신문을 읽다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맑은 국화등이 내걸린 복도
작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그녀가 웃고 있다
이름, 사랑하다 죽다
그녀의 내일은 어디에도 없고
길을 잘못 든 나방 한 마리
남자의 어깨에 눈을 닦는다
실패만 출산하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어설프게 건진 죽음
번데기 같은 딱딱한 몸에서
억지로 빼낸 날개를 안고
소급받은 시간을 날아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지나간 길
볼에 찍힌 선명한 발자국
거울 속에서 그녀가 웃었다
흐른다는 건
흐른다는 건
어디에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
깊은 인연에 고여 물때 오른 바위
한구석 찢겨 송사리떼 놓칠까 두려워
흐른다는 건
잊기전에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
가슴에 띄워온 꽃잎을 안고
다슬기의 속살을 만지던 손길로
물뱀의 아랫배를 쓰다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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