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합천문협문학기행, 동리 목월 문학관에 가다
동리 `목월 문학관 가는 차안에서
합천문인협회가 2012 문학기행 가는 곳은 신라천년의 고도 경주 진현동에 있는 '동리 '목월 문학관'이었다. 주변에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와 석굴암이 인접해 있어서 함께 둘러보면,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機會)가 되어 금상첨화격(錦上添花格)의 좋은 문학기행지였다. 인원수에 맞춰 대절한 소형 버스가 여행사의 사정으로 대형 버스로 바뀌어 운행되었다. 윈도그라스에 <한국문인협회 합천지회>라는 표지(標紙)를 붙이고, 우리 13명 회원을 가볍게 태운 관광버스가 신이 나는 듯, 짙어가는 6월의 녹음(綠陰)사이 고속도로 위를 시원스럽게 달려갔다.
참석한 회원들을 일일이 거명(擧名)하며 개인일정을 접고, 원근에서 참석한 회원들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세한 일정소개에 이어 "사랑에 취하고 문학에 취하는" 흥겹고 유익한 문학기행을 당부한 손 국복 회장님의 인사말에 고무되었는지 회원들은 서로 정담을 나누며 차안은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출발한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버스가 첫 휴게소인 평사휴게소에서 멈췄다. 평사휴게소에는 근방에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영천, 다부동 격전지와 가까운 곳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라" <월튼 워커> 당시 미8군 사령관의 낙동강 사수를 위한 비장한 명령이었다. 그 후 1개월만에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어 수도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던 6.25전쟁 최후의 보루(堡壘)가 이곳 낙동강 방어전선이다.
그 6,25전쟁의 참상을 펼쳐 놓은 화보가 평사휴게소에 횡렬로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북한 침략군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한 죄 없는 수많은 민간인 시신들이 들판에 열지어 누워 있었다. 한국판 킬링필드(Killing Fields)를 방불케 한다.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종북주의자(從北主義者)들이 이것을 보면 뭐라고 말을 바꿔 변명할까, 6,25전쟁이 북침이라면 전쟁 발발 3일만에 북한군에게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1개월만에 이곳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천안함 폭침도 남한의 조작극이라고 우겨대는 자들이니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할까?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 분통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6,25전쟁으로 고귀한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에 대한 숭고한 뜻을 저버리고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지각없는 발언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눈부신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날은 마침 6,25전쟁 62주기를 맞는 현충일이라 오전 10시에 맞춰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다 숨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경건한 묵념을 차안에서 올렸다.
석굴암
우리가 탑승한 관광버스가 토함산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35분, 휴식시간을 제(除)하고 나면 합천에서 그곳까지 두 시간 남짓 달려간 것이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난 부드럽고 산뜻한 비포장 오름길을 일행과 함께 소요(逍遙)하며 15분쯤 걸어 석굴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함산은 돌산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산이다. 석굴암은 인도의 '차이티아'(chaitya) 석굴양식을 본뜬 것이라 해도 인도의 '아잔타'석굴이나 중국의 운강(雲崗), 운문(韻門) 석굴처럼 바위를 뚫어 만든 것이 아니라, 석재를 날라 와서 만든 '인공'의 석굴이란 점에서 독보적이다.
석굴암은 원래 석불사(石佛寺)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인 불국사에 딸린 암자이다. 석불사의 석굴, 그것은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로 만나 지고(至高) 지미(至美)의 걸작(傑作)을 이뤄낸 위대한 석불존상(石佛尊像)이다. 저 존엄하고 자상(慈相)한 석불(石佛) 앞에 서면, 예술에 대한 혜안(慧眼)과 절대자에 대한 신앙심이 있는 자는 누구나 감동과 살 끝이 저려오는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신라시대에 어떤 장인(匠人)이 있어 저렇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과 저 잔잔한 미소를 형상으로 빚어낼 수 있었을까,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 관광을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들이 인도의 '타자마할'이나 로마의 '꼴로쎄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기비하적(自己卑下的)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려 깊지 않은 말이다.
인도의 '타자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으로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여기에 동원된 잡부는 수십만 내지 수백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봐야 한다. 로마의 꼴로쎄움은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세워졌는데, 로마시대 최대의 원형 극장으로 8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 지하에는 전쟁에서 포획한 포로들을 감금하고, 검투를 시켜 황제와 신하들이 즐겼던 검투장이 설치되어 있다. 검투에서 쓰러진 포로의 시신은 동물우리의 문을 열어 사자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영화 벤허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Pyfkmids)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들의 무덤이다. 서양의 이러한 고대 ~중세 건축물들은 장비가 없던 그 시절에 건축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도르래 같은 역학 장비가 일부 있었겠지만, 자재들을 옮기는 데는 거의 수레나 인력이 동원되어 옮겼으니 얼마나 많은 전쟁포로와 노예들이 피를 흘려 죽어가며 쌓아 올린 결과물들인가!
석굴암의 본존불은 억조창생 사생(四生) 자부(慈父)의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저 잔잔한 미소와 어진 자상(慈相)을 감성으로 느낄 수 있지만, 서양식 그 건물들에서는 웅장함과 아름다움 이면(裏面)에 절대왕권의 권위와 위세, 한 사람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의 비인도적(非人道的), 비이성적(非理性的)인 이미지가 서려 있음을 느끼게 할 뿐이다.
석굴암에서 돌아오는 길목 중간에 1991년 2월 최세화(崔世和)가 쓰고 석굴암연구회가 세운 석비문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세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석굴암의 창건 배경은 일반적으로 전세(前世)와 현세(現世)의 두 부모를 위한 김대성의 효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진골 출신으로 추정되는 김대성이 그 부모를 위해 만들었던 절을 그가 죽은 후 국가에서 완성시켰다는 측면에서 석굴암의 창건은 국가적인 불사(佛事)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들어가며 느끼는 본존불을 향한 경외심(敬畏心)과 본존불로부터 느껴지는 무한한 자비심 같은 교감을 느끼도록 교묘하게 축조한 것이다. 이 건축 기법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뛰어난 기술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들어가 본존불을 가까이서 친견할 수 있었던 것을, 언제부터인가 전실 입구를 두터운 유리로 장막을 치고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주 테마기행지 동리`목월 문학관
석굴암 탐방을 마치고 합천문협문학기행단이 주 테마기행지인 동리 `목월 문학관에 도착한 시각은 약속된 12시를 몇 분 지난 후였다. 기다리고 있던 장윤익 관장님과 직원들로부터 영접을 받고 곧 강당으로 입장하여 장관장님의 환영사와 아울러 김동리, 박목월 선생 두 분의 프로필과 문학세계에 관한 간단한 강의를 경청하고, 연이어 동일한 내용의 영상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김동리 선생과 박목월 선생은 경주 출신으로 한국문단의 양대 산맥을 이룬 거봉들로서, 김동리 선생은 혼미한 격변기에 우리 순수문학을 굳건히 지켜왔고, 인생의 궁극(窮極)을 탐구하는 문학정신을 주창하여 해방 후 새로운 휴머니즘문학의 근간을 이루어 1982년 노벨문학상 5위 이내에 선정된 세계적인 작가이다.
박목월 선생은 토착정서와 민요의 가락을 시와 음악으로 승화하여, 어린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들로부터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시인이다.
이 두 분 문인들을 기리기 위해서 경주시와 (사)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2006년 3월24일에 문학관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2001년 동리ㆍ목월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그동안 청록집 발간 60주년 기념 문학심포지움, 동리와 목월의 시와 소설을 찾는 강연과 음악 축제, 동리ㆍ목월문예창작대학 설립, 한국문인협회 전국 순회강연 주관, 이어령 교수 초청 강연회, 박목월 선생 서거 30주기 시 낭송의 밤 등 많은 행사를 시행하여 경주시민들과 전국 문인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경주시의 배려로 2007년 6월1일부터 동리ㆍ목월문학관 위탁관리 업무를 맡게 된 동리 `목월 기념사업회는 경주시와 힘을 합하여 동리ㆍ목월문학관이 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문학관이 되고 문예창작 교육의 장이 되며, 나아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예로 금년 9월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분을 포함한 세계적인 문학인들과 국내 저명 문인들을 초청해 동리 `목월 국제문학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강의가 끝난 후 관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가운데 9월에 개최하는 국제문학세미나에 합천문협의 참석 가능성을 타진해(김경애 시인), 장관장님으로부터 합천문인협회회원들을 초청한다는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아! 불국사여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걸음을 멈춰라 고요한 달빛아래 금오산 기슭에서 ~,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구성진 가락에 바이브레이션이 독특한 가수 현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랫가락 속에서 우리는 신라 천년의 고요한 밤의 적막과 은은한 종소리에 젖어들곤 한다. 신라인의 그 정서와 문화가 서려있는 천년의 고도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뿐만 아니라, 경주지역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됐다.
동리 `목월문학관을 뒤로 하고 합천문협문학기행단이 세 번째 탐방한 곳은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였다. '문화유산'이란 태초의 인류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초월한 삶의 흔적들이다.
경주는 영원한 불국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들의 숱한 삶의 흔적들을 돌에다 새겨놓았다. 경주는 특히 돌로 새겨진 문화유적유물을 많이 남겼다는 점에서 고대`중세기 세계문화의 중심 로마와 유사하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없는 석불과 석탑, 석등(石燈), 석축(石築)의 기단(基壇)과 계단(階段), 석축의 첨성대와 포석정의 석구(石溝), 그 외에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널려있는 남산의 돌부처들과 마애조상(磨崖彫像) ```, 이 많은 신라문화의 흔적, 석조유물들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경주에 1주일을 체류해도 모자랄 것이다.
불국사와 석불사(석굴암)는 그러한 석조(石造)의 신라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불국사는 신라 장인들의 혼과 숨결이 응결되어있는 많은 석조물들로 구축되어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신라인의 장인정신을 우리는 불국사의 석단과 석교, 그리고 석탑파(石塔婆)에서 본다. 부처의 세계와 사바세계를 위아래로 양분하기 위해서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돌들을 희한하게 짜맞춰 쌓은 석단의 견고한 자연미, 불국세계의 높이를 헤아리는 그 석단의 견고한 통일성과 질서미를 굵고 단단한 돌기둥과 돌띠를 둘러놓은 것에서도 그 기량을 볼 수 있다.
석단 위의 불국세계와 아래의 사바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청운교와 백운교의 돌계단인데, 이석축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33천을 상징하는 33개의 돌계단으로 쌓여 있다.
이처럼 불국사는 불국을 지향했던 신라인의 불심을 담아내고, 여기에는 그들의 세 가지 염원이 나타나고 있다.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 세계를 구성하는 이른바 삼신불(三身佛)을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에 모셔 전체를 구성하는 가람(伽藍)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삼신불은 응신불(應身佛)·법신불(法身佛)·보신불(報身佛)의 세 부처를 이르는데, 응신불은 석가여래를 가리키며, 법신불은 대일여래불(大日如來佛) 즉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이르는 말이고, 보신불은 노사나불(盧舍那佛)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통일신라 석탑 중에는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를 대칭적으로 건립한 경우가 많다. 감은사(感恩寺)와 갈항사(葛項寺), 경주 천군리(千軍里 )의 삼층석탑, 경주 월성 장항리의 5층 석탑 등이 그 예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도 2기의 석탑이 쌍을 이루고 있으나, 석가탑(국보 제 50호)과 다보탑(국보 제20호)은 같은 모양의 석탑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두 형태의 석탑이 비대칭적으로 병렬하고 있다.
서쪽의 석가탑은 백제의 장인 아사달이 건축한 것으로 비대칭이지만, 신라의 다보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쪽의 석가탑이 방형평면(方形平面)의 기본 틀에 돌덩어리를 쌓아 정형을 이루는 일반형을 대표한다면, 동쪽의 다보탑은 그러한 형식에서 벗어난 특수형 석탑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주의 쑥부쟁이 식당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 불국사를 둘러보고 오후 2시를 넘겨 우리 일행은 경주시 하동 보불로에 있는 한적한 쑥부쟁이 식당에 들렸다. 아이들 같으면 배고프다고 칭얼댈 시간이다. "채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현수막이 식당 입구에 걸려 있었다.
식물 전체를 건조시켜 해열제나 이뇨제로 쓰이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쑥부쟁이' 이름을 따붙인 이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당에 쑥부쟁이 화분들이 곱게 열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 사이에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방이 격자(格子)처럼 겹겹이 붙어있고 그 속에는 벌처럼 손님들이 방마다 마주 보고 앉아 정담을 나누며 채식을 즐기고 있었다. 시장끼를 느끼면 밥맛은 꿀맛이다. 술맛도 덩달아 달고, 부어주는 사람의 손길도 정겹다. 식당주인 이름도 김경미라서 좋았다. 이 식당의 스페샬은 연꽃잎에 익힌 찰밥에 반찬은 쑥과 호박 그리고 비트를 갈아 반죽에 넣어 만든 화전으로서 특색 있는 음식이다.
식탁 위에 붙여 놓은 '쑥부쟁이' 전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 전설처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어서, 세상은 한 번 쯤은 살아 볼 만한 곳이 아닌가! 전설 속의 가련하고 아름다운 소녀의 혼, 님을 그리다가 죽은 아! 아름다운 쑥부쟁이여! 저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나 함께 영원하라,
경주 국립박물관
일행이 쑥부쟁이 식당에서 나와서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한 경주국립박물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반, 국립박물관이라 회원 전원이 무료통과하면서 사무국장 정 유미 시인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경주국립박물관은 일명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이 먼저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여기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종소리는 그 옛날 에밀레의 그 슬픈 은은한 운율이 아닌, 현대문명이 만들어 놓은 무정(無情)한 녹음(錄音)의 소리다.
경주국립박물관은 일제시대 이민족(異民族)의 지배 밑에서 민족의 고유문화를 깎아내리고 업신여기던 1913년 처음으로 경주고적보존회가 결성되고 1915년 옛 객사 건물을 이용하여 신라 유물을 수집 전시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 옥외전시관 특별 전시관, 어린이 박물관 등 많은 전시관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고고관은 경주 일원에서 수집한 선사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 유물을 전시한 선사`원삼국실과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신라고분에서 출토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1층에는 미술관 신축당시 출토된 유물과 신라 왕경복원모형이 전시된 역사자료실과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석조 불교조각과 능묘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감은사 동탑 사리장엄구를 비롯하여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각종 금속공에품이 전시된 금속공예실과 황룡사터에 출토된 각종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안압지관에서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3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점을 선별하여 전시해 놓았다. 안압지는 원래 동궁이 있었던 놀이터로 여기서 출토된 유물은 다른 출토유물과는 달리 통일신라시대의 왕실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실생활용품들이다. 야외정원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범종인 일명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고선사터 삼층석탑 (국보 제38호)을 비롯하여 경주지역의 절터 궁궐터 등에서 옮겨온 대부분 불교관계 조각물인 불상과 석탑, 석등 등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이처럼 많은 유물들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며 섭렵하는 데는, 적어도 4~5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주어진 한 시간 내에는 온전한 관람이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나는 전시실 벽에 붙인 해설문을 읽으며 1년 전에 와서 봤던 것들은 대충 간과(看過)하고 새로이 전시한 것들에만 촬영이 가능한 것만, 폰의 포커스를 맞추며 샤타를 눌러댔다. 이날 특별 전시실에서는 당나라의 미술품들을 특별히 전시하고 있어서, 삼국시대 정치 외교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였던 나당(羅唐)의 문화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감포로 가는 길
경주에서 합천문협문학기행단이 오전에 탐방한 토함산 북동쪽 산자락을 타고 황룡계곡을 굽이굽이 돌아 추령고개를 넘어서 대종천과 수평으로 뻗은 넓은 들판길을 지나 동해 바다 용당포 대왕암을 향해 달려갔다. 추령고개로 넘어가는 길은 도로 확장과 턴널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들판길 옆 한곳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의 건의를 받고, 백제 장인 아비지를 불러들여 645년(선덕여왕 15)에 완공했다는 9층목탑이 있었던 황룡사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황룡사에 있던 대종(大鐘)을 1235년 몽골군이 세 차례 고려를 침공하면서 황룡사와 9층목탐을 불지르고 거기에 있던 대종을 약탈했는데, 그 대종이 에밀레 종의 4배에 이르는 100톤의 무게였기 때문에 육로 운송이 곤란하여 뱃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동해바다를 이용해 중국대륙으로 옮기려고 봉기리 바닷가에 거의 이르렀을 때 대종을 그만 물속에 빠트렸다고 한다. 대종은 물살에 실려 동해바다 어디엔가 가라앉고 이후 이 내를 대종천(大鐘川)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파도가 거센 날이면 바다 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봉기리에서 대왕암을 향해 한참을 달리다 보면 차창 왼쪽 낮은 산자락끝 용당리 마을 한쪽 옛 감은사지(感恩寺址)에 3층 석탑 한 쌍이 마주 보며 유유히 서있음을 본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큰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이 감은사지(感恩寺址)는 바닷물이 이 절에까지 밀려와 아버지인 용이 자유롭게 절을 드나들도록 사찰 밑에 용이 출입하던 입구와 출구를 일부러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죽어서도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은 후에 문무대왕으로 불리고 수중릉은 대왕암이라 불린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왜구가 대마도에 진을 치고 특히 신라지역 연안을 자주 침투해 노략질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신라조정에서는 여러 방책을 세웠고, 아마 그 중에 하나가 석굴암 건립이 아니었을까, 토함산 기슭에 저 멀리 동해까지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은 석굴암, 김대성이 부모를 위한 효심으로 세웠지만, 백성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의 애환뿐만 아리라 국난(國難)도 부처님의 가피(加被)에 의해 지켜주기를 바라는 신앙심이 석굴암 본존불상을 조성하지 않았을까, 우연인지는 몰라도 석굴암과 감은사지와 그리고 감포의 문무대왕수중릉이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향해 옆으로 일직선으로 막을 치고 있어서 이 선이 왜구의 침투를 막으려했던 신앙적 심리적 방어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감포의 바닷가와 방우횟집
합천문인협회문학기행단이 감포 바닷가 방파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반, 차문이 열리자 밖으로 쏟아져 나온 회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닷가 방파제를 향해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문무대왕릉은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육지로부터 200m 떨어진 해안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소나무 숲이 가려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 이곳 동해바다 연안에는 회색빛 솜털 구름이 하늘을 온통 가리어 아름다운 석양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도 회원들은 모두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멀리 뭍에서 온 이들 이방인들의 눈에 한없이 넓게 트인 청정한 감포 바다와 아물거리는 수평선, 그 사이에 너울대는 한가한 백구들의 나레짓이 그저 좋을 뿐이다. 사람이 만든 격조 높은 예술품이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심미적(審美的)인 세계로 끌어들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금방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마력(魔力)을 가졌는지 모른다. 회원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동심(童心)이 되어 방파제에 붙여 놓은 테트라포드(tetrapod) 위를 겁도 없이 구둣발로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멀리 바다 위를 한 바퀴 돌아온 작은 고기잡이 배의 사공이 자기 아이들로 생각되는 어린 두 남매를 내리고, 부두에 배를 정박시키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혼자서 망망 바다 위에서 한잔 거나하게 마신 취기다. 한 순간 내 눈에는 자연과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이 모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게로 다가온다.
오후 6시 반이 되어 근처 감포 '방우횟집'에 들렸다. 오랜만에 싱싱한 자연산 회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집 주인이 고기잡는 사공이라서 직접 잡은 물고기들을 요리해서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다. 도심 여느 횟집에서도 이처럼 쫄깃쫄깃하고 감치는 회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 따라주는 술맛도 덩달아 정을 더 느끼게 한다.
귀로의 버스 안에서
저녁 식사 후 방우횟집을 나온 합천문협문학기행단이 귀로의 길을 서둘러 감포에서 출발한 시각은 오후 7시 45분, 밖에는 야음이 깔리고, 마을마다의 가로등들은 주마등처럼 차창 밖을 한가롭게 지나가지만, 차 안은 예년처럼 노랫가락으로 흥겨웠다. 이날 아침 여정(旅程)이 시작되면서 준비해온 먹거리들을 회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며 정 유미 국장과 함께 종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강 배훈 회원이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잘 해주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원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늘 함께 참여하는 이 동배 시조시인이 불러준 '홍시'가 모두 잊고 있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모정(母情)이 자식에게 주는 것이 어찌 홍시뿐이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짠한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그렇게 차 안에서 회원들은 서로 진한 우정을 나누며, 가장 유익하고 보람된 하루 일정을 마감했다.
그날 우리 회원들은 경주, 감포 문학기행을 통해서 신라 천년의 찬란했던 문화에 취하고 동리` 목월 문학관에서는 문학에 심취하며, 청정한 동해 바닷가의 회색빛 정취에 마음껏 젖어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의 장이 될 것이다. 이날의 여정(旅情)이 합천문협의 새로운 단합과 발전에 청량제가 되고, 이번 문학기행을 위해 기획부터 장도의 문학기행을 마칠 때까지 애쓰신 회장님과 임원 및 회원 여러분의 가정에도 일상의 신선한 에너지가 되어 건강과 행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봄이 오는 소리
<생명에의 경외심(敬畏心>
작년 신묘년 겨울은 여느 해보다 추웠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한파가 연일 몰아쳤고, 눈도 많이 내렸다. 이전에는 겨울이라 해도 3일 춥고 4일 따뜻했던 삼한 사온대(帶)여서 겨울나기가 대수롭지 않았는데, 근래에 와서는 5한 3온대로 더 길고 더 추운 날씨로 바뀌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백두대간 끝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가야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가야천과 매화산 골짜기의 이천천이 만나는 모듬내 강 언덕에 인적이 드물고 주위가 조용한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면 산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인가로 내려와 곧잘 두리번거리는 곳이다. 맷돼지도 새끼와 함께 열을 지어 다니며 우리집 남새밭을 그 두터운 입술로 헤집고 지나갈 때도 많다. 이처럼 산짐승들이 우리집 근처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집 뒤 강 건너 저편 산에 사람들이 잘 오르지 않는 깊은 계곡이 있고, 그곳에 사는 산짐승들이 겨울을 나면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발정기(發情期) 고라니 암컷이 수컷을 부르는 구애(求愛)의 괴성(怪聲)도 이따끔 들린다. 1989년 입춘(立春)이 지나고 가야산 끝자락 이곳 골짜기 안에 <봄이 오는 소리>가 여기 저기 들려오는 이맘때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산 계곡 눈 덮인 강가에 버들강아지가 은빛 새하얀 순을 내밀고, 꽁꽁 얼어붙었던 계천이 녹으면서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계곡에 동면(冬眠)을 깨우며 봄을 재촉하고 있는 어느 날, 어둠이 깔리는 늦은 시각에 낯선 불청객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고라니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마당 안까지 겁도 없이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저녁 식사 후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낯선 침입자를 본 나는 엉겁결에 이놈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바깥 출입구 쪽을 막으며 안쪽으로 무작정 쫓았다. 갈 데가 막혀 당황한 이놈은 나를 피해 집안 출입문 옆 유리창의 불빛을 보고 그 방향으로 쫓아 들어가면서 유리창을 박살내고, 안방까지 뛰어들었다. 뒤따라 들어간 나와 방안에서 쫓고 쫓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한참동안 벌어진 후 한순간 그 놈을 잽싸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이놈의 네 발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끝까지 발악하다가 힘이 다 소진된 이놈은 저항을 포기하고 나의 처분을 바라보며 비명하고 있었다. 그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그 때까지 나의 행위가 완전히 이성(理性)을 잃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말 못하는 이 가련한 짐승에게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되면서 후회가 됐다.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람도 가엽게 생각되었던지 살려 보내자고 했다. 묶었던 줄을 얼른 풀어 이놈을 살려 보냈다. 그녀석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기고 간 것은 현관과 방안에 깨진 유리 조각들의 난장판과 그것에 찔린 내손의 상처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나는 짐승에게도 목숨이 다 하는 순간, 절망에 절규(絶叫)하는 비애(悲哀)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어찌 함부로 포획하고 살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는 짐승을 헤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고라니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 그렇게 곤혹을 치룬 그해 여름, 어머니가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 장례식 날, 내가 이집에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고향마을에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이웃집 어른 한 분이 상여 뒤에서 장지까지 멀리 따라 오시면서 내게 하신 말씀이 "이 선생 산 짐승이 집안에 들어오면 그 집안에 액(厄)이 생겨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데, 모친께서 그 액을 안고 가신 것이라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평생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편안하게 노후를 잘 지내시도록 못 다한 효도를 해야겠다고 늦게 철이 드는 때쯤, 그분의 말씀대로, 어머니는 그 고라니에게 저지른 내 죄업을 대신 짊어지고 세상을 떠나신지 모른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는 태생적으로 슬픈 존재들이다.
사람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은 태어나면서 인연을 맺었던 사랑하는 가족과 정을 나누었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도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별이 싫고 영원한 삶을 지속하기를 원하여, 모든 생명체들이 태어나기만 하고 죽지 않는다면, 먹을 것과 누릴 것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 때문에 아비규환으로 세상은 질서와 평화가 깨지고, 살벌해져 생명에의 경외심도 말살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봄이 오는 문턱에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꽃들이 그렇게 순결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게 되는 것은 지리멸렬하게 그 생명을 오래 지탱하는 것보다 새 봄에 잠시 화사하게 피었다가 어느 순간 지고 마는 그 단명(短命)을 사람들이 아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 뒤 강건너 저편 깊은 산속에도 인간 세상처럼 산속 중생(衆生)들의 생노병사의 생태(生態)가 있다.
그곳에서 봄이 오고 만물이 소생하면, 짝 잃은 고라니의 애절한 구애(求愛)의 괴성(怪聲)이 또 들려올 것이다. 새 생명을 잉태하려는 동물의 본능적 생태지만, 한 순간 그 즘생과 생사결판을 벌였던 내 마음에 새삼 연민의 정과 생명에의 경외심을 느낀다.
내고향 월광사(月光寺)를 말한다
이 성 동
백두대간의 최남단 가야산 기슭 해인사에서 약 10km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1450여년 전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이 머물었던 ‘월광사’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가야산에서 발원한 가야천과 매화산 계곡에서 발원한 이천천이 만나는 모듬내가 자리한 곳이다. 그 절과 가야천을 사이에 두고 100m쯤 떨어진 곳에 푸른 소나무와 함께 기와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이 바로 필자가 살고 있는 집이다.
이 월광사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이 562년 신라에 의해 나라가 패망하고 이곳에 은신하면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스님이 되어 여생을 마친 절이다.
월광사는 모듬내와 인접하고 있어서 그 맑은 물속에 비친 고요한 달빛을 벗하며 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한적한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최치원이 지었다는‘석리정전’(釋利貞傳)에 나오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에는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 ‘이비가(夷毘訶)’와 가야산 상아덤에서 만나 두 아들을 낳아 나라를 세우니 형 ‘뇌질주일’이 오늘날의 고령에 세운 나라가 대가야이고, 동생 ‘뇌질청예’가 지금의 김해에 세운 나라가 금관가야라고 한다.
오랜 세월 역사의 베일 속에 묻혀있던 그 대가야가 1977년 경북대 고분 발굴팀에 의해서 고령 지산동 44호분이 처음 발굴되면서 지하에 묻혀있던 대가야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44호분에 이어 현재까지 지산동에서 발굴이 이루어진 무덤은 모두 10여 기, 이 무덤들에서 쏟아진 각종의 유물,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뛰어난 가야의 철 제련기술을 보여주는 철제갑옷을 비롯해 각종의 화려한 금장식제품, 그것은 분명 대가야의 높은 문화수준과 강성한 힘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대가야가 왕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풍부한 철 생산지와 뛰어난 제철기술에 있었다. 당시 철 생산지는 합천군 야로면 금평리와 야로리2구의 야산으로 밝혀졌다.
대가야가 신라에 의해 패망하고 고령이 신라의 군현으로 재편되면서 야로는 적화현(赤火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불뫼 속의 발갛게 타고 있는 불꽃을 상징해서 “적화(赤火)”라는 고을명을 붙였으리라 생각한다. ‘야로(冶爐)’라는 말 역시 불뫼를 의미하는 고을명으로 고려말이나 조선조 초에 합천의 속현으로 되면서 바뀌어진 이름이라고 ‘고려사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야로현에서는 매년 세공으로 정철 9500근을 나라에 바칠 정도로 풍부한 철생산지였다. 지금도 야로리 2구 뒷산에는 제철 유적지(불뫼)가 있고 여기서 제철과정에서 나온 슬래그(쇄똥)와 노벽편(불뫼의 벽에서 파괴된 파편)이 발견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철을 기반으로 성장한 고령의 가라국이 대가야국으로 성장하면서 가야제국의 맹주가 된 역사적 배경이 바로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남정(南征)이었다.
AD 400년 한반도 남부지역에 창궐하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내려온 고구려 광개토왕이 지휘하는 보기(보병과 기마병) 5만군이 낙동강 하류지역을 정벌하여 가야의 정치세력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는데, 이 때 가야제국의 맹주국이었던 김해의 금관가야가 크게 타격을 받고 일본으로 민족대이동을 한 후 고령의 가라국이 금관가야를 대신하여 가야제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 가라국은 대가야를 자칭하게 되었으며 시조(始祖)를 신성시함으로써 대가야국의 위상(位相)을 높이고자 가야산신강생설(伽倻山神降生說) 혹은 정견모주설(正見母主說)이라는 건국설화를 만들어 세력을 넓혀 나가니 가야연맹체의 맹주국(盟主國)으로서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이때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은 각자 자국의 영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 첨예한 대립 속에 패권을 다투었으며 이러한 삼국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대가야는 5세기 초 거창, 함양 등 경남 서부 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이를 발판으로 백두대간을 넘어 호남 동부 방향의 진안, 장수, 임실, 남원 일대와 섬진강 하부의 하동과 구례, 순천 등에 세력을 뻗혀 일본과 중국을 통할 수 있는 해외 교역로까지 확보 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이 확대 되었다.
-삼국사기, 522년-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살펴보면,
5세기 중반부터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고전하던 신라와 백제가 점차 정국의 안정을 찾고 체제를 정비한 후에 가야지역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본격화 한 것이다. 백제 무령왕은 고구려에게 아산만 이북 지역을 빼앗겨 축소된 영역확장에 주력하였다. 그 진출 방향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가야지역이었다. 그 결과 백제는 512년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 등 네 지역의 가야영토를 차지하였고, 513년에는 섬진강 상류의 기문(남원)과 다사(하동)를 자기 영역으로 편입하였다. 대가야는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라 왕녀를 비(妃)로 맞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다.(522년)
월광태자, 그는 바로 대가야와 신라 두 나라의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났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대가야의 왕과 어머니 신라왕가의 딸 사이에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대가야와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은 가야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의 확보와 명분 쌓기에 있었다.
그래서 신라 왕녀를 따라온 여종들이 대가야복장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라복장으로 옷을 바꾸어 입은 것에 대해 대가야가 항의하자 신라는 이를 구실로 대가야의 북쪽 경계의 5성을 함락시켜 버렸다. 이리하여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동맹관계는 7년 뒤인 529년에 파기되고 말았다.
529년 이후 대가야는 점차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대가야를 멸망으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은 554년 백제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파견하였다가 신라에게 대패한 사건이다. 551년 백제 성왕이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때, 대가야는 신라와 함께 원군을 파견하였다. 이 삼국 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어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군을,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내킨 김에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하류의 6군도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백제 성왕은 554년에 신라를 응징하기 위한 정벌군을 일으키면서 대가야에 대해 원군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따라 대가야는 군대를 동원하여 백제를 지원하였다. 백제·가야군은 관산성(지금의 충주)에서 신라군과 대전을 벌였지만 대패하여 성왕은 잡혀 죽고 좌평 4명을 비롯하여 3만에 가까운 사졸이 전사하였으며 대가야군의 피해도 19,000여명으로 피해가 너무 컸다.
이 피해는 대가야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 대가야국의 국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백제와 대가야의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였음으로 신라가 대가야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다.
562년 신라 진영 이사부의 휘하에 있던 화랑 ‘사담’은 대가야를 단숨에 점령하고 대가야를 패망시켰다. 이로써 대가야는 개국한지 520년 만에 멸망을 한 것이다.
무력으로 대가야를 초토화시킨 신라는 이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월광태자를 이 지역의 임시 왕으로 내세운다. 월광태자가 도설지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승려가 된다. 대가야를 완전히 장악한 신라가 그를 내쫒은 것이다. 신라에서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월광태자,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이곳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였다. 이곳에서 자기 이름을 딴 월광사를 짓고 속세와 절연한 것이다. 속세와 절연한 승려의 몸이 되었지만, 신라의 어머니와 그리고 가정이 있었더라면 어찌 그의 처자식을 쉽사리 망각할 수 있었을까? 대가야국에서 지존(至尊)의 몸으로 태어나 궁녀들의 온갖 시중을 받고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던 그가 한순간에 나라를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에 와서 월광사를 짓고 고독한 수행생활을 하면서도 밤마다 속세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잠못이루다가 월광사 앞 모듬내에 비친 달빛을 벗하며 외로움을 달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월광(月光)인지 모른다.
아무도 그를 환대하지 않는 고요한 산골에 묻혀 말없는 청산과 창공의 달과 모듬내 맑은 물을 벗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갔을 것이다.
필자는 월광사와 이웃하고 살고 있어서 40여 년 전에 보광스님이 새로 지은 월광사에 태자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자주 월광사를 찾는다.
불사가 없을 때는 주위가 너무 조용하여 명상하기가 참으로 좋은 사찰이다.
태자는 가고 없어도 태자의 넋은 여기에 머물고 있는가?
요사채(寮舍寨)에 혼자 앉아 명상에 들 때면, 때로는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따르륵 따르륵 딱따르르륵 목탁소리, 관세음보살 명호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태자를 연민하는 나의 예민한 감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것인가?
태자가 머물던 월광사 앞에는 오늘도 그 때 흐르던 가야천과 이천천이 이 곳 월광사를 감돌아 모듬내에 합류하고서는 물위에 한 점 월광사의 影像(영상)을 잔잔하게 띄우고 다시 남쪽으로 유유히 흘러 안림천을 지나 대가야의 옛터 고령의 회천으로 간다. 대가야의 시조를 낳은 가야산에서 발원(發源)한 시냇물이 고령군 개진면 회천에 이르기까지 옛 대가야의 도읍지를 한 바퀴 선회하고 대가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듯이 그렇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아! 월광사여! 웅장했던 찬란한 대가야의 역사를 그 뒤안길에 숨겨놓고 어찌 아무 말이 없는 것인가?
|
 |
|
회원작품 게시판
추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