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문학29호_수필(권길홍)
어른이 사라진 사회
권 길 홍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 중에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갈등 때문에 일어나는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할 만큼 자주 일어난다. 또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 가까이 살면서도 윗층의 소음에 조금의 이해나 배려가 없는 험악한 사이가 되어 일어나는 층간소음문제나, 자기차를 앞질렀거나 운전에 방해를 줬다고 참지 않으려 하여 큰 사고로 벌어지는 보복운전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폭력이라는 이런 문제들을 각각의 그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 부분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행위 이전의 그런 일을 일으킨 사람들의 가정과 그 가정에서 보여주는 부부간의 대화나 마음씀씀이 등, 그들 부모들이 말하고 행동하면서 일상생활을 통해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가정교육을 먼저 점검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요즘의 가족구조 중 핵가족이라는 가족구조는 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기에는 참 편리한 구조다. 부부 둘 다 직장을 따라 이사 가고, 자녀들의 학교교육을 위해 옮겨 다녀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참 좋은 제도지만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을 시키기에는 너무 단순한 구조에 뭔가가 부족하다. 가정도 과거와 달리 부부와 자식들만의 핵가족으로 변했지만 무언의 교육을 시키는 어른이라는 존재도 사라져간다.
가정교육이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보면 가족내의 관계를 통해서 공동체의 생활을 체험하고 어린 자식들이 자라서 남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화를 배우는 거라고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여기에 덧붙여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같은 덕목을 몸으로 체득하는 건데 핵가족은 이런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다 컴퓨터와 인터넷에서 단편적으로 검색하여 얻은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으로 우쭐거리며, 바쁜 부모 탓에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않고 자라난 일부의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함부로 무시하는 어리석은 짓을 태연하게 저지른다. 일례로 흔해빠진 정말 쓰잘 데 없이 넘쳐나는 댓글에서 보이는 그 저속하고 야비한 말 함부로 내뱉는 거 어디서 배웠고 누가 가르쳤나?
밥상머리교육이란 말이 있듯이 부모님들의 그 말 없는 수고에, 희생과 사랑을 통해 어른들에게 순종하는 이유와 삶의 자세를 배우거나, 가장 가까운 가족인 부모라는 어른을 섬기고, 가족 안에서 자신에게 힘든 일이 주어지고 형제 간에 부딪쳐도 참고 견뎌야 하는 걸 배우고, 가족에게 절제하고 관용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걸 가르치는 곳이 가정이다. 서로에게 이런 점을 깨닫게 하는 곳이 가정을 제외하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정말 이런 귀한 이념인 희생이나 순종과 절제니 관용과 같은 걸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곳은 가정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너 명의 핵가족을 통해서는 아무래도 과거의 3대가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과 형제가 대여섯 명이나 되는 가정보다는 배우는 내용이나 질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부모 모두가 직장을 다니는 사회라 부모를 통한 배움도 어렵다. 과거의 우리 사회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마을이나 동네에서 마을의 어른들이나 윗분들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섬기게 하므로 은연중에 자녀들을 교육시켰던 암묵적인 공동체도 있었지만, 요즘은 변두리 시골마을 외에는 거의 없어졌다.
새로운 시대사조로 남녀평등인지, 양성평등의 사상 때문에 집안에서조차 부부가 다 함께 어른이라는 사고를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주입함으로써, 권위를 가진 어른을 사라지게 만들거나 자식을 가르쳐야 하는 어른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게 만들어버렸다. 권위도 없어지고 책임마저 줄어든 어른으로는 교육을 시키기에는 권위에 있어서나 효과면에서도 떨어지게 될 게 분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권위를 가진 어른의 존재만으로도 자식에게 뭔가를 깊이 각인시키는 교육이 되어 자식을 이끌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경제적 활동을 한다고 부부가 함께 직장으로 출근하여 집을 비운 후 퇴근하는 저녁에야 부부 두 사람이 함께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맞벌이는 시간상으로도 쫓기고 자식들을 가르치기에는 마음이나 시간에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는 가족이 된다.
이런 말하면 남자가 쓰는 글이니까 남자의 입장에서만 글을 쓴다고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남자가 쓴 글이니까 남자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한 집안에서 누군가가 어른이 되어야 하고 그 어른의 말이 먹혀들지 않으면 누가 가장 손해를 보고 어려워질 건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자니 여자니 하는 구분을 떠나서!
그런 어른이 없으면 가족 사이에 평등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가족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된 가정이 왜 그리도 자주 부부끼리 싸우고 미워하면서 행복하지 못하느냐고! 또 이혼과 같은 가족해체는 왜 그리 자주 일어나며, 사회적 문제인 청소년 자살문제나 학교폭력은 왜 그리도 자주 생기는지 또 사회 전반적으로 층간소음이니 보복운전처럼 험악해지는 이유를 알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다고 그 게 다 어른의 부재 탓이라거나 가정 탓이라는 건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돌이켜볼 때가 된 것 같다. 가정에서만이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어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년 전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건 어릴 적에 다 배웠다”라는 책이 출판되어 교육의 화두가 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 근래의 가족현상을 생각해 보면 맞벌이에 핵가족에 양성평등이라는 구조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가정교육을 시키기에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되어 어릴 적에도 다 배우지 못한 체 어린 시절을 보내거나 성장하게 된다. 누가 가르치고 언제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일에 대한 후유증이 우리 사회에 항다반사로 일어난다.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풍요로 연결되지 못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시간적 여유에 연결되지 않는다.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로, 행복감이 더 줄어든 사회가 되었고 시간적으로 훨씬 더 바쁜 사회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어른이 사라진 가정교육 부재 때문은 아닐까? 물론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부분적인 현상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른이 사라지는 사회라지만 정작 어른이 되는 교육을 우리 부모가 못 받은 채 부모가 되었고, 부모로서의 자격 미달인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가르쳐야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무슨 부모교육을 누가 하고 누가 받았다는 거지? 라고 묻겠지만 우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핵가족 이전의 부모님세대는 그분들이 모시고 함께 살았던 선대의 부모님들 모습을 보고 듣고 자랐다. 시골이라면 마을에도 그런 어른이 계시는 동네에서 자랐던 부모님들은 서로에게 조심하고 심지어는 자식에게조차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걸 보면서 자랐는데, 우리 젊은 세대는 핵가족에서 크고 자랐기 때문에 또 서로 직장에 다닌다고 바쁘기 때문에, 성장과정부터 본 바 없고 들은 거 없이 자랐거나, 부부 서로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비록 어린 자식들 앞이지만 부부 서로 간에도 함부로 큰소리를 치고 꾸짖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도 잊어버린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가 되었다. 가족과 부부 사이에서도 조심하거나 배려해야 한다는 예의도 잊어버리고 부부간의 관계나 부모자식과의 바른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혼하여 부모가 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식에게 가르칠 줄도 모르고 여유를 보여주지 못하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회! 가족간에 관용하고 품어주고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다시 말하지만 부부 서로간에 존중하고 받들어 모시는 어른의 존재를 다시 찾아야 가정교육을 제대로 할 수가 있다. 또 남녀가 평등하고, 자신의 뜻이나 생각을 주장하라고 가르치는 건 좋은데 그보다 앞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용을 가르쳐야 되는 건 아닌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어른이 사라지면 누가 손해일까? 자식들이 아닐까? 부모들이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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