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의 시작은
자신 탓인가, 타인 탓인가
인생의 예단은신의 영역
신의 뜻을 알 수 없는
피조물의 무기력한 삶
죽어서도 저승에서
큰 바위를 산 정상에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
하데스와의 악연이라 하지만
이겨내고 누린 장수의 삶
흔히들 삶이 형벌이라 하면서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가
죽음보다는
형벌을 머리에 이고 살아도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는
견뎌내고 따스한 햇살
누리며 살기도 하는 것을
아무리 큰 형벌의 고통도
지나고 나면 평온이 찾아오는 법
태어나지 않았음보다는
살아있어서 언젠가는
누리게 될 달달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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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의 여유
빗소리마저 뜸한
한적한 시간에 갇히면
내 마음까지도
점점 사위어 가는지
쇠 긁히는 소리 들린다
어느 것으로도 적실 수 없는
적막의 고통에 몸서리치고
아무리 큰 소리로 울어도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무인도에 던져진 처지라면
무기력함이 이런 거겠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움찔하고
혀까지 굳어버린
내 안에서만 중얼거리는 언어
뉘라도 들을세라
빗소리 잦아들지 않았음 좋겠다
내 생애 가장 평온한 시공을
홀로 비상하고 있는 지금이
모든 걸 다 비우고
다시 채우기 위한 긴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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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와 데칼코마니
실개천 터줏대감 삭은 갈대들
누굴 위해 젊음 바쳤나
거센 물줄기와 잦은 바람
부대끼며 서걱이던 것은
무얼 노린 퍼포먼스였나
길지 않은 생애
이처럼 망가질거면
꽃이라도 피워 볼 일이지
하룻밤 달빛을 껴안고
포옹이라도 할 일이지
작열하는 태양에 맞서
어쩌려고
온 몸을 내던졌나
끝내는 삭정이만 남아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 몸도 이미 서걱거리는
우는 갈대 닮아가는
상련의 비애
남 같이 않음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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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뜨락
사각의 정글 안에서
이데아를 벗어나려
저항하며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여
지친 몸과 마음
때 맞춘 바람이 식혀주고
배롱꽃 머금은 미소가 위로되는
작은 뜰
작은 음악회 풀어 놓으면
엉킨 앙금도 어느새
어깨춤 하나가 되고
책 한 권과의 짧은 시간도
큰 울림이 되어
청춘들의 엉뚱한 역모까지도
추억이 되고 웃음이 되는
먼 훗날 끄집어 낼
일기장 속 눈시울 적실
공감뜨락에서의
힐링의 시간 마디마다
젊음의 향긴 달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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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 유채꽃 정원
평범한 것도
군락을 이루면
저토록 특별해지는가
텃밭에 듬성듬성
피어있을 땐
그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던 것이
저토록 한데 모이면
군중의 짝사랑이 됨어
오 놀라워라
우리 인간들도 혼자라면 외롭다
여럿이 모여 살면
세상이 즐겁고
신나지 않을까
사람 많으면 티격태격
꽃 많으면 알콩달콩
얼마나 부끄러운 자화상인가
생각만 조금 바뀌면
유채꽃처럼 판타지가 되는 것을
그래서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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