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쏟아지던 날
지난유월,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떠있을 때 이곳은 지옥을 넘나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도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이다.
쾌청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회색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점차 검은 구름으로 변하더니 도로의 먼지와 휴지조각들이 서서히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몇 방울의 비가 떨어졌다. “하늘이 이렇게 무거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많은 비가 오겠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대충 비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우당탕 간판 떨어지는 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 슬레이트 지붕 뚫리는 소리, 읍내는 순식간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탁구공만한 크기의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옛 어른들이 갑자기 큰일을 당하면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을 하였는데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표현이었구나. 사람들의 무분별한 자연훼손으로 지구의 멸망을 맞게 되는 가 보다 참담한 심정으로 나뒹구는 파편들을 보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박에 맞은 상처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도로변에 세워둔 자동차들은 곰보가 다되어 있었다. 또 가로수의 은행나무는 장대로 후려친 것처럼 여린가지는 꺾여지고 잎들은 찢겨져 차마 바라보기에도 너무 가슴 아픈 처참한 모습이었다.
우리 집 아래채 지붕도 구멍이 뚫려 엉망이었다. 대충 치워놓고, 텔레비전을 켜보니 전기도 누전이 되는지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다. 가까스로 이층에다 전기선을 연결하여 아홉시 뉴스에는 오늘내린 우박에 대한 보도를 톱뉴스로 보내겠지 하며 TV앞에 앉았는데 1분도 안되게 그것도 맨 마지막에 잠깐 방송이 되는 걸 보고 허탈한 기분이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우박내린 30분의 시간이 공포의 도가니였는데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모습들은 축구의 열기로 즐거워하며 흥겨워 들떠있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모습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그래 이 넓은 우주 안에 합천 이라는 곳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이 전부이고 크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작은 점 하나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거구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 자신부터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으며, 남의 불행한일에 얼마나 위로를 해주었던가? 문명의 이기 때문에 요즘세상 각박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는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잔치가 있을 때에 축의금 같은 건 주고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동참하여 형편에 맞게 술 한 동이, 두부한판, 단술 한 동이,묵 한 판 등등 이런 음식으로 잔치를 하고 품앗이로 부담 없이 주고받던 정겹고 아름다운 풍습 이였는데 지금은 시골에도 이른 풍습이 남아 있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제삿밥 한 그릇에 이웃간의 정을 나누고 우물가에서 동네소식 전해지던 나 어렸을 때의 토담집이 오늘따라 가슴 저미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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