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정순한
어딘가는 확실치 안은데 사방이 꽉꽉 막혀 캄캄한 공간이었었다.
나는 분명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가 머리맡에서 내려다 보는듯한 느낌에 번쩍 눈을 떴다. 근심 가득한 납빛 얼굴인 어머니가 나를 내려다보시며 내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꿈속에서도 난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이미 저 세상 분이시잖는가?
“어? 어? 어무이...”
보고 싶었다고, 어쩐 일이시냐고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그대로 꿈을 깨고 말았다. 어슴프레 아침이 광을 붉게 물들이며 밝아오고 있었다.
찐 호박이파리 짭짤하고 알싸한 된장국 채 썰어 볶은 애호박나물 물러하게 찐 가지나물, 얄팍하게 저며 구운 감자전, 고구마 줄기 무침 등 지천에 널린 여름 반찬들...
어김없이 바뀌는 계절이면 제철 음식이 찾아오지만 한번 떠난 이는 다시 만날 수 없다. 계실 때는 몰랐다. 때로는 미울 때도. 다소 귀찮을 때도. 그러다가 짜안하게 가슴 아플 때도, 갑자기 측은함에 맘이 미어질 때도 있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휑한 눈빛의 당신앞에 모처럼 여러 맘이 교차 될 때마다 이세상의 헌 누더기 옷 미련없이 훨훨 벗어던지고 자는 잠에 편안하게 가시라고 입버릇처럼 기도 했었다. 후회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이토록 후벼파게 될 줄을 그땐 정말 모르고 어리석은 난 그랬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수만큼이나 무수한 길이 널려져 있는 세상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아 불평 없이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일까?
비탈길 아스팔트길 ,오솔길, 가시덤불길, 산길, 들길, 자갈길. 황토길, 사막길... 내가 원하는 길을 맘대로 갈 수도 없고 걷다가 어떤 길이 불쑥 나타날지 더더욱 예상할 수도 없이 때로는 가시덤불 앞에서 헉헉거리며 발악 하다가 다시 펼쳐진 아름다운 숲길을 만나 면 언제였냐 싶게 여유자적 해 보다가 그것도 잠시 사방팔방 막혀버린 업어진 길을 찾아 발을 동동 거려보다가 돌아서서 지름길을 찾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살아있는 우리로서는 살다가 어떤 길을 만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선 걷는 법을 새로 터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최선이지 싶다. 인생을 살아오며 크게 넘어져도 보고 다시 일어나 본 사람이 담담히 말했다. 혹여 가다가 길이 보이지 않거든 뒤돌아서서 눈을 감고 찾아보면 빤히 샛길이 보이는 법이라고 어머님의 길이 끝난 시간이 꼭 작년 이맘 때였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의 긴 여정은 어떠셨을까.
“아이구! 내 살아온 세상을 책으로 엮으면 여러 수십권도 모자랄끼다...” 어머님의 푸념대로라면 결코 순탄하고 녹녹한 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갔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브레히트라는 시인의 ‘나의 어머니’ 라는 제목의 시를 접했을 때 난 헉하고 숨이 막히면서 홰 울음을 터트렸다. 새털처럼 가벼운 체중으로 한줌 흙이 되어 땅을 누르지도 않고 누워계실 시어머님의 삶을 난 왜 외면하려고만 했을까.
그녀의 여정이 곧 내 삶이라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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