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김현숙
세상의 어머니는 장갑 같아서
가슴 데이는 삶도 움켜쥐고 살 수가 있었지
손 끝에 닿은 가난
축축해져 오는 감각을 무디게 견디며
열 손가락 끌어안고 굳은살을 키웠지
못 배우고 서럽던 시간에 갇혀
투박하게 뜯겨진 삶
바람에 털어내며 뒤집어 말렸지
그 곳에 어머니가 사셨어
좁고 어두운 골방 끝에서
쿵큼한 흙 울음이 흘러내려
자꾸만 도망가려는 구멍난 마디
이 악물고 삶을 매듭 지었어.
동백여자
김현숙
입술이 선명한 밤
달빛에 그녀 가슴의 흉터가 빛났다
남자는 뜨거운 눈물을 참으며
여인을 더욱 깊게 안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초승달
김현숙
눈물로 깎아낸 달이
야윈 걸음 달아난다
사립문 틈
발자국 소리
툇마루 주저앉은
떼지 못한 발걸음
일제히 개가 짖었다
하나 둘 불이 꺼지면
초승달 같은 딸아이
아비 가는 줄 모르고
긴 잠에 빠졌다.
침대
김현숙
맞닿아야 한다.
네모난 세계의 기억은 끝이 없다.
젖은 머리칼, 수건으로 꾹꾹 눌러가며
죽은 큰오빠가 받아쓰기 점수를 묻던 날
미꾸라지 잡던 도랑에서
떠내려간 노란 꽃신이 돌아오고
바람에 쓸려 떨어진 살구를
개미와 치열하게 줍던 마을 어귀에서
음정 박자 무시한 한오백년 가락이
비틀대며 집으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서야
남편의 등이 맞닿은 밤이면
나는 몰래 베개를 안고
문을 연다.
강력 테이프
김현숙
서른 중반의 삶이 삐딱하다
한 쪽을 반듯하게 고쳐
이쪽에서 보고 저 쪽에서 보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꼼꼼하게 바른다
곧 있으니 멀쩡하던 반대쪽이 기운다.
남편 시댁 육아
사방을 살피며 위치를 잡는다
얼마 뒤 다시 처음처럼 삐딱하게 기울었다
결국 테이프 한 통을 다 쓰고서야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았다
테이프의 끈적함은
서른 중반의 삶에 쉽게 녹아내렸다
오히려 삐딱함이 지금의 균형이란 점을
멀쩡히 잘 있는 시간을 꺼내보고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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