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양천강
이경식
흔들리자 갈대여
때마침 바람은 불어오지 않느냐
부서지기 쉬운 계절을 견디기 위해
제자리에서 흔들리는 것이 전부일지라도
온몸으로 흔들리자 갈대여
온기 없는 강물에
풍덩 눈물 한방울 던지며
미뤄왔던 나의 의식을 치르나니
흔들리자
흔들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뿌리까지 흔들리자
물보라 반짝이기 위해
때마침 강변으로 바람은 불지 않느냐.
족저근막염
이경식
발바닥이 아팠다
견딜 수가 없었다
사무실을 박차고
강물을 따라갔다
물고기를 잡으면
나을 것만 같았다
낚싯대가 없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물고기 잡는 꿈을
계속해서 꾸었다
병원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를
잡아 본 적이 언제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하염없이
내 몸에서 새어 나왔다
창밖 플라타너스가
위험하리만치 짧게
가지를 잘랐다
용감한 플라타너스
툭!
요즘은
하루해가
서둘러 떨어지곤 했다
이런 날은 달빛이 무거워
물고기들은 플라타너스 주위로 모여
내 아픈 발바닥을 밤새워 이야기하였다
망산
이경식
바다가 문을 열면
멀리 있는 것은 그립고
희미한 것은 아름다웠다
홍류동
이경식
무심한 척 흐르다
내 앞으로 와서는
넓어지는 그 마음
붉어지는 내 마음
붉은색이 무거워
가지가 휘어버린
나무가 되었네
늙은 손수레
이경식
우산을 준비해서 외출하세요
티브이는 비를 예보한다
세상살이 비 안 맞고 살 수 있냐며
늙은 손수레는 관절 소리를 삐걱댄다
내 삶의 자리가 누구를 위로해 줄 처지가 아니라는 듯
도시의 골목길은 가파르고
손수레는 올라올 수 없는 길이 있다는 듯
도시는 계단도 많다
낡은 폐지처럼 아무렇게나 구겨지며
늙은 손수레는 굴러간다
비가 온다
손수레에 실린 비루한 삶이 튕겨진다
늙은 손수레가 지나온 바퀴 자국이
하수구 구멍 속으로 빨려간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늘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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