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번에
다 말하지 못하는 이름은
한때 뜨거운 열병을
부지런히 전하던
집배원의 가방 속에 갇혀버렸다
멍멍한 설움에 콱콱
속이 차올라
한 알 빠져버린 안경너머처럼
세상이 흐려지고
기다리지 않아도 전율로 다가설 시간이
때로 무서워도
스멀거리며 쌓일 그리움들이 두렵지만
돌아서는 집배원의 등에다
번져버린 소인을 찍었다.
기차와 신발
그리움을 남기는 일은 쉽고도 흔한 일이다
멈출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갈증 속에서 더듬는 물 사발처럼
절실하게 내려앉은 것들과
자꾸만 진지해져 가는 시간들로
출발만 있는 거리는 꽉 막힌 채
한쪽으로만 걸어간다.
더러는 너무 멀리 와버려
멈출 수도 돌아 갈 수도 없어
출발에 밀려가는 발들의 푸념이 아파갈수록
멈출 수 없는 시간만이 계속 될 것이고
터널 앞에서 무서움에 울어버리는 기차처럼
까만 입 어둡게 벌린 세상 앞에서
다시 울지 않으려 신발 끈을 고쳐 맨다.
두부
콩잎 그늘에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벗은 몸으로 엉긴다
사각의 틀 안에 가두고
다독다독 등 두드려 달래놓고
아픈 시간들을 지워버리려는 듯
무거운 세월의 추를 올린다
몇 번인가 뻐꾸기가 울고
젖먹이가 된 나는
땀에 젖은 적삼을 헤치고
스무 살 곱디고운 어메의
희고 따뜻한 가슴을 만난다
애호박
발길에 이슬이 차인다.
촉촉이 아침으로 젖어온다
면접이라도 보듯 이리저리 잎을 헤집어 찾는다
솜털이 송송한 밤톨만 한 놈들
솟을 햇살을 이고선 주먹만 한 놈들
눈 맞추며 둘러보다
제법 품에 안길만한 놈들로
두 녀석을 골라 따서 품에 안는다.
지난 계절의 무게로 안겨든다
겨우 두덩이 애호박으로 넘치는 가슴이면서
나를 모른다며 야속해 했다
두덩이 애호박을 안고 깨닫는
내 남을 몰랐다는 때늦은 뉘우침
발등위에서는 따뜻한 아침이 마른다.
어쩔래?
-學淳 宋永和-
삶에 기억 어디쯤
다 흘려보내지 못한 사연하나
붉은 녹 뒤집어쓴 못이 되어
버티고 선 때문인가
부두에 묶인 조각배처럼
아직 그 마음 굵은 줄에 매여 있다
겨울새가 겨울새를 쫓아 나르듯이
삶이 또 다른 삶을 지고 가지만
겨울바람마저도 떠난 빈 공간을
허튼 언어들만이 서성거린다.
사랑했다는 말은 어눌해진지 이미 오래인데
떠나보내지 못한 그리움들
자박자박 발길에 채이다
때로 삶에 벽이 되어 다가서서는
어쩔래 어쩔래 지금에야 더 아픈
임자 잃은 붉은 이 마음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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