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인들 아름답지 않을 산이 있을까? 나름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않는가! 내가 설악산을 찾은 건 몇 번 있었지만 이번만큼 힘들고 감동적이지는 못했었다. 지난 6월8일 집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왔다. 오늘 저녁에 설악산 가야한다고. 나는 ‘아! 지금가기는 곤란한데 ’했더니 ‘지난번 가자고 해놓고 그러느냐’고 역정을 낸다. 이미 비용도 지불한 입장이라 자기 혼자라도 가야한다며 화난 목소리의 전화가 귀에 쟁쟁하였다.
세상에 어디 여자 이기는 남자 있을까! 의령에 가 있던 나는 밤 10시인데도 차를 급히 몰았다. 집사람의 건강을 알고 있기에 내가 동행하지 않으면 남의 신세를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바쁜 마음으로 집으로 가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설악산 등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거의가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잠을 잘 시간이라 그런지 불편하다 싶다가 새벽2,3시가 되었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하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밤을 차에서 지샌다는 건 시간을 이용하는 득도 있겠지만 심신을 지치게 하기에 피하는 게 좋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일행은 백담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들어가는 길이 꼬불꼬불하였지만 깊은 계곡의 물은 참으로 맑았다.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 이 계곡을 보면서 백담사에 가실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저런 생각과 낯선 경관을 보는 사이 어느 듯 백담사에 도착했다. 깊은 계곡에 이처럼 큰 절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절 앞 맑은 물에서 간단한 세수를 하고 부처님께 참배도 하고 이 곳 저 곳을 살 펴 보았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계셨다는 방에 유독 눈길이 감은 무슨 연유였을까! 아! 그 시절 합천에 있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끊임없이 전 두환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고향 사람이 어렵게 됐다는 것에 대한 지역 정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만해 한용운님이 수도한 곳이 아닌가! 그는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이셨다. 문득 이곳에 오니 그분의 많은 시중에서 유독 “인연설”이 뇌리를 스침도 우연한 인연은 아니었으리.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어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후략
백담사를 나와 일행 중 발 빠른 분들은 진작 가고 천천히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집 사람과 몇몇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무릎이 아픈데 패랭이 약초를 썼더니 누가누가 나았다더라는 말에 어느 동행하던 스님이 “방금 무슨 약이라고 했습니까?”하시며 물어 오셨다. 스님들은 많은 절과 수양으로 무릎이 좋지 않은가 보다. 산이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아름다운 경치도 경치지만 수렴동대피소에 다다랐을 때 집 사람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부부간에 대화하고 손 잡아주는 일이 등산만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가파른 깔닥고개를 마지막으로 봉정암에 도착을 하고 시원한 물 한잔을 들이키고는 일행 중 몇이는 대청봉을 향해갔다. 소청봉 이후에 이내 대청봉이 있으려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저기 보이는 산 정상이 대청봉인가 했는데 9부 능선에서 마치 내려 가는듯한 길에 들어서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몸이 지쳐 제 정신으로 가는 거 같지는 않지만 다시 못 올지 모르는 곳인지라 한번은 밟아는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냥 걸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세상에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살아 남기위한 몸부림이었던가! 바람이 세차고 차가운 날씨에 살아남기 위해 식물이 하나 같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소나무와 주목나무는 안내 게시문에 눈 소나무 눈 주목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젠가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니 대청봉이 눈앞에 다가 왔다. 손 시리고 춥던 마음이 사라지고 대단한 업적을 남긴 양 의기양양 하였다. 언제 고교후배가 “형, 나 중청봉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길에 바람에 날아가려는데 덩치 큰 아줌마의 보호를 받고 위기를 모면 했어”하던 말이 생각났다. 진짜 날아 갈 것 같이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드디어 대청봉에 다다르니 무슨 큰일이라도 해 낸 냥 피로감이 일시에 사라지고 흥분만 감돌았다. 그 유명한 대청봉(1,708m)에서 우리 일행은 몇 번이고 카메라 앞에 섰다. 대청봉에서 내려 올 때는 어떻게 드러누우면 뒹굴어 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기진맥진 그대로였다. 소청봉 휴게소에서 다리도 실 겸 우리 일행은 라면을 사 먹었다. 아! 라면의 맛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었던가! 누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속이 허하지 않은 상태라서인지 한결 여유롭게 이 곳 저 곳을 볼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며 주변의 아름다움은 내 영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구름에 가렸다 들어나는 깊은 바윗골을 바라보노라면 못난 나도 어느새 신선이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하루 밤을 묵어야 할 봉정암에 내려와서 배정된 숙소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보고는 엄두가 나지 않아 밖에 멍하니 있다가 그래도 여기서 밤을 샐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방에 들어갔다. 바로 앉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밤을 보낼까 걱정이 앞섰다. 궁하면 체면이 없고 낮선 사람 앞에서도 자기를 표출하는 본능이 눈에 보였다. 이런 곳에서 만약 며칠을 보낸다면 이곳에서도 서열과 규칙이 있을 법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딜 가도 목소리 큰 사람이 있듯이 거기서도 그들끼리 헤게모니를 잡고 통 성명을 하고 급기야 오래 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자주 왕래를 하자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생리적 본능은 어쩔 수 없어 화장실에 갔다 올 요량이면 영락없이 내가 있었던 공간은 다른 사람들이 몸을 점령하고 있었기에 어디 바깥바람도 제대로 못 쐬어 답답함이 목까지 찼다. 이튿날 집 사람 얘기를 들어보니 여자방에서는 아예 화장실에 가지를 못했다고 하면서 어느 연세 많은 할머니는 방에서 실례를 했다고 하니 신앙심에서 출발한 사람들에게도 마지막은 아비규환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서 무슨 신앙이며 인심이며 남여노소가 어디 존재했겠는가. 오로지 나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함 뿐이었으리라. 그 와중에서도 방에서 자지 못한 이들이 천여 명이 되었다고 하니 그 실상이 짐작이 간다.
누가 그랬던가? ‘낮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고. 힘든 밤이 지나 이른 새벽에 짐을 챙겨 밖에 나와 신발을 찾는데 예기치 않게 시간이 많이도 걸렸다. 그래도 나는 일찍 일어났기에 내 신발을 찾을 수 있었지만 어떤 이는 신발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귀가를 했을까 싶다. 재빨리 세수하고 화장실가고 국물에 밥 넣어주는 간단한 식판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소청봉을 거쳐 중청봉에서 집결지를 향해 걸었다. 내려오는 길이 편 할 듯 했지만 돌길을 내려오자니 보통 힘들고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같이 나섰던 일행들은 우리 집사람의 진도에 갑갑함을 느껴 다들 슬슬 가버렸다. 학습에도 수준별 학습이 있듯이 등산에도 수준별 등산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니 산에서 배우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이겠는가! 집 사람이 쓰던 지팡이가 어이없게 부러지다보니 걷기가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나무 지팡이를 만들 요량으로 방지선을 넘어 산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아마 산을 보호할 선을 넘었다는 소리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나무 가지를 찾는데 참 마땅한 게 없었다. 장비도 없었고. 옛말에 “개똥도 찾을 때는 눈에 뛰지 않는다’고 했지. 겨우 가지를 부러뜨려 나오니 집사람이 ‘당신이 지팡이 만든다고 헤맬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해서 나를 위해 지팡이를 만든다고 했더니 어떤 이가 자기 지팡이를 가지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고 하였다. 자기도 필요한 물건을 남에게 주려고하는 이들도 있다는 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살만한 세상이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사람의 걸음걸음을 챙기고 손잡아 이끌어 주고 하는 사이 우리 내외는 계곡에 들어섰다.야! 평소에 막연하게 상상해오던 꿈에서나 보아왔던 아름다운 폭포와 소가 눈앞에 펼쳐질 때 힘듦도 잊었다. 선녀가 당장 목욕을 하고 승천한 듯 폭포들이 넋을 여지없이 나가게 했다. 오련폭포. 천당폭포 등을 가슴에 담고 스쳐가기에 안타까움이 많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사진 한 장 부탁합니다고 했다. ‘카메라 어디 있어요’ 하길래 카메라 없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여기 서세요.’하며 사진을 찍었다. 집사람은 남에게 좀처럼 부탁 안하는 사람이 어쩐 일이냐고 한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하고는 우린 행복하게 웃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감탄하는 사이 우리는 평지에 다다랐다.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른 여인네들이 ‘동동주가 있다느니, 좋은 더덕이 있다느니’하는데 기다리는 일행들이 있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두고 ‘그림의 떡이라’고 했던가! 술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의 도움을 받지 않을 길에 들어선 집사람은 제법 큰 업적을 이룬 성취감에 고무되어 있는 듯 했다. 어느 누가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됐다느니 하면서 제법 신명나게 얘기 하던 차에 아뿔사! 그만 땅 바닥에 넘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일어났으면 하는데 일어나지 않아서 일어나라 했더니 “무슨 사람이 그러냐”며 일갈하였다. ‘다친 데는 없냐며 하지 않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에 화가 치밀은 모양이었다. 특유의 잔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서운하기는 나도 뒤지지 않았다. 어제 오늘 걸음걸음 땔 때마다 이끌어준 내 업적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엎어진데 다친데 없냐며 일으켜 세우지 않은 것만 코앞에 있었다.
같이 걷던 우리는 따로 국밥이 되었다. 폰은 두 사람 다 밧테리가 나가 어디 연락도 못하고 답답하였다. 기다리는 일행을 생각하면 마음은 조급했지만 어쩔 도리도 없었다. 일행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겠다 싶을 때 공중전화 박스가 보였다. 수첩에 있는 전화카드를 꺼내 밀어 넣는데 들어 가기만하고 전화도 되지 않고 나오지를 않아 집사람을 향해 얘기 했더니 버럭 화를 냈다. 전화 박스 앞에 있는 가게에 얘기를 했더니 전화 써비스 센타에 연결해 주어 주소와 직장을 가르쳐 주었다.카드를 부쳐 주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일행을 향해 빠른 걸음을 할 때는 ‘왜 여기 와서 이렇게 기분을 잡치나’는 생각만 들었다. 제법 걸었다 싶을 때 공중 전화박스가 있어 무척 반가웠다. 동전으로 전화를 걸어 택시를 타고 일행이 있는 곳에 갔다. 기다리는 일행에게 참으로 미안하였다. 몇 분들은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풀고 있었다. 잔을 권하는데 얼마만인가 싶을 만큼 시원한 꿀맛이었다.
아! 설악. 내 평생 다시 한 번 더 설악을 종주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기약은 없어도 이 천하의 비경, 장대한 큰 산의 품에 잠시라도 들어 세상사 잊고 자연의 질서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인연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이 행운에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일행은 설악산을 뒤로하고 귀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에 나서 차에서 밤을 새고 잠이 채 가시기전에 산에 오를 때 어려움도 많았지만 다들 무언가 성취하고 돌아가는 역전의 용사인양 밝은 대화와 노래가 차안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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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송별회
어! 영대 왔구나. 그래 우째 지냈노? 지난 번 하는 일은 잘 하고 있나? 오늘 우짠일로. ‘저 오늘 퇴직금 신청하러 왔습니다.’ 아,그래. ‘지난번 회사는 그만두고 다시 창원에 엘레베이터 만드는 회사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참 잘 됐다. 열심히 해라.
영대. 그는 지난 6월30일까지 우리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요 사적으로는 제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퇴직금을 신청하러 온 것이다. 그는 2005년 본교에 부임을 해서 근무를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불미한 사건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06월29일 한 음식점에서 송별회를 가졌다.
친목회장님이 ‘오늘 서무과장님과 김 영대주사님의 송별회에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고 하는 말에 얼떨결에 일어났다.
‘오늘 우리 서무과장님과 김영대 주사가 그동안 우리 학교 발전을 위해 주어진 일에 열심히 노력해주신 것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과장은 자리에 있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아 그때부터 말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침묵이 제법 흐른 후에‘한 사람은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퇴직을 하게 되고 한사람은 자기가 희망한 직장에 가지 못한 마음에 송별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김 영대 주사는 개인적으로는 내 제자입니다. 또 문과장님은 희망하던 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게 교장인 저가 부덕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몇 몇 직원들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 이런 송별회가 있단 말인가? 흔히들 송별회는 ‘축하합니다. 그동안 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덕담이 오가는 게 보편화 된 문화가 아닌가! 직장을 중도에 그만두고 그렇게 희망했던 직장에 가지 못해 아예 송별회에 참여치 않은 이를 보내야하는 나로서는 감정을 바로 잡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주인공 2인이 다 있어도 무거운 자리였을 텐데 한사람이 없는 자리는 참으로 썰렁하고 무거웠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나가면 이 어려운 시기에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일은 똑 부러지게 하지 않았지만 좀은 어눌하면서도 씨익 웃는 모습을 더는 볼 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장은 자기가 그렇게 가고 싶은 직장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상했는가 보다. 묵묵히 일만하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라하지 않는 성품으로 봐서 서운함이 너무도 컸으리라. 잘 가라느니, 축하한다느니, 고맙다는 송별회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따라 우울한 송별회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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