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지는 해가 아름답기만 한 것을!
서산에 지는 해와 같은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내가 젊은이들 사이에 끼여 문학공부를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패기가 아닌, 오기라 할까, 망녕든 영감이라 할까, 그런 조소(嘲笑)가 있을법하지만 구애받지 않고 나는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합천문학회에서 어언 14년째 문학동호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내가 15년 전 교직애서 퇴임하고 가야산을 오르내리며 여가를 즐기고 있을 때, 우연히 합천문화예술회관에서 손국복 회장의 시집 출판회에 초대되어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문협 회원 중 여류시인 누군가가 음악의 선율에 맞춰 낭낭한 목소리로 손국복 회장의 <그리운 우상>이라는 시가 낭독되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도취되면서 나도 저런 시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한 일이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저 높은 하늘을 날며, 그리운 우상을 찾아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 그날 밤 츨판회 행사가 끝나고, 나의 상상의 나래, 그것은 한낱 헛된 꿈이라고 생각했고, 인생과 자연을 노래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문인들은 나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딴 세상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소망이 나에게 이루어져 합천문학회 회원들과 만나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그 인연의 고리를 맺게 해준 사람은 고인이 된 전 합천문인협회 김해석 회장이시다. 합천문인협회에 입회하고 13년 동안 줄 곧 수필만 써왔던 나는 금년 초여름 카페 ‘다온’에서 손국복 회장이 강의하는 시문학 강좌 둘째 주 수업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손회장의 강의 서두에 그날 길에서 하마터면 지렁이를 밟을 뻔 했는데, 다행히 그것을 밟지 않았다며, 수업 서두에 왠 지령이 이야기가 나왔다. 무심한 사람이라면 일부러 밟아서 죽일 수도 있는 하찮은 한 마리의 지렁이에도 손회장은 소중한 생명체라는 외경심(畏敬心)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아프리카 빈민들의 치료와 선교에 헌신한 알베르트 슈바이쳐는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지녔고, 따라서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말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문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믿고 실천했다.
그런 연후 그날 손회장이 수강생들에게 부여한 과제는 “자기 생애에 가장 처절하게 고통스러웠던 체험담을 적어 다음 주에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날들을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오오사카(대판)에서 태어난 나는 다섯 살 때 히로시마로 이사를 했고, 이곳에서 원폭이 투하되던 1945년 8월 6일 그 한 달 전에 나고야로 또 이사를 했다. 그 때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우리 가족이 남아 있었다면, 나는 이미 죽었거나 살아있어도 원폭피해를 입어 평생을 고통 속에 신음하며 불행한 일생을 살다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모른다.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을 경험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도 6,25전쟁을 겪었다. 두 전쟁의 와중에서도 나는 태풍 한 가운데의 눈처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년에 내 생애 중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 김해석 회장이시다. 김해석 회장은 오늘날의 합천문협이 있도록 초석을 다지신 분이다. 때로는 엄격하면서도 항상 다정한 마음으로 우리회원들을 잘 이끌어주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세상을 떠났는지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김해석 회장과 나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이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난 자리는 고령문인협회 출판회 행사 때였다. 내가 2000년 교직에서 퇴임 후 여가생활로 가야산을 오르내리면서 <가야산과 일곱왕자>라는 글을 친분이 있는 고령문협 회원을 통해 고령문협지에 올리면서 나는 고령문협회원이 되었다.
그날 그 출판회 행사 때 내 좌석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이 고 김해석 회장이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는 생면부지였지만, 나를 당장 알아보고는 자기는 합천문인협회 김해석이라고 소개하고, 고향을 놔두고 왜 타지의 문학회에 와 있느냐면서 나를 합천문협으로 당장 옮기라는 명(?)을 내렸다. 그날 밤 행사를 마치고 우리가 향한 곳은 야로면 월광리 가야천 강가의 외딴 우리 집이었다. 술잔이 오가며 정담을 나누면서 우리는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날 밤 이후 그와 나는 형님과 아우 사이가 되었고, 며칠 후 합천문인협회에 입회하여 회원들과도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군내 연중 문화예술행사에도 참여했다. 교직에서 퇴임하고 여생을 어떻게 하면 보람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뇌하고 있었던 나는 합천문인협회에 소속되면서 문학에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학회에 입회하고 회원들의 작품을 읽고 문학에 대한 소양을 기르며 기량이 조금씩 늘어갔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노후의 소망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로부터 3년쯤 세월이 흘렀을까, 김해석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살아오면서 내 생애의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면 이런 사건이 아닐까, 그 8년 후에 김상완 선생님도 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문득문득 그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김해석 회장과 함께 한 지난날의 합천문협을 돌아보면, 1993년 문학의 불모지 합천에 그와 함께 최병태 김원욱 허숙자 김경미 시인 등 문학동호인들이 모여 합천문인협회를 결성할 때는. 사무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서로 격려하고 성원하는 분위기 속에 타지의 여느 문화예술단체보다 단합이 잘 되고, 아름다운 스토리도 있었다고 한다. 손국복 회장은 윤한무 시인과 2진으로 입회했지만, 김해석 회장이 떠난 후 김숙희 송영화 회장과 함께 지금까지 합천문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오면서 황강백일장, 문학콘서트, 명사초청 시낭송회 등을 통해서 합천문학과 합천예술을 한 차원 높게 격상시켜 놓았다. 해마다 여름철 연중행사인 ‘명사초정 문학인의 밤’ 행사에는 전국에 그 명성이 알려진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초청하여 시민들과 함께 하는 합천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물론 회원들도 모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기 때문에 모든 행사가 단 한 번의 시행착오 없이 성숙하게 이루어져 왔다. 임원과 회원들이 우리 합천문협처럼 유기적으로 연대가 잘 되는 단체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2009년에는 나의 등단 특집 수필세계를 수록한 합천문학 17호가 발간되었다.
2010년에 발간한 특집 18호에는 김해석 시인의 유고가 실리고 그를 추모하는 특집이 실렸다. 회원 두 분이 쓴 김해석 회장 영전에 올린 추모시를 여기에 싣는다.
합천문학 18호 중에서(특집)
추모시
그해 겨울 산소에서
(김해석 전 합천예총지회장님을 그리며)
손 국 복 김옥란 (2010년 등단 시인)
시는 땅속에 묻히고 주무십니까
세상은 온통 주무시고 계십니까
잿빛 구름에 휩싸였네
음숭한 대숲 새 한 마리 그 청정한 기개 내려놓으시고
날개 파작이는 하늘가 산자락 메고 누워
송골매 잽싼 발톱으로 오늘은 쉬십니까
바람 낚아채는 대암산
박제된 영혼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생명에의 모든 것 용기 잃었을 때 힘 보태 주시고
뿌리 채 굳어버린 시간 역사와 민족 앞에 등불로 사시더니
마지막 서정 시인을 보내고
남정강 결빙된 그해 겨울 오늘은 그 너른 가슴에
꽃과 나비. 시와 노래도 황토이불 덮으시고 편하십니까.
흐느끼며 설산 오르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통속적으로 부(富)와 명예(名譽)와 권리(權利)일 것이다. 그러나 감해석 회장은 문학이라는 외길 인생을 살며 평범한 사람으로 남정강을 노래했고, 남정강 시인으로 사는 것을 자부심으로 소탈한 삶을 살다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물같이 흘러버린 세월, 어느덧 내 나이 팔순이 몇 달 앞에 닥쳤다. 꿈같은 여정이었다. 되돌아보면 내 생애는 순탄한 여정도 아니었지만 결코 험난한 여정도 아니었다. 나는 젊은 시절, 국군의 간성으로서 국방임무를 수행했고, 30대 초반 3년 동안은 지방의 향토예비군 중대장으로서 향토방위 임무도 수행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는 교직에 들어와 각지에 훌륭한 제자들을 기르며, 나름대로는 보람된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한 때 크게 정신적인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고, 어떤 누구도 부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상(諸行無常)하고, 애정으로 모인 가족일지라도 언제인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늘 그런 것인데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랴.' 그런데도 나는 젊은 시절 꿈꾸지 못했던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며 도연명처럼 여생을 이렇게 유유자적 (悠悠自適)하며 보내고 있으니 나에게 무슨 여한(餘恨)이 있겠는가.
서산에 지는 해가 아름답기만 한 것을 `````
2017 익산·부안지역 문학기행
익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최희준의 노랫말처럼 “인생은 길을 떠나는 나그넨가”, 나그네처럼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합천문학회가 해마다 시행하는 연례행사 중 회원들이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행사는 단연 여행을 겸한 문학기행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회원들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 저명한 문인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조명하고 회원 상호간에 보다 긴밀한 유대와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합천문학회가 2017문학기행지로 선정한 곳은 유물·유적을 통해서 백제의 수도로 점점 밝혀지고 있는 곳, 무왕이 천도했다는 전북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안과 군산지역이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지난 12월 23일부터 24일까지 1박 2일 여정으로 일행이 예년처럼 이오성 사장님이 운행하는 25인승 엔젤렌타카 소형버스에 탑승하여 첫날아침 07:40분에 이화예식장 앞을 출발하였다. 차에 탑승한 회원들은 송영화 회장, 손국복 교육장, 김숙희 예총회장, 정유미 예총사무국장, 이동배 시조시인, 최병태 부회장, 윤경선 시인, 이경식 군, 이홍래 군, 김현숙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총 11명이었다. 아침 안개 자욱한 33호선 국도와 광주-대구간 고속도로를 경유하고, 진주-함양 인터체인지에 진입하면서 송영화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어서 이동배 시조 시인의 가람, 석정문학관 소개와 시조 쓰는 법 강의가 있었다.
진안 휴게소에서 잠시 머물다가 차는 다시 익산을 향해 출발하면서 차안은 조용한 가운데 현숙이가 회원들에게 마이크를 돌려 금년 한해 자기가 잘한 일 세 가지와 못한 일 세 가지를 발표하게 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어떤 과제를 주고 발표하라고 했을 때처럼 한 사람도 거부반응 없이 발표하는 모습과 경청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진지해보였다.
보석박물관에서
일행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위치한 보석박물관이다. 2002년 5월에 문을 연 익산 보석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김경희 해설사가 나와 일행을 영접해주었다. 그녀가 우리들에게 건네준 첫마디 인사말이 “여러분들이 보석입니다”였다. 낯선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서 들려주는 이 같은 기분 좋은 인사말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행 첫날 첫 번째 들른 낯선 땅 익산에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우리 회원들은 예상 못한 감동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곳에서 1975년 국내 유일의 귀금속 가공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그 인근에 1989년 동양 최대의 귀금속 판매센터가 들어서면서 보석박물관 건립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전시관 한쪽 벽에는 보석이 탄생하기까지의 공정(工程)이 게시판에 도시(圖示)되어 있고, 광석 채굴모습을 현장감 있게 캐릭터로 재현한 코너도 있었다. 그냥 땅 속에 고스란히 묻혀있는 보석은 아무 데도 없다. 하나의 보석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지하 또는 암석에 묻혀있는 광석을 채굴하는 과정부터 그것을 정제하기까지 숱한 공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보석은 자수정으로, 울산시 울주군의 ‘언양자수정’이 세계 최고의 품질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보석 전시장 구석구석에는 이 지구상의 모든 보석들이 찬란한 빛으로 발광하며 진열되어 있었다. 여자들이 선호하는 기호품이라 일행 중 누가 이 보석들을 쉽게 살 것인가를 눈여겨보아도 아무도 없었는데, 이 동배 시인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보석 하나를 사서 카드를 내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받을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함께 포장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왕궁리 유적 전시관
일행이 익산시 중앙동에 있는 ‘서동고을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어 다음 탐방지로 찾은 곳은 왕궁리 유적 전시관이다.
부여는 우리가 배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는 곳으로 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익산 역시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국적을 초월한 전설 같은 순애보가 전해지는 곳이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백제의 또 다른 도성, 익산에 백제의 궁궐터가 있었다는 흔적이 나타나 사적 제 408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부터 실시한 왕궁터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동서 245m, 남북 490m에 이르는 왕궁의 규모와 담장뿐 아니라, 왕궁 내부의 건물지와 석축,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과 유리를 가공 생산했던 공방터, 화장실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이다. 삼국시대 최초의 화장실일 뿐 아니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모두 3기의 화장실터 가운데 가장 큰 곳은 길이 10.8m, 폭 1.8m에 이른다. 화장실 유적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과 함께 독특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일명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불리는 뒷나무, 즉 측주(廁籌)다. 1,300여 년 전 종이가 없을 당시 백제인들은 화장실에서 종이가 없어 측주를 사용했는데, 이 측주는 길이가 25~30cm 정도이며, 끝부분이 둥글고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다. 측주를 사용해 뒤처리를 하던 시대에 비해서 우리는 지금 세계 제일의 위생시설 토일렛(Toilet)화장실을 갖추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왕궁리 유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사찰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높이 8.5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이 석탑은 왕궁리 유적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것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둘러봐야 제품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세운 황룡사를 포함한 구층목탑지와 비견되는 왕궁터이다. 특히 이탑은 서편으로 해가 질 때쯤 붉게 물들어갈 때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석탑의 조영(照影)이 가히 장관이라고 한다. 이 탑 주변에는 금당, 강당 등의 사찰관련 유적들이 왕궁의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위치해 있고, 탑 주변에 왕궁건물지의 흔적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백제 왕궁의 건물이 왕궁으로서의 용도가 폐기됨에 따라 사찰로 변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금마군의 대관사 우물이 핏빛이 되어 5장이나 흘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의자왕대를 전후하여 왕궁에서 사찰로 변환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왔다는 이방인에게 의뢰하여 기념촬영도 하였다. 이 금당터에서 회원들은 갑자기 동심으로 돌아가, 달리기 경주도 하였다.
송영화 회장, 정유미 국장, 최병태 부회장, 윤경선 회원, 작은 거인 현숙이도 선수로 나섰다. 일등에는 단연 송영화 선수였다. 포상은 없어도 마음은 섭섭함이 전혀 없다. 이곳에는 백제 30대 무왕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백제 제30대 무왕 그의 이름은 장(璋)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그녀는 도성 남지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살던 중 근처 못의 용(龍)과 정을 통하여 무왕 장을 낳았다. 무왕의 아명은<서동>이었다. 여기서 용(龍)은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이니 백제의 어느 왕으로 보아야 한다. 그 왕이 성왕의 아들 위덕왕일 개연성이 크고,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한 기록은 중국의 기록인 북사(北史)와 수사(隋史)에서 나온다.
장은 성장하면서 마를 캐어 시장에 팔아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서동(薯童)이라고 부른 것이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미녀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신라의 도성 서라벌로 갔다. 그리고 서라벌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고 아이들의 호감을 얻어 자기를 따르게 하면서 한 편의 동요를 지어 서라벌 거리를 돌며 부르게 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밀어두고(밀통하고), 서동을 몰래 밤에 안고 간다.“
이 동요는 아이들 입에서 번져나가 대궐에까지 알려졌다. 백관들이 동요의 내용을 사실로 믿고서 공주를 먼 시골로 유배시키도록 했다. 공주가 유배의 길을 떠날 때 왕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선화공주가 유배지로 가는 길 도중에 서동이 나타나 공주를 호위해 가겠다고 나섰다. 공주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의 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자기 가는 길을 수행하게 했고, 얼마 후 공주는 그 동요시를 지은 사람이 서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백제로 왔다.
삼국사기 권 제 27, 백제본기 제 5, 무왕 원년조에는
<武王>, 諱<璋>, <法王>之子. 風儀英偉, 志氣豪傑. <法王>卽位, 翌年薨, 子嗣位라 기록되어 있다.
무왕의 이름은 장(璋)으로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고 기상이 걸출하였다. 법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에 사망하자 장(璋)이 왕위를 이었다. 위 삼국사기 기록에 <무왕>이 <법왕>의 아들로 기록된 것은 잘못된 기록이고, 위덕왕의 아들 혜왕과 법왕 세력이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자연사 혹은 살해당한 후에 숨어살던 위덕왕의 아들 장(璋)이 백제 30대 왕에 등극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장이 왕이 된 후, 왕비 선화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의 지법스님을 만나로 가는 길에 용화산 아래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 3존이 물속에서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예를 올렸고, 왕비 선화의 요청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니 ‘미륵사’라 했다. 이곳에 삼존불을 봉안하기 위해 금당과 탑, 회랑을 세우니 이 절이 “미륵사”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동요와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미륵사의 창건설화로 구전되어 왔지만, 2009년 8월 14일 미륵사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 <사리장엄구>와 <명문(銘文)>이 나와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 왕비임이 밝혀졌다. 사택적덕은 좌평으로서 그의 딸은 아버지의 정치적 권력을 배경으로 무왕의 비(妃)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란 한 시대의 기록이다. 그러나 후세에 어떤 결정적인 유물이 출토되면 그것이 뒤집히기도 한다. 역사는 그 시대의 권세가나 승자에 의해서 흔히 쓰여지기 때문이다. 미륵사지에서 나온 명문(銘文)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명문은 역사기록이기 때문에 그 어떤 추론보다 정확하다. 아름다운 조각의 사리함과 내호(內壺) 및 푸른빛이 감도는 유리병은 백제시대에만 나타난 유리색갈이다.
삼례문화예술촌
일행이 왕궁리 유적 답사를 마치고 그곳에서 20여분 달려 도착한 곳은 비주얼 미디어아트(Visual Media Art)가 전시되고 있는 삼례문화예술촌 전시관이다. 삼례(三禮)는 호남의 중요 역참지로 역사, 문화적 의미가 큰 지역이다.
삼례문화예술촌에는 VM아트갤러리, 디자인, 책방박물관,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상림목공소, 문화카페오스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미술의 매력은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존의 관습적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재료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현대미술에 지속적인 흥미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에 따라 삼례문화예술촌은 현대사회가 산업생산에서 문화생산으로 가는 필연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오감을 활용하여 문화예술과 과학기술, 산업 간의 융합으로 창작과 감성적 예술의 원리를 미디어 예술을 통해 느껴보고 이해하는 창의적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김재욱 정선휘 박준상 등 국내 작가와 올리버그림, 베른탈프 헤르 등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금년 9월 1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전시한 전시품들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설팀이 한 사람도 없고, 작품들을 해설한 리플렛도 없어 완주군을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도시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주최측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일행이 이들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커피로스팅 체험, 바리스터 교육, 카페 운영 및 창업교육 등을 한다는 “문화카페오스/CULTURE CAFE. ”The O’S”에서 40여분 한담을 나누며 망중한(忙中閑)의 여가를 즐기기도 했다.
숙소 야미도로 향하는 차안에서
삼례문화예술촌에서 나온 일행이 그날 밤 숙소로 정한 군산시 야미도를 향해 버스가 출발할 때는 오후 6시경,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도로에는 짙은 야음이 깔리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현숙이가 숙소까지 도착하려면 50분이 소요된다며, 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취침하라고 말한다. 차안은 그 순간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현숙이의 그 지상명령(至上命令)?에 회원 모두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군대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희안한 모습을 보고, 여제(女帝)같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나는 또 한번 놀라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회원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해마다 이맘때 함께 하는 문학기행, 출발하면서부터 즐거워 환호하고, 박수치며, 웃음으로 일관하면서 회원 상호간 신뢰와 문학적 소양을 다져가는 이런 문학단체는 아마 다른 곳에는 없을 것이라고·····.
나도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잠들어 있을 때 버스가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 섬으로 들어가는 연육교를 지나 새만금 방조제 내에 있는 ‘해동펜션’ 앞에 도착했다. 야미도는 군산시 남서쪽 신시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다. 서쪽으로는 무인도인 소야미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 대장도 등과 함께 고군산 군도를 이룬다 본래는 섬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섬이라 불렀으나, 밤율(栗)이 밤야(夜)로 잘못 표기되어 야미도(夜味島)가 되었다고 한다. 군산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2010년 새만금 방조제가 준공되어 군산시 비응항부터 신시도, 부안군 변산면과 육로로 연결된다. 고군산 군도(群島)의 섬들을 연결하는 연결도로가 금년말 연결될 예정으로 있다. 면적 2.6km², 해안선 길이 3,5km, 인구 234(2015년 기준)명이다.
해동펜션에서 하룻밤
군산시 야미도리에 속한 섬, 야미도, 배정된 침실에 가방과 소지품을 옮겨 놓고, ‘석수횟집’에서 일행은 만찬을 즐겼다. 섬마을 식당이라 찬은 주로 해산물이다. 광어, 해삼, 피조개, 굴, 소라, 전어, 장대, 바지락국이었다.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식도락의 시간이었다. 이때 산해진미(山海珍味)와 들이키는 소주의 맛은 평소보다 훨씬 달콤하여, 마시고 또 마시면서 취기가 돌고, 좌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고조되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이경식을 앞세우고 현숙이 좌중 앞에 나타났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습니다. 우리 오빠가 많아 아파 삼가에서 의령으로, 의령에서 부산까지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버스비와 병원비가 없습니다. 우리 오빠가 할 수 있는 말은 한잔 올리겠습니다. 예뻐요, 멋져요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묵은지 먹습니다. 우리 오빠가 할 수 있는 말은 한잔 술을 올리겠습니다.입니다. 도와주세요” 남매의 측은한 구걸행각에 좌중에서 돈을 꺼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손국복 교육장은 5만원권 한 장을 쾌척하기도 했다. 분위기 메이커 현숙이의 재치와 익살에 한동안 배곱을 쥐고 웃다가 일행은 새만금 시원한 바닷가 방조제로 나갔다.
12월 하순의 겨울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시원하면서도 쌀쌀한 새만금 바닷바람, 그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고조된 일행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낯선 곳, 여행지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일행이 거닐던 방조제 한쪽 해안의 모래사장에는 2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눈에 띄었다. 홍래가 좋을세라 그 전망대에 오르더니 새만금이 울려 퍼지도록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년처럼 회식이 끝나고 기분이 고조되면 으례 찾던 노래방이 인구가 적은 이 섬마을에는 없어서 회원들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이어서 최병태 부회장이 올라가 노래를 하고, 정유미 사무국장도 김숙희 예총회장도 모두 올라가 노래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 순간 우리들에게는 사회적 지위나 체면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남녀노소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부르는 노래 소리들은 새만금에 울려 퍼져나가고 시끌벅적해도 어느 누가 제지하는 사람도 없이 우리들의 노랫소리는 한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갔다.
일행이 밤바다 새만금 야미도의 방조제에서 각자 자기노래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다가 숙소로 정한 하동펜션에 든 시각은 이날 밤 9시 30분경, 남자호실로 정한 301호실에 회원들이 모두 모였다. 여자 회원들이 번쩍거리는 도깨비 탈을 쓴 현숙이를 앞세우고, 남자방에 밀려들었다. 방조제에서 못다한 여흥을 풀어놓기 위해서이다. 남자방에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이 예년처럼 또 진행되었다. 참참놀이와 동물 흉내내기 맞추기, 룰렛게임을 하면서 웃고, 또 웃고, 그러다가 우리들은 ‘묵자팀’과 ‘자자팀’으로 팀을 편성하고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게임을 벌였다. ‘자자팀’의 노래 원곡은 ‘꼬마 눈사람’이고 ‘묵자팀’의 노래 원곡은 개똥벌레였다. 그날 밤 승자팀은 ‘자자팀’이고 바꿔 부른 노래제목과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노래 제목 : 합천문학회, 원곡 : 꼬마 눈사람,
1. 언제든지 어디서나 합천문학회
우리가 함께라면 어디든 간다
전국을 달궈주는 멋진 문학회
2. 해가가고 달이가도 합천문학회
경선이와 숙희함께 오늘도 간다
금년에는 찾아온곳 야미도라네
두팀 노랫말이 기지(機智)와 해학(諧謔)이 넘쳐나는 <바꿔 부르기> 게임이었지만 승자팀의 노래제목 ‘합천문학회’ 가사만 여기에 싣는다.
이튿날의 여정
12월 24일 문학기행 이튿날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겨울가뭄으로 한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비가 이날 새벽부터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해 해안가 거리가 흥건히 젖어가고 있었다. 비닐옷을 걸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조반은 어젯밤 만찬을 즐겼던 석수횟집 근처 “쌍둥이 횟집”이었다. 밥상에 차려진 찬들은 숙취에 좋은 북어국과 바지락조림, 파김치, 콩나물, 깻잎, 애호박묻침 등으로 조촐한 조반이었다.
현숙이의 치밀한 기획, 흥미진진한 프로그램 진행으로 우리들의 문학기행은 시종일관 이튿날도 즐거웠다.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야외에서 보물찾기는 무산되고 실내게임으로 대체되었다. 보물찾기 품명이 적힌 종이글에서 초성을 맞추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종이에 적힌 품명이 ‘땅콩카라멜’의 경우는 그 초성이 “ㄸㅋㅋㄹㅁ”이니 이것을 먼저 맞춘 사람이 상품을 타는 게임이다. 그렇게 작은 거인 현숙이의 재치있고 흥겨운 게임은 첫날부터 이튿날까지 간단(間斷) 없이 계속되었다. 이날 아침 9시 40분경 일행은 야미도 야미리를 출발하여 부안 석정문학관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손국복 교육장의 “가람 이병기의 문학세계와 그의 시 <난초>”에 대한 강의, 그리고 그의 대표작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회원들과 함께 낭독하였다. 수박공주 윤경선 시인이 신석정의 ‘눈맞춤’ 시를 또 낭독했다.
석정 문학관에서
일행이 전북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76번지에 소재한 석정문학관에 들어선 시각은 이날 오전 10시 20분, 전시실 입구 현관 벽에 걸린 가람 선생의 용모처럼 미모가 아름다운 고윤정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먼저 들어선 곳은 가람 선생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상실이었다. 여기서는 약 5분 동안의 ‘가람과 마주하기’ 프롤로그 영상을 보며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애와 문학, 그리고 항일투혼과 민족사랑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그녀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가 둘러본 상설전시실에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우리 것을 찾고 지켜나가고자 한 가람의 시조와 고전 발굴, 국문학 정립, 한글 수호, 가람일기 등의 순으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익산 출신으로 우리의 말글과 문학과 전통문화를 가꾸고 민족을 사랑한 진정한 선비로서 그는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한 시조시인이이며 국문학자이다.
<가람문학관>은 전국의 문학예술인은 물론, 모든 시민들에게 교육기회와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17년 10월 14일(토) 개관되었다. 주요 시설로 가람선생의 대표 시조를 시조낭송으로 듣기도 하고, 대형 이미지나 그래픽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가람실’, 그리고 시조시인, 서지학자, 국문학자, 교육자, 한글운동가 등 가람의 주요활동과 업적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람객이 머물며 가람 정신을 체득할 수 있는 ‘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람은 또 삼복지인(三福之人)으로 알려졌다. 술복, 난초복, 제자복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말한 삼복은 그의 풍류, 선비, 교육자로서의 성격과 깊은 인간미를 드러낸다.
가람의 일화 중에는 술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나 술은 말년까지도 즐기며 해학(諧謔)으로 좌중을 이끄는 애주가였다. 두루마기 차림에 홍안백발(紅顔白髮)의 자태로 말술도 사양치 않았고, 청주, 탁주를 가리지 않았으며, 선술집에서 사람과 어울려 마시기도 하고, 자기집 청마루에서 매화와 난을 벗 삼이 마시기도 하였다. 한번은 대로에서 술이 취한 채, 교통정리를 하다가 경찰에 제지를 당했는데, 알고 보니 그 경찰이 선생의 제자였다고 한다. 넘쳐나는 장난끼와 해학을 즐겼던 그는 난을 무척 사랑했던 미의식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난초를 사랑한 것은 일제 치하를 바르게 살며 선비로서 지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전시관 맨 끝 코너에 게시된 석정 시인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일행과 함께 읽으며 고윤정 해설사의 해설이 끝났다.
일행이 석정문학관을 나와 인접해있는 선생의 생가 청구원(靑丘園) 고택에 들렸다. 이 고택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 84호, 1930년대 김영랑 등과 함께 순수문학을 이끌던 신석정이 1907년 부안에서 태어나 1952년 전주로 이주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신석정 시인은 그곳에 은행나무, 벽오동, 목련, 산수유, 철쭉, 시누대, 등나무와 함께 벗하며 살았다. 이곳에서 전원시집 ‘촛불’과 ‘슬픈 목가’등을 남겼다. 청구원에는 툇마루가 있고 벽에는 ‘靑丘園’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은 삶을 살았던 흔적이다.
내소사에서
석정 시인의 고택 앞에서 일행이 기념 촬영을 하고 부안군 행안면 신기리에 위치한 ‘백합죽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다음 코스로 찾아간 곳은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다. 원래는 ‘소래사(蘇來寺)’였는데 내소사로 바뀐 것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내소사 입구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찰에 이르기까지 긴 턴널 같은 전나무 숲길이 나오고 이 숲길을 10여분 지나면, 능가산 관음봉 아래 그윽한 사찰이 나타난다. 백제 무왕 34년(633)에 개산조(開山祖) 혜구 두타 스님의 원력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 29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불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집이다. 잡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기단을 설치하고 자연석 주춧돌을 썼다.
대웅보전의 문살이 보통 목공이 조각한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이미 그 아름다움이 유명하다. 절묘한 꽃잎 문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잎, 한 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하며, 그 예술성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고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拱包)도 다포(多包)양식인 것이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불단 후불 벽면에는 백의관음보살 좌상이 그려져 있으며, 이 벽화는 국내에 남아있는 백의관음보살좌상으로는 가장 큰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고 한다.
곰소항에서 건어물, 젓갈들을 사다
내소사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은 곰소항, 염전과 어항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서해안 갯마을, 젓갈집과 횟집, 건어물집 등이 400여 곳이나 몰려있는 서해안 최대 어시장이다. 일행이 차를 멈추고 들어선 곳은 에메랄드 빛 아름다운 바다가 끝없이 전개되는 해안가 마을 ‘갯마을 젓갈 활인도매장’이다.
뭍에서 온 우리 일행들이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줄 젓갈과 건어물들을 주섬주섬 사가지고 버스에 오른 때는 이날 오후 4시무렵이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귀로의 버스안에서
곰소항 방문을 마지막 일정으로 2017 합천문학회 문학기행의 모든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일행은 이날 오후 4시경 귀로의 버스에 올랐다.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와 고령군 쌍림면 ‘대원식당’에 차가 멈춘 시각은 이날 오후 7시 30분, 식당에 들려 회원들과 만찬을 마치고 귀갓길을 서둘러 왔다. 되돌아보면 이번 문학기행도 예년처럼 즐겁고 보람차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틀간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는 여느 때보다 기념비적인 이벤트와 추억의 소재가 많았다. 소매만 스쳐도 전생에 인연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우리는 또 한 옥(屋) 내에서 현숙이의 재치있는 레크레이션 게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깊은 인연을 쌓았다. 참으로 우리는 “소중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로서 해마다 구랍에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문학인들이다. 우리는 여행 첫날 이화예식장 앞에서 만나면서부터 서로가 반가워 환호하고 손벽치며, 환한 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야미도에서는 차디찬 겨울바닷바람을 개의치 않고, 순수한 동심의 아이들로 돌아가 노래하며 부둣가를 즐겁게 소요했다. 그리고 여행 전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나누었던 숱한 대화 속에 새겨듣고 오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가 내 자식 같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표현한 아름다운 말, 그리고 “매일 매일 시를 밥먹듯 써서 몸이 시가 되도록 시 쓰는 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말, “늙어감은 낡아가는 것이 아니고, 원숙해 간다”라는 말, “여러분들이 바로 보석입니다.”라고 말한 보석박물관 해설사도 타지인으로서 우리 일행에게 신선한 감명을 주었다. 모두 새겨들어야 할 주옥같은 말들이다.
“늙어감은 낡아가는 것이 아니고, 원숙해 간다” “여러분들이 바로 보석입니다” “당신이 있어 합천문협이 자랑스럽습니다”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말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의 마음을 일으킨다. 행복과 사랑의 마음은 모든 말 가운데에 앞선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인간사회의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2017년 무술년 격동의 한해를 보내는 세모(歲暮)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의미 있는 문학기행의 여정을 함께 보냈다. 이번 문학기행도 서해바다 에메랄드빛처럼 보석 같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먼 훗날 우리들의 뇌리에 기리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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