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창
소 민 호
“어디가 아파서 이러니?”
“컥컥, 목, 목이 아파. 답답하고 숨을 못 쉬겠어.”
“창아, 그러지 말고 펠릿을 토할 때처럼 목을 길게 빼고 배에 힘을 줘봐!”
“컥컥, 안 돼. 엄마!”
창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쯧쯧, 외발로 콩콩 뛰어다니면서도 새끼만 보면 행복해 했는데……!”
“저 발을 보면 아직도 몸서리가 나!”
이웃 갈매기들은 한 발로 서 있는 어미 갈매기를 보고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지난해였습니다.
어미 갈매기가 알 두 개를 낳아 품으면서 물고기 사냥을 다녔습니다. 가까운 갯바위 근처에는 물고기들이 많아서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 이게 뭐야?”
사냥을 하던 어미는 한쪽 발이 뻐근하고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앗, 낚싯줄…….”
어미는 갯바위로 나와 발을 털었습니다. 하지만 줄 끝에 달린 납덩이가 발을 흔들 때마다 빙글빙글 돌면서 발목을 조여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갈매기들도 부리로 낚싯줄을 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한참동안 줄을 물어뜯던 어미는 납덩이만 겨우 때어낸 채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둥지를 오랫동안 비운 탓에 얼룩무늬 알 두 개는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어미는 얼른 체온을 가슴에 모아 알을 품었습니다.
“끼아앙 끼아앙, 너무 아프다!”
어미는 발목을 조여드는 낚싯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웃 갈매기들도 어미의 앓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저걸 어쩌면 좋아?”
“어부들에게 풀어달라고 하면 안 될까?”
“무슨 소리? 목숨까지 바치라고!”
갈매기들이 생각을 모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끼룩끼룩, 드디어 우리 아기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며칠 동안 알을 품던 어미가 아픈 다리를 끌며 갯바위에 올라서서 소리쳤습니다.
“끼이이룩 끼이룩, 축하해!”
“알이 식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앞으로 잘 커야 할 텐데!”
갈매기들의 축하도 걱정도 둥지에 오롯이 쌓였습니다.
“아가, 고맙다. 내 새끼로 태어나 줘서!”
어미는 알과 새끼를 따뜻하게 품었습니다.
하지만 알 하나는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래, 얘를 위해서라도……!”
어미는 슬픔을 꾹꾹 누르며 알을 버렸습니다.
“창, 네가 내게는 행복이자, 희망이란다.”
아기 갈매기 이름을 창이라고 지어 준 어미가 날아올랐습니다. 여느 때보다 몸이 무겁고 발목이 더 아팠습니다.
“저게 뭐야?”
“아휴, 저걸 어쩌면 좋아!”“아, 결국……!”
곧 떨어져나갈 듯이 덜렁거리는 어미의 발을 보고 갈매기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저 건너에 사는 몇몇 갈매기들은 낚싯줄과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고 하더니 남의 일이 아니었어.”
“어디 그것뿐인 줄 알아? 물고기를 먹고 토해 낸 펠릿은 대부분 플라스틱이었대!”
“여기도 마찬가지야.”
갈매기 하나가 가리키는 바위 사이사이에는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가느다란 낚싯줄 하나 때문에……쯧쯧쯧!”
“곧 떨어져 나가겠구먼!”
“까옹까옹……, 아휴, 무섭다. 무서워!”
갈매기들은 몸서리를 치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어미는 오로지 새끼 갈매기 창만 생각했습니다.
“창이 먹기 좋은 물고기를 찾아야지!”
어미는 곧 떨어져 나갈 듯이 덜렁거리는 발을 매단 채 먼 바다로 날아가서 사냥을 했고, 창은 어미의 바람대로 잘 자랐습니다.
큰 먹이도 거침없이 삼키던 창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 사냥을 했습니다.
날씨 좋은 날은 먼 바다까지 날아가서 물고기를 잡는가 하면, 어떤 날은 큼직한 물고기를 어미 앞에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튼튼하게 자라구먼.”
“튼튼하게만 자라는 게 아니라 또래들보다 사냥 실력도 뛰어나!”
“언제 보니까 친구들에게 물고기까지 잡아 주던걸.”
“창과 같은 저런 강한 갈매기가 있어야 무리 전체도 힘이 강해지는 거지!”
이웃 갈매기들은 그동안 창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응, 오늘따라 다리가 가볍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애를 썼던 아픈 발목이 가볍고 허전했습니다.
“앗, 내 발이 없어졌어!”
어미 갈매기가 뒤뚱거렸습니다.
“쯧쯧, 결국 떨어져나갔구나!”
갈매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까옹 까옹, 어떻게 하냐?”
“내 다리까지 아픈 것 같아!”
갈매기들의 걱정이 어미를 감쌌습니다.
“아니야. 덜렁거리며 짐스럽던 쓸모없는 발, 잘 떨어져 나갔어!”
남의 일처럼 말하는 어미를 보고 갈매기들은 튼튼하게 자라는 창을 위해서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은 여전히 목을 주억거렸습니다. 캑캑거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어미는 어쩔 줄 모르고 외다리로 콩콩 뛰었습니다.
갈매기들도 갯바위로 몰려와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렇게 지켜만 볼 게 아니라 고깃배에 데려가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보자.”
“안 돼. 사람들은 창의 목숨까지 빼앗을지 몰라!”
“사람들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닐 거야.”
“저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세상을 떠난 갈매기들이 어디 한둘이야?”
갈매기들의 말을 듣던 어미가 창을 돌아보았습니다. 눈빛은 큰 결심을 한 듯 붉게 빛났습니다.
“창, 저기까지 날아갈 수 있겠니?”
어미는 날갯짓 몇 번만 하면 날아갈 수 있는 고깃배를 가리켰습니다.
창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고깃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크게 먹고 이 어미와 함께 저기까지 건너가 보자.”
창은 주춤주춤 망설이다가 날개를 활짝 폈습니다.
어미도 창의 뒤를 따라 날아올랐습니다.
“잘 다녀와!”
“괜찮을 거야.”
“우리가 여기서 지켜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갈매기들의 응원에 힘을 얻은 창은 뱃전에 내려앉았습니다.
“어, 갈매기가……? 에이, 녀석들. 아직 고기 못 잡았어.”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어부는 손짓을 하며 다른 데 가보라고 했습니다.
“까응 까응, 물고기 얻어먹으러 온 게 아니라고요.”
어미가 창을 갑판으로 밀었습니다.
창은 퍼덕거리며 갑판에 내려섰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을 주억거리는 창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아하, 낚시꾼들이 낚아 올리던 물고기를 가로채다가 낚시가 목에 걸렸구나!”
할아버지는 창에게 다가갔습니다.
“꺅꺅 까아웅, 우리가 바다를 가로챈 사람들과 같은 줄 아세요?”
어미가 외다리로 콩콩 뛰며 소리쳤습니다.
“아, 알았어, 가만……, 너는 외발이로구나. 쯧쯧, 어쩌다가 한쪽 발을 잃었어!”
할아버지는 어미를 보고 혀를 차며 창에게 다가섰습니다.
“까옹 까아옹, 해코지 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알았으니 그만 좀 떠들어라!”
할아버지는 어미를 나무란 뒤 창의 날갯죽지를 움켜잡았습니다.
”어디 보자.”
할아버지는 바동대는 창의 부리를 벌리고 입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가만, 이게 뭐냐?”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까옹, 왜 그러세요? 뭐가 잘 못되었나요?”
어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거나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
할아버지는 창의 입을 벌려 손을 넣자 창은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습니다.
“아무리 먹이가 부족해도 이런 걸 먹으면……, 아니다. 내 어찌 너희들 탓을 할 수 있겠느냐. 우리 잘 못이다. 내 잘못이야!”
한참 만에 입에서 빼낸 할아버지 손에는 야구공만한 비닐 뭉치가 들어있었습니다.
“끼룩 끼이룩, 고맙습니다. 까옹 까옹!”
“그러고 보니 네 발목도……!”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동안 어미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안하구나!”
할아버지는 갑판에 널브러진 파란 색 거물 자락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끼이이룩, 감사합니다.”
어미 갈매기와 새끼 갈매기 창은 힘겹게 날아올랐습니다.
“휴우,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게 인간들이야!”
파도에 밀려드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보고 내쉬는 할아버지 한숨소리가 그물코에 글려 퍼덕거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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