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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문학30호_임장섭
추천 : 5 이름 : 박황규 작성일 : 2022-10-28 17:25:07 조회수 : 37

                                                                                             나의 유년기

                                                                                                                                                                                           임장섭 前합천교육장

    어릴 적 일을 회상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고 한 편의 영화처럼 차례대로 떠오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쩜 뇌리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나이가 들어감에 비례해 지워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년기에는 한복을 주로 입었다. 그렇다고 요즘과 같이 멋으로 입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한복을 입었다. 4학년 무렵의 명절에 처음으로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 오신 옷을 입었던 것 같다. 폼 나게 새 옷을 차려입고 화약을 성냥갑에 넣어 파이프로 만든 딱총을 가지고 노는데 불이 났다. 옷은 타고 주머니에 넣은 손이 화상을 입었다. 대여 아픈 것보다 새 옷을 태워서 야단맞을 생각에 안절부절 했다.

손수건을 소지하기 못했기에 코 흘리고 땀나면 소매로 습관처럼 닦아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옷이 떨어지면 천을 대어 기워 입기가 답나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멋스러울 것 같지만 촌스럽다고 여겨 부끄럽기만 했다. 활동이 왕성한 탓에 양말은 성한 게 없어 감자 같은 엄지발가락이 나오기가 예사였고, 볼을 받은 위에 또 볼을 받은 양말을 신었다.

   식생활이 부실하여 늘 허기진 배를 안고 다녔다. 나무하기, 꼴배기, 소 먹이를 갈 때는 주머니에 생쌀을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가끔은 몰래 쌀을 가게에 가져다주면 얼마간의 꿀 같은 과자도 맛볼 수 있었다.가게래야 소쿠리에 많지 않은 과자가 있을 뿐이었다. 보리 고개 춘궁기에는 또래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보리논밭에 들어가 깜부기를 뽑아먹었다. 서로의 검게 얼룩진 모습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무, 가지, 오이, 밀과 콩서리는 남의 것이란 개념 없이 먹었다. 고구마 밥, 무밥, 쑥밥 호박밥은 주식과 다름없었다. 요즘으로 보면 고마운 건강식품이며 구황작물이다. 무밥 먹은 후의 트림과 잦은 방귀의 소리며 냄새는 특별했다. 배고픔을 달래고자 고구마를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먹기도 하고, 잿불에 넣어 구워 먹었다. 노릇하게 구운 고구마의 맛은 환상이었다. 초겨울에 각 문중의 시사일은 훤히 꿰뚫어 어김없이 찾아다녔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음식이라 눈에 찾지 않는 양이지만 소중하게 여겼다.요리에 사용하려고 감춰 둔 사카린을 가져와 샘물을 칡잎에 타면 천하에 다시없는 음료수였다.

   하루는 배고픔에 철쭉꽃을 실컷 따먹어 온몸이 불덩이같이 열이 나고 토했던 일로 가족들이 걱정해하던 모습이 이제는 그립다. 지금도 철쭉군락지가 아련히 떠오르는 것은 그때 크게 혼난 탓이리라. 산과 들의 칡을 캐거나, 감꽃을 주워 먹고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녔다. 아름다눈 장식으로 여겼다.감은 버릴 게 없었다. 감꽃은 말려서, 풋감은 물에 삭혀 먹고 익으면 곶감으로, 홍시는 좋은 간식이 되어 어떤 과일보다 친근감이 있다.

  그 시절은 껌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밀과 송진으로 껌을 만들어 즐겼는데 솔잎이 거친 외송나무 송진의 껌이 씹는 감각이 좋아 선호했던 것 같다. 그 껌은 일회용이 아니라 씹고 나면 자기만 아는 곳에 붙여 두고 여러 날 씹었다. 껌 씹는 것을 부러워하는 또래들에겐 선물 주듯이 넘겨줬다. 가끔 마을에 엿장수가 나타나면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총집합을 하게 된다. 맛보기에 녹아나 집에 있는 신을만한 고무신, 쇳조각은 물론 마늘 접을 통째로 가져다주었다.그럴때면 부모님께 야단맞는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8살 때 취학통지서가 나와 학교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입학하는 날 학교에 보내 주지 않아 그날은 종일 징징대며 울었다. 아버지께서는 내년에 보내 준다고 하셨다.날씨가 추운데 몸이 허약해 어린 것이 먼 거리 통학하는 게 안쓰럽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땐 여선생님이 귀하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생님이 선녀같이 예뻐서 교무실에 얼굴을 내밀다가 남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 때 마을별로 등하교를 했다. 등교할 때에는 키대로 줄을 서 ‘하나 둘 셋 넷’선배의 구령에 맞춰 걷기도하고, 길이 멀어 자주 뛰어다녔다. 책보를 어깨에 메고 뛰는데 특히 하굣길에 뛸 땐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장단과 보조를 맞췄다. 그 소리는 도시락 반찬을 넣은 간장 종지로 같은 발을 땅에 내딛는 신호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삿갓을 쓰고 학교를 다녔다. 교실 복도 한켠에 삿갓을 나란히 차곡차곡 포개두면 빗물이 복도를 적셨다. 등하교시 곳곳에 움푹파인 신장로에 차가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냥 있지를 않고 주먹을 쥐고 손을 쭉 뻗어 욕설로 인사했다. 심심하면 장난기가 발동하여 물이 고인 곳에 삿갓의 뽀족한 부분을 팽이 돌리면 멋진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재미에 삿갓 윗부분은 구멍이 나고, 그곳으로 빗물이 들어와 머리와 얼굴은 언제나 빗물로 젖어 있었다.

   하굣길에는 시간적 여유로 말없는 돌을 차거나 전신주에 돌팔매를 하여 애자를 깨기도 했다. 어쩌다 애자에 명중시켜 박살나는 날에는 큰일을 한양 어깨가 으쓱했다. 동네 곁에 작은 시내가 있어 멱도 감고 고기를 잡았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는 줄 알았는지 쑥을 비벼 막고 침으로 방수도 하였다. 삿갓으로 고기를 잡으면 이끼가 파랗게 장식되고 뒤집혀져 망가지기도 하여 귀가해서는 어머님께 야단맞는 것이 일상화하였다.

어느덧 백발이 되도록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와 버렸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만큼 추억은, 그리움은 더욱 진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남아있는 시간이 훨씬 짧은 탓이리라.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뇌파의 활동이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유년의 창에 비친 눈물겨운 그리움은 수묵화처럼 잔잔히 번져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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