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짐
손국복
어깨를 짓누르는
바닥짐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지병 때문에
선잠 드는 순간까지
가슴 옥죄는
무거운 바닥짐
그래도
가벼워지는
순간순간을
바닥짐의 무게로
배의 균형 맞추듯
흔들리는 삶
지탱하는지도 몰라.
위대한 하수구
손국복
고추장 묻은 놈
기름 때 묻힌 년
불어터진 된장국
모두 다 받아 준다
거품 양치
내질러 싼 똥
구분 않고 받아준다
구석구석 얼룩진
오래 된 땟물까지
모조리 받아준다
나는 버리고 너는 쓸고
나는 뱉고 너는 담아
더럽고 추한 비밀
감쪽같이 덮어 준다.
감나무 새순
손국복
죽었다 포기하고
버려둔 감나무에
새순 돋았다
심은 지 백 일
혹시 싶어 물주고
흔들어 깨운 공이
감나무에 통한 걸까
아버지
대학병원 ICU
손발이 묶인 채로
한 달간 인공호흡
포기하고 돌아선 날
운명인가 천운인가
감은 눈 다시 뜨고
7년 더 산 아버지
죽은 나무 함부로
베지 않는 나의 버릇
이 때부터 생긴 버릇
영문 모를 죽음도
절망했던 소생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지우개
손국복
지우개 하나 사야겠다
괴발개발 낙서
몰래 적은 바보
숨죽이며 적은 이름
흠칙 놀라 지우던
지우개
다시 사야겠다.
종이 위에 빼곡히 적힌
권모술수 음모계략
야망과 후회
찌르고 찔린
상처 난 언어들
마구 갈겨 써 버린
악마의 낙서들을
마법의 지우개로
지워버려야겠다.
돈 사러 간다
손국복
입김 호호 불며
어머니는 겨울 새벽
시래기국밥을 끓이셨다
곤히 잠든 어린 나를 흔들어 깨우시고
따뜻한 밥국물을
떠먹이셨다
허기진 배에 온기가 들어
다시 잠 보채는 시각
소 마구간 큰 누렁이는
고삐를 다잡혔다
“돈 사러 간다.”
어둠 속을 사라지며
아버지가 툭 던지는 말
어렴풋이 잠결에 들린다
쌀 팔고 소 팔아
돈 사는 까닭을
돈 사야 새끼들 학자금
제사상 조기 몇 손
양말 몇 켤레 구비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새벽 아궁이에 쪼그려
시래기국밥을 끓이시던 어머니가
부엌에서 영
보이지 않을 때쯤이었다
동짓달 그믐 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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