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방패
이지원
상처 없는 인생이 있을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다 가져도 상처 없는 매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물론 상처가 났다고 다 흉이 지는 건 아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무릎을 다친 아이에게 달려온 엄마는 상처를 살펴보며 ‘괜찮아. 흉 지진 않겠네, 다행이야’ 라고 말한다. 지금은 다쳐서 통증이 있지만 흉이 지지 않고 나을 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다치고 아프지 않을 수 없지만 흔적이 남지 않도록 치료할 수 있다면 상처라는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상처를 보듬어 주는 과정에서 특별한 관계를, 사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상처가 나면 그것이 열등감이나 비밀이 되어 결국 곪아서 흉이 돼 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마음의 상처를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커다란 방패를 준비한다. 창이나 칼이 날아와도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상처가 반드시 외부에서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찔러 나는 상처도 제법 많다. 그 방패는 오히려 치료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실은 두꺼운 방패를 가진 사람일수록 강인한 사람이기보다는 상처가 많은 사람일 확률이 크다.
얼마 전 친구를 피가 터지도록 때려 놓고도 후회와 사과의 마음도 없는 부산의 중학생 사건을 보고 나는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피의자인 아이들은 마음에 누군가를 그렇게 때려도 풀리지 않는 원망이, 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방패로 자신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다. 그렇게 강한 척, 쿨 한척하는 것이 그들 속에서는 멋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청소년 법을 더 강경하게 하는 것이 이러한 시대에 청소년 범죄의 해결이 될까. 법이 무서워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해도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와 불만이 결국 어디론가 터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욕구, 특히 아이들의 욕구는 어른보다 복잡하거나 다양하지 않다. 관심 받고 안정을 느끼고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그 평범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상처가 되고 다시 누구에게든 상처를 주고 싶어진다. 타인이나,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어떻게 감싸야 하는 건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해야 하는 건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먼저 도와줘야 할까.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상처를 대충 덮어 가려두고 방패 놀이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공부
이지원
부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에 ‘공부해서 남 주나’ 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공부는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 사회적인 출세. 자아실현.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고 나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뜻 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을 두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되어도 결코 행복한 지식인이 될 수는 없다. 실로 공부는 과정에서나 마침에서도 남에게 줘야 하는 것이 맞다. 공부 잘하는 비법 중 하나가 자신이 공부한 것을 남에게 설명하고 가르쳐 줄 때라는 사실이 밝혀진지 오래다. 왜 그럴까. 물론 습득한 지식을 밖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때 더 정확해지고 논리적이 된다는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공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느 영역을 얼마큼 공부 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영역이 달라 질 수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든 공부는 관계 속에서 결실을 맺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다. 관계 속에서 성취되지 않는 혼자만의 공부는 목적 없는 공부가 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12년의 학교생활 속에서 우리는 여러 과목을 배우고 숙제를 하고 시험을 치른다. 당시에는 이게 살면서 다 무슨 소용일까, 수학공식 외워서 어디 써먹어, 역사는 무슨 우리 할아버지 생신도 까먹었는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모든 학교생활이 지금의 연습이었음을 느낀다. 인생에서 종종 만나는 여러 문제들은 해결해야할 시험 문제 같고,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의무는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와 비슷하다. 시험 결과는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는지에 따라 나타난다. 공부가 아름답기 위해선 내가 이 배움을 통해 줄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목표를 삼아야 된다.
대학생 시절부터 알바로 과외를 시작해서 대치동 학원 강사로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아이들은 어떤 과목이든지 공부를 할 때 교사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교사와 친밀도와 소통을 통해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주고 싶은 마음과 받고 싶은 마음이 만나야 가능해 지는 것이었다. 누군가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마음에 고민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공부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억지로 앉아 다른 고민을 안고 공부하는 사람이 따라잡기는 어렵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부를 함께 즐기고 공부하는 마음을 격려해주는 일을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 공부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다시 학교를 다닌다면 이런 시간표에 맞춰 공부하고 싶다.
1교시 공감 (학생과 교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2교시 위로 (고민과 문제, 상처를 위로해주는 시간)
3교시 꿈 (누구의 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꿈을 탐색하는 시간)
4교시 도전 (자신의 약점과 한계 부분을 찾아 극복해보는 시간)
5교시 노력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공부)
6교시 산책 (토론과 사색의 시간)
자율 학습 – 멍 때리기. 낙서하기. 떠들기 중 선택
공감하는 시간은 책도 함께 읽고,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떤 공부 시간이든 가장 먼저 1교시로 해야 한다. 성적표는 학습 성취도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꿈을 향한 과정의 기록표로 작성하고 자신의 발전 단계를 스스로 평가하고 피드백 하는 것으로 만든다. 이런 학교가 있다면 교사도 학생도 얼마나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나 성적비관 자살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학교가 ‘만약에’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길 바라면서. 나는 지금 아름다운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 나의 배움이 어떤 관계에서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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