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감나무 아래서 外 1편
- 사진작가 김영갑 ․ 1
김 원 욱
1
빈가지만 앙상한
감나무 밑
피사체 흔들립니다
섬 건너 섬,
오름 건너 또 오름
시신경까지 굳어버리게 한 제주들판
렌즈 속으로 흔들립니다
억새, 바람에 날리듯
2
저물녘
인적 없는 두모악,
돌담 옆 수선화 몇 송이
아이들처럼 뛰노는 삼달분교 담장 너머
노을 속에 묻힙니다
어디선가
찰칵, 셔터소리 들리고
굴뚝새 한 마리 빈가지 끝에 앉아서
오도 가도 못합니다
* ‘두모악’은 사진작가 김영갑이 생의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살랐던 갤러리
그곳에 그가 있었네
- 사진작가 김영갑 ․ 2
그곳에 그가 있었네
제주들녘과 바람, 억새, 돌담, 안개, 해녀들,
떼구름 몰려와 반겼네
섬 구석 샅샅이 훑어서 30만 롤 필름 다할 때까지
목젖 짓누르듯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눌러댔네
업장이었으리
아직 시신경의 울림 끝나지 않았는데
천형 같은 루게릭병,
온몸 뻣뻣이 굳어 렌즈에 기댈 힘조차 없었네
용눈이오름이 저긴데
반쯤 세상 등지고 누워서
눈망울 껌벅이며 삭히지 못한 피사체 찍고 또 찍고,
비워서 자유로운 날,
그의 영혼 홀연히
은하계 블랙홀로 사라져갔네
제주에 오름 있다면 분명 은하별에도 둔덕은 있을 터
오름 닮은 둔덕 베고 누워
지구별 향해 한없이 셔터 눌러대다가 끄억끄억
용암이 흐르는 렌즈 속
뼈를 태우던 그곳, 저녁놀 활활 태우며
두모악 앞뜰 눈부시게 하네
* 김영갑은 전신이 위축되어 굳어져버리는 루게릭병으로 2005년 타계했다. ‘용눈이
오름’은 그가 자주 찾던 곳이며, 시신은 화장되어 ‘두모악 갤러리’ 앞뜰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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