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문학상 詩 심사평>
김용근 님의 응모작 11편 중에서 「카푸치노의 밤」, 「산사의 초겨울」,「봄의 환상」,「목련」,「산야에 고(告)해 잠들 깨우며 봄을 선구하는 백옥 전령(傳令)의 어엿함」을 당선작으로 천한다. 그의 순박한 정서에서 발현되는 서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시적 발상이나 표현 방법으로는 초기부터 너무 고차원의 기교를 원하지 않는다. 먼저 창작 의도의 순수성을 가늠하고 약간의 어눌하더라도 시인이 갖추어야 할 의식의 흐름이 분명한가를 측정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김용근 님은 ‘봄’이라는 계절의 이미지를 ‘그리움’의 ‘익숙한 연습’으로 표현하거나 ‘목련’의 압축적인 언어 등은 앞으로 그가 지향하려는 시적 효과를 잘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는 중요한 메시지를 요구한다. 이러한 서정성을 근원으로 해서 현대적 이미지, 곧 인간과 존재의 비밀을 탐색하는 주제가 형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의 길은 고뇌의 연속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대성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박곤걸 김송배 金天雨
<신인문학상 詩 당선소감>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여길만한 일들이 그리 흔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데 평소 미력한 관심이 10여년의 시간 속에 용해와 응고가 반복되더니 비로소 과분한 결실을 거두게 되어 기쁨과 더불어 자긍심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보다 과분한 작품평가를 받게 되어 송구함과 아울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어떤 일말의 책임감이 부여되는 중압감마저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부족함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선정하여 주신 것은 더욱 정진하여 보다 알찬 문학세계로 나갈 것을 배려하는 채찍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자세로 제대로 된 문학세계를 구축하여 선배 문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진력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관심을 갖고 어눌한 개인 문학세계를 성원해 주신 지인들을 비롯하여 한국문협 합천지부 전회원님들과 미흡한 글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하오며 『문학세계』와 함께하는 작가와 독자,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 용 근
경남 합천 대양 출생, 진주산업대 졸업, 합천문인협회 회원, 현)경상남도청 근무(지방서기관)
카푸치노의 밤
비스듬히 베고 누운
그대 불러
고요히 흐르는 노랫소리
응시하는 손거울에 반사되어
성큼성큼 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갈증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는
휘모는 밤이 겨워
연신 고독으로 피우고 터는 정적
어둠과 어우러져
짓고 허무는 화려한 그리움
어김없이 그대 아닌 내게만
인기 있는 억울함이 핏발 서도
어쩌지 못하는 밤
말없이 마주하는
싸늘히 식은 찻잔
산사의 초겨울
멀리서 손짓으로 유혹하던 파란하늘
훌쩍 야윈 그리움 안고
답하지 않음을 핑계로 퇴색되는데
출렁이는 단풍물결을 후광 삼아
호객 행위 일삼던 산사입구
흥겨운 장사치 손놀림 멈춘 지 오래다
뜸한 발길 하나 둘 세며
웅크린 노점상의
허우적거리는 동면의 늪엔
낮은 포복으로
사각거리는 낙엽들의 아우성만 가득
그 위
높이 비행하는 이름 모를 새
절개지에 홀로 서 사색을 즐기는 소나무와
견주는 잔잔한 고독의 여진에 취해
예견되는 사는 날까지의
그렇게 힘겨운 삶에 지친 육신
문득 예 뉘어 볼까 하니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 꾸짖어 오고
땡-그랑 땡-그랑
산사의 그윽한 풍경(風磬)소리에
속절없는 애환만 녹아내린다.
봄의 환상
이른 봄날 작은 새싹 하나
그 자리에 당연히 피고
내게도 잊어 후회 없을 그리움
나 몰래 피어버렸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걸린 봄은
금세 문 닫는 위안으로
더 싱그러운 여름 사랑을 기원하는데
보내는 연습에 익숙한 세월을 탓하며
조용히 떠나는 당신에게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의 일상으로부터
속박되지 않는 연습
그 연습에 익숙한 탓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훗날 연인들의 밀어로 묻어
향기로운 봄날
초상으로 걸어두겠습니다.
목 련
봄의 문턱에 걸쳐 앉아
꽃샘추위 아랑곳 않는 여유로
미소지어
생기 퍼덕이는 고귀한 자태
산야에 고(告)해
잠들 깨우며
봄을 선구하는
백옥전령(傳令)의 어엿함
봄을 밀고(密告)하는 속삭임에는
성급의 우려 가득함을 핑계로
어눌(語訥)한 찬가로
감응(感應)하여 속내하고
겨우내 찌든 마음
순결의 속살로 감싸
죄다 정형해주는 신기에는
쫑긋한 말없어
고뇌의 고삐 드리운 채
그저
시린 눈으로 바라만 볼뿐이다
농부의 봄
위안만이 존재하는
희망 없는 시대의
허름한 옷 하나 걸치고
뽀-족 언덕배기 얼굴 내미는
여린 쑥 벗 삼아
누렁이와
논밭고랑
아지랑이 거름 뿌려
혹시 있을지도 모를
희망을 심는다.
휴식마저
햇살에 찔리는 절규
“아이고, 허리야!”
막걸리 한 사발로 근심 축여
아직도
군불 지펴
TV소리 무안하게시리
곤히 젖는 일상
아 내
결혼 28년
하나 둘 자식들 내보내고
그렇게 덤덤히 살던
감정 투박한 사람
집 앞 언덕배기에서
“새싹이 돋네”라며
늘 일상인 날을 곱씹는 말
오늘따라
그렇게 살갑게 들린다.
동면을 들춰
실눈 뜨는
나무의 오롯한 시선과
사방 피어오르는
노란 아지랑이 부드러운 유혹이야
살아온 넉살로
모르는 척 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데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무심히 하는 말
자꾸 울림으로 오는 것은
함께한 여정의 예의이기보다는
긴 세월
아주 죄송한
데 일 것 같은 자성인가.
사랑과 미안을 대신해
시비조로 던지고야 만
‘봄인 줄 몰랐나?’는
5월의 신부임을 기억하는
나의 소중한 여인에 대한
변할 수 없는 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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