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한적한 시간
그녀의 외출 뒤
일곱 살 바기 아들과의 이마 맞댄 오찬
양파 쓸고 김치 넣은 냄비 가득
넉살좋게 불어터진 라면 길게 뽑으며
“아빠! 오늘 라면 참 맛있다.”에
“그래 정말 맛있다”로
자유와 분탕의 온기 가득한 거실에서
설거지 불량으로
오후엔 매서운 말초리 맞을 줄 뻔히 알고도
키득키득 웃음 주고받는 믿음
촌 로(村 老)
햇살 반질한 토담 모서리
아쉬움 복용한 채
헤아려 온 날을 배경삼아
마지막 날 언젠지 모르는
우리 되고
은행잎 무성했던 젊음
하나 둘 씩 벗어 버린
비워 곧 사는 이치에 닿지 못해
반소매 바지 자라 외투된 긴 무거움 속에
재겨 사는 녹록찮은 아픔
무시로 뒤척이며
앙상한 가지 감싸는 햇살에 데워 보지만
더-는
스케치하지 못하는 삶
권련 한대에 의지한 채
차가운 여백만 남겨 놓고 서성인다.
딸 기
고운
새-악시 붉은 볼
시집가는 욕심에
혼숫감 깨
잔뜩 훔쳤으니
본시 맘 숨긴
야속한
무남독녀 딸년 같아라.
재 떨 이
섭씨 500℃의 짓이기는
벌건 고문의 꽃이
동강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데인 곳을
또 데이면서도
묵묵히 받아야 하는
운명으로 살면서
온갖 고뇌와 분노가
하얀 재로 녹아내려도
배고픈 설움 아닐지언정
기꺼이 삼키기만 하고
의자 몇의
상주 앞세워
가난하고
시대에 낙오된
줄지어 오는 조문객의
털고 뱉는 발길마저
온몸으로 감싸
부조 받는 그대는
정녕
모진 고문만이
존재의 이유인가
어두운 시대에 맞선
풍운아를 키우는
쫓겨 숨어 사는 어머니 같은
조 문
한번도 불러 보지 못한
엄숙한 이름
자연 속에 스며들고 있다
그토록 다정다감한 속내를 숨겨
이제는 갈 길 아니라며
애써 손사래 치던 모습은
참으로 위대하셨다.
그 순간이 있고부터
늘 환히 웃으시던 모습을 감추어야만 했던
자식 위한 일념
조우를 빌미 삼을 나를 읽고
현실 속에 숨어 살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바깥세상 훔쳐보려는 당신의 자식을 읽어
눈으로만 삭혀 내신
못다한 근심을 허공에 걸어놓고
그렇게 가시나
아픔으로만 갚아 드린
나와 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끝까지 말씀 아껴야 했던 그 심정
헤아리지 못한 채
정녕 나는
빈 봉투 든 조문객으로
속죄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
당신의 자식으로 살기를 자처하며
산천에 살고픈 뜻
엄숙히 받들어
붉게 지는 노을 향 피워놓고
지금은 …
지금은
말할 수 있을까요
열병으로 앓으니
지금은
보여줄 수가 있을까요
애타게 기다리기보다는
지금은
올 수가 있을까요
주위를 서성이기보다는
당신이 할 때
내가 할 수가 없는
내가 할 때
당신이 정녕 그리할 수가 없는
세월의 농락에 사로잡힌
지금은
아련한 기억
들추면 들출수록
덩치만 커지는 아쉬움 앞에
초라한 비석 세우기 싫어
여기 이쯤에
연민의 글
말뚝 박아두는
연습만 되풀이 하는 겁니다.
김영애
2009-07-29 11:02:28
안녕하셨죠? 그동안 해외 출장가셨나 봅니다.
7.31 시 낭송의 밤때에는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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