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보름달과 여인의 엉덩이
입추·처서 지나고 9월이 와서 아침저녁 가을바람의 손 끝에 풀향기가 말라가는 것을 느낄 즈음엔 문득 추석이 언제쯤일까 헤아려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되지요.
그리고는 〈"오-매 단풍들것네"/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들것네"//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니리/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들것네"〉라는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들것네」를 떠올려 보게 되지요.
그럴 때면 더불어 생각나는 것이 바로 김남주 시인의 이 아름다운 시 「추석무렵」입니다. 아마도 고향이 강진인 영랑과 역시 해남인 김남주 시인인 만큼 두 시의 기저에 남도의 서정이 치렁치렁 흐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이 시는 70-80년대에 대표적인 투사시인으로 불리던 김남주 시의 본령이 사실은 살뜰한 서정과 애틋한 생명사랑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환기합니다. 어린 아들의 순진한 시점과 귀향 모티브를 결합함으로써 대자연의 생명력을 풍요로우면서도 섬세하게 묘파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시에서 〈자식놈/고추/아낙네/엉덩이/고추밭/초승달〉의 하모니가 불러일으키는 대지적 상상력은 풍요로운 생산력과 관능적인 생명력을 물씬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세속적으로 야하지 않고 오히려 풋풋하게 느껴지는 게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만큼 건강한 서정과 시정신이 시의 밑바탕에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 될겁니다.
새삼 가을이 와서 명절로서 추석, 한가위 달빛이 환히 밝아올 무렵이면 멀리 떠나있는 사람들이 보고싶고, 그래선지 한평생 이땅 민주화 운동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 떠나간 김남주 시인의 쓸쓸한 미소가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 김남주(1946∼1994) : 전남 해남 출생, 197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남민전사건으로 9년 3개월간 영어생활, 시집 『진혼가』『나의 칼 나의 피』『솔직히 말하자』외, 광주항쟁시선집 『학살』출간, 윤상원문화상·민족예술상·단재상 수상.
정순한
2003-09-06 10:35:18
김남주님 프로필만 잔뜩써놓고 정작 '추석 무렵'이라는 시는 어딨는고? 내가 마 잘못 본기가 ?
최병태
2003-09-06 22:43:09
내가 잘 못본 건 아닌가 했더니 정여사님도 똑같이 보셨군요. 송시인 우리를 바보로 만들지 말고 어서 빨리 김남주님의 [추석 무렵]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송영화
2003-09-06 23:09:44
궁금하시면 찾아들 보시드라고요잉
정순한
2003-09-08 10:17:41
우리집 강아지도 암수가 쉬를 다른형태로 보대요.
숫놈은 꼭 한다리를 치켜들구요 암놈은 쭈그리고 앉대요 그 참내, 누가 시범보여주며 가르킨것도 아닌데 우습데요 난그럴때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할수가 없더라구요.
진솔하면서 그모습대로의 풍경이 그려지는 시 네요 작품감상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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