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나무 숲
-코로나19- 김숙희
푸른 기척들은
먹이가 있는 뿌리로 돌아 올 수 없었다.
솔 씨랑 유충을 발라 먹던 상모솔새도
태양이
지구 한 바퀴 돌아와도
손등만 물어뜯는 솔새
유충을 몸속으로 이동시켜야 할지
솔방울을 닫아버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북부 지방에도 바이러스는 매 한가지
달을 돌리고 물의 온도를 높였다
충혈 된 햇살이
비릿한 시간을 지우며 간다.
2. 일기예보
김숙희
흐린 기온이 물컹한 뼈 속 헤집을 때
절룩이며 찾아 간 춘추 미장원
마음대로 잘라 주세요.
기온이 올라 갈 수 있다면
모낭세포에 씨앗을 뿌리겠어요.
낡은 주름들이 고랑고랑 기대어
삶을 바라보는 시간
푸른 과오를 수집해
녹슨 분쇄기에 밀어 넣었다.
후다닥 파랑새 떠난 자리
쏟아진 희무스름한 업보들
문을 열자 하얀 하늘이 웃는다.
구름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동쪽이다.
3, 환승역
김숙희
이웃을 피하고 싶지 않았지만
앞 쪽에서 친구가 오면 얼른 옆길로 돌아서야 했던 아픈 시간들
콘크리트 벽, 나만의 공간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간호하는 남편과 텔레비전은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대학병원으로 보내진 건
등뼈가 무너져 앉지도 서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몸 속 이물질을
하루 이틀 맡아내던 가족들은
더는 간호 할 수 없었는지
환승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어이 울대마개를 뽑고
비명을 사방으로 날려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못했다.
찬성표를 던지며 고개를 끄덕이고
이틀 후 개관식이 있다는 눈길이 오갔다
점점 크지는 설음 속에서 침대 모서리를 잡고
힘껏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구급차 소리는 기적처럼 울렸다
누워있던 침대가 들썩이고
더럭더럭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자! 여기가 어딜까?
칠성요양병원, 하얀 제복차림의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나의 태줄들이 그리움을 부비며 슬픔이 깊어 갈 때
출렁이는 환승역에서 차표를 사고
술잔을 비우듯 절망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먼 시간들을 끌고 와 잔잔한 바다 위에 공 하나 그려 놓고
아무도 들어다 보지 못한 달서의 기억들을
슬픔에게 건넨다.
*달서~대구시 행정구역의 하나
4,
황강
- 벚꽃피다-
김숙희
심장 뛰는 숫자를 세며 아침을 생각했다
붉은 태양이 팟줄까지 희롱하는 날이면
보슬한 빗방울이 엄밀히 찾아와
줄기를 세우고 꽃잎 하나 그려 놓고 갔다
키 높이가 다른 꽃잎들이 숨죽이고 있을 때
상수리나무 뒤에 숨은 목련하나가
일그려진 여자 얼굴처럼 검은 서리를 맞았다
남쪽으로 봄물이 번지자
미쳐 떨어지지 못한 아린이 훌렁 옷을 벗었다
아찔한 현기증
들썩, 화르르 쏱아지는 젊다.
5. 범구지
김숙희
빗살처럼 찍혀있는 전나무 길 지나 한적한
꽃 잔디 일렁이는 지복至福한 삶이 초파일 연등으로 달려 있다.
파란 사월은 붉은 멍울 지우며 서성서성 정오를 그리워하는데
대암산 초팔성 바람이 먼저 와 안기는 복福이 머무는 범구지.
*초팔성
합천군 초계면, 율곡면, 대양면에 접하는 대암산 정상부를 둘러싼 산성이다
*범구지 ~합천군 율곡면 제내리 의 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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