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저 살던 줄기엔 바람 한 점
매달아 놓고 나왔지요
뿌리 있는 데로 가려고요
공중에서 하늘과 땅
몇 번이나 번갈아 보았지만
어지럽진 않았어요
땅껍질에 귀를 붙이면
엄마가 퍼준 밥보다 더 수북한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려요
허벅지 오므린 산이 이불 지어 덮어주면
별빛은 달 한 바가지 길어 올려요
눈이 내릴 것 같아요.
엄마생일
기말고사 국어 시험지 빈칸에 그려진 83을 보고 아버지는 붉은 색연필처럼 앉아 엄마의 비릿한 돈주머니에서 뛰쳐나온 생선을 한 장씩 튕기고 있다.입다 만 옷처럼 이불을 걸친 엄마는 동전만한 입을 벌린 채 점심 대신 먹었을 풀빵의 앙꼬같은 잠을 자고 있다. 엄마 나이가 83점이 되는 날 쓴다.
사월십육일수요일
방금, 추락하는 조명탄이 구조함정의 멱살을 놓았다
설마…가 가라앉고 있다
그녀가 누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다
꼭 내가 그러고 있는 것 같다
티브이가 꺼지고 이불을 뒤집어썼는데도
자꾸
제 어둠을 찾지 못한 빛들이 들러붙는다
짝궁의 머리칼을 이쁘게 넘겨줬을 것이다
종례시간이 끝나가도 들어오지 않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엄마한테 걸려올 전화기를 붙잡고
집에 가는 버스번호만 생각했을 것이다
바닥 없는 저 아래에 닿으면 띵동 문이 열리고
하얀 새가 두 손을 잡아 주리라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거품숨 몰아쉬던 칠게가 눈대롱을 세우고
옆으로
옆으로 걷는다
손 시인 문 시인
육십 넘은 시인이 칠십 넘은 시인의 손을 잡는다
스무 개의 손가락과 네 개의 손바닥이
전기재봉틀 바늘보다 빠르게
수 천의 지문 가닥을 서로에게 박는다
몸뚱이 두 개 팔 둘 달린 시인
한 명.
뇌종양
-김숙희 회장님의 쾌유를 빌며
해골뼈 안에 이슬방울 맺혔다지요
차마 밖에 꺼내보이지 못한
너무 예쁜 눈물이었다지요
답답한 머리통 안에 숨어 사는 걸 찾아냈다지요
손주 손에 사탕 쥐어주듯 바깥 세상에다
시인의 사리 한 알 보시했다지요
사나운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지요
아침
눈을 뜨자 거머리처럼 하루가 들러붙는다
햇살에 베이고 깎인 사물의 살점을
갓 태어난 그림자가 허공에 받치고 있다
어젯밤 더듬거리며 꽂아둔 스마트폰 충전기엔
녹색불이 들어와 있고
예견된 실패가 희망의 목적지라고 알람이 울린다
새들이 내시(內侍)처럼 지저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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